[창간특집] “도시와 농촌 연결고리 약해 … '관계 회복'이 농업 살리는 큰 힘”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5 14:52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민과 도시민 사이에는 농산물 생산과 소비라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농업·농촌에는 각자 거주하는 장소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농업·농촌의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며 도시민이, 나아가 국민이 함께 풀어내야 할 문제기도 하다. <한국농정>은 지난달 23일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도시민·농민 대표의 목소리를 모아봤다. 

사회 원재정 편집국장·정리 장수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광진경제허브센터에서 본지 주최로 열린 도시민-농민 좌담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농업·농촌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도시와 농촌의 연결고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며 “도시민과 농민의 관계 회복이 농업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광진경제허브센터에서 본지 주최로 열린 도시민-농민 좌담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농업·농촌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도시와 농촌의 연결고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며 “도시민과 농민의 관계 회복이 농업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승호 기자

 

농업계에선 ‘농업 문제는 섬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정말 섬 속의 농민들만 농업 얘기를 하는 것인지, 도시민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어 오늘 이 좌담회를 마련하게 됐다. 농업·농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류미선 광진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장 직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소비자인 도시민 입장에서 농업·농촌은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또 피부에 와닿는 농산물 가격의 폭등락이 떠오른다. 물론 그 내면에 농민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 소비지 농산물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농민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가 아니란 걸 알고 있어서다. 먹거리 안전성과 가격 구조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활동이 도움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도움이 될까 하는 굉장히 소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전승욱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부장 농촌에서 태어나 살다가 부모님과 같이 서울에 올라와 농사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경험이 조금 있고, 도시에서 텃밭 활동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관심은 많은 편이다. 그런데 농업문제에 대해선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점은 농민의 나이가 굉장히 많아졌다는 것 정도다. 막연하게 ‘농촌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이라는 생각과, 모든 농산물 소비가 마트에서 이뤄지다 보니 농촌과의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느낌이 있다.

이아롬 분해정원 대표 ‘안물안궁’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다’는 의미인데, 사실 도시민이 생각하는 농촌은 안물안궁인 것 같다. 저도 농촌에서 자랐는데 주변에 농사짓는 농민이 이웃으로 있었음에도 농사는 책으로만 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농촌에 살지만 농업 현실에 대해 몰랐고 농업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날 주변 사람들 역시 농촌에 대해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고 그저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만 갖고 있으니까 되게 여유롭고 풍요롭고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충남 부여) 지금의 농촌은 장마 전 콩 등 씨앗을 뿌리느라 바쁘다. 직전의 농촌은 온통 빨갛게 물든 모습이었다. 논에 모심기 전 제초제를 쳐서 그렇다. 풀을 베면 좋은데 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선택지가 제초제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민 인구가 220만명이라는데, 그중 농업활동만으론 소득이 안 돼 주중에 요양보호사를 한다거나 일용직 노동을 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많고 주말에야 농사짓는 사람이 많다. 또 실제 농업인구의 60% 이상이 65세 이상이다 보니 인력이 부족해 일하는 사람이 적다. 적은 인력으로 농업활동을 유지하려다 보니 기계에 의존하고 젊은 사람에게 위탁하는 등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방식은 장기적일 수 없다는 고민이 있다. 지금은 농업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그 기술이 전수가 되지만, 조금만 지나면 밭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도 모르고 없어지는 품목도 많아질 것이다.

박미정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경남 진주) 지금 농민의 현실이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사태를 겪는 국민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개인이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고민도 하고 불안한 마음이 큰 데 지금 할 수 있는 게 소금 사는 일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식량주권이나 식량안보란 말로 먹거리 문제가 국민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인지 강조하면서 그에 대해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효율화와 규모화만을 강조하며 농민의 농사 포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모양새다. 오늘날 하우스 농사짓는 주변 농민들 대부분이 5억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500만원, 1,000만원이라도 빚이 있으면 밤에 잠이 안 오는데, 농촌에선 우리 집도 5억원, 옆집도 5억원, 뒷집도 5억원 이상 빚이 있다 보니 그 무게를 실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규모화를 부추기며 농산물 가격은 보장해주지 않아 생긴 일이다. 농촌에선 1년 농사 지을 때마다 1,000만원씩 빚이 늘어난다는 얘기를 하는데 최근엔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

조대성 홍성유기농영농조합 대표(충남 홍성) 1,000평 정도를 농사짓는다 해도 트랙터 등이 필요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제때 작업을 해야 하는데 부탁하기도 어렵고 해서 기계를 사는 경우가 많다. 기계 산 비용을 충당하려면 규모가 커야 하는데, 홍성의 경우 중산간지여서 밭이 넓지 않고 기계화 효율이 좋지 않다 보니 그 면적이 오히려 자꾸 줄어든다. 때문에 농업은 전반적으로 가라앉는 배 같다는 느낌이다. 지역적으로도 소멸되는 것 같다. 위기는 결과가 나타나야 비로소 느껴지는데 아직 결과로 나타나지 않은 위기 요인이 농촌에 많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고향이 있어 농촌과 관계가 연결되고 했지만 요즘은 그러한 연결이 끊어졌다는 생각이다. 농촌이 외로워진 것 같다.

도시민과 농민이 생각하는 농업·농촌 사이의 접점이 없진 않은 것 같다. 깊게 생각하면 모두 연결된 문제다. 도시민과 농민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후위기와 먹거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아롬 현재 사는 곳이 도시와 농촌이 섞인 곳이다. 개발된 신도시를 빼고는 거의 다 농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후위기에 대해 크게 체감하는 것 같진 않다. 뉴스에서 하도 많이 나오니까 문제구나 하는 정도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부분도 추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자포자기한 느낌마저 든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예로 들어 어떻게든 나 또한 영향을 받겠지라는 걱정이 드는가 하면 이제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먹지 않나 싶은 생각에 포기하게 되는 것도 같다. 미식에 관심 많은 사람이 먹거리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아직까지 미식의 영역은 대저토마토 사 먹고 초당옥수수 사 먹는 그 이상으로 심화되진 않는 것 같다.

전승욱 기후위기는 쓰레기 문제나 재활용에 고착화돼 있고 먹거리 안전에 대해서는 광우병 소고기나 이런 사회적 이슈에 매몰된 느낌이다. 와중에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는 운동성의 에너지도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유튜브 등을 통한 먹방(먹는 방송)이 활성화되며 맛있게 먹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경향은 많이 있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하려는 경향은 없는 것 같다. 먹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뿐인 것 같다. 기후위기 등의 문제가 경제문제에 완전히 잠식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근혁 기후 영향에 가장 많이 노출된 농민들은 그 위기감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과수가 서리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4월 기온이 영하 3℃로 지속돼 사과 등의 꽃이 아예 동해를 입게 됐다. 게다가 얼마 전 내린 우박은 그나마 달린 과수마저도 떨어뜨렸다. 기후위기는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고, 농민이 겪고 있으며, 소비자가 겪게 될 문제다.

류미선 얘기를 듣다 보니 기후위기로 농업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과 그로 인해 국민의 먹거리 공급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언론 등에서는 기후위기에 농업도 일조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 왜 농업을 통해 환경문제가 이슈화되는지 궁금하고 농업이 정말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지도 알고 싶다.

이근혁 농업의 탄소 배출량에 대한 연구 자료 자체가 거의 없다. 가장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대부분의 산업은 사람에게 필요한 걸 만들고 그 과정에서 탄소를 발생시키는데, 유일하게 그중 탄소를 흡수하는 산업이 농업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걸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누구도 해당 연구에 비용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탄소를 흡수한다는 점이다.

조대성 기후위기와 관련해 불완전 연소되는 2행정 제초기로 풀을 4번이나 깎는 친환경 무농약 농사와 제초제 뿌린 관행 농사 중 어떤 게 저탄소 농업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유기농의 본질은 토양의 지속가능성인데 마케팅 포인트가 안전한 농산물로 기울다 보니 이게 족쇄가 돼 잔류농약 검사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분석 농약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검사비용 또한 늘고 있다. 이런 현실이 되게 혼란스럽다. 농업의 탄소 흡수·배출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미정 이상기후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가뭄이나 장마 등 재해의 강도가 심해지는 느낌이다. 올봄만 하더라도 차례대로 개화할 꽃나무가 한꺼번에 펴버렸다. 이처럼 해마다 그 전엔 느끼지 못했던 기후위기가 인간에게 몰려오는 것 같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소농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소농이 확대돼야 기후위기나 먹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농업이 환경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은 대개 투입재를 많이 넣는 대규모 농사 부류의 이야기며 농업계는 환경 부하를 덜 발생시키는 중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물가대책과 수입농산물을 주제로 얘기해볼까 한다.

이근혁 농민도 농산물 가격이 무작정 오르길 바라는 게 아니다. 농산물 가격에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생산비에 생계유지가 가능한 생활비 정도를 더한 수준이면 된다. 실제 가격이 이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에 농민들이 가격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에선 물가 핑계를 대며 수확기 직전에도 수입을 강행하고 있다. 물가에 농산물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데도 말이다. 수확기 농산물 수입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고 국내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선 수확시기에 저율관세 수입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결국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지게 되고,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지면 수출국에서 가격 결정권을 쥐고 흔들 수 있다.

조대성 유기농 수입은 주로 가공품이 차지한다. 참기름을 예로 들면 인도산 유기농 참기름과 국산 유기농 참기름의 가격 차이가 두 배 넘게 난다. 가격을 이기는 건 없다 보니 가공 유기농 시장은 수입산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유기농 소비가 주로 이뤄지는 생협 등의 경우 생산자 의견이 무엇보다 주요해 가공에 쓰일 원물을 수입하거나 할 때 생산자와 협의가 이뤄지는 차이점이 조금 있다.

박미정 선진국에서는 농산물 가격의 많게는 60~70%를 보조하며 농가의 생산비를 보장해주고, 소비자에게는 부담이 덜 주는 정책을 펴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 일각에선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지 않느냐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실제 보조금은 대개 대규모 법인 등에 집중되고 일반적인 소규모 농가에겐 보조금이 돌아가질 않는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난해 최대치로 폭락한 쌀값과 다르게 즉석밥 가격은 20%가 올랐다. 부재료인 비닐, 플라스틱 등의 가격이 급등해서 그렇다. 그럼에도 즉석밥 가격 인상 등은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농산물을 겨눈다. 씁쓸한 마음이다.

전승욱 도시민 대부분이 기후변화나 꽃이 피고 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둔감하지만 수치 등에는 과도하게 예민해진 상태 같다. 실제 농산물이 물가 비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언론이 이를 조금 조장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사실 농업은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필수재니까. 때문에 의료보험처럼 국가 보조를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의료보험 제도를 통해 국가가 충분히 보조를 해주기 때문에 의사는 넉넉한 생활을 하고 국민은 매일 병원을 다니더라도 그 부담이 덜하다. 직불금 등으로 생색만 낼 게 아니라 필수 농산물을 국가가 보전해 소비자는 적정한 가격에 국산 농산물을 충분히 소비하고, 농민들은 농업 생산 활동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아롬 텃밭이 있어 많은 양을 자급하지만, 2인 가구로서 한 달에 농산물을 얼마만큼 소비하나 따져봤다. 2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부끄럽지만 외식비용이 더 많았다. 주변인들과 이에 대해 얘기하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는데, 쌀값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농산물 가격을 잘 모르고 있고 농산물 가격을 큰 타격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물가 인상을 체감하는 가장 큰 창구는 뉴스였다. ‘감자 가격이 올랐다’, ‘양파 가격이 올랐다’ 등의 정보를 쉴 새 없이 제공해주다 보니 뉴스를 보고 ‘아, 요새 감자 가격이 올랐다는데 감자 대신 다른 걸 살까’하는 생각을 하는 거지 소비자가 마트에 가서 ‘저번보다 감자 가격이 올랐네, 다음에 사야겠다’ 이러지 않는다는 의미다. 언론에서 농산물 가격을 물가 토픽으로 다루는 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떠들썩했던 양곡관리법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류미선 매년 수입해야 하는 쌀이 있다고 듣기도 했고, 밀가루 위주로 식습관 자체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쌀이 남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진짜 쌀이 남는 것인지, 만약 남는다면 쌀을 계속 생산하는 게 맞는지, 남은 쌀을 쓸 곳이 없는지 묻고 싶다. 그저 윤리적으로 ‘농민들을 지원해야 합니다’가 아니라, 변화하는 지금 시대에 적당한 정책이 뭔지 양곡관리법도 그저 정치적으로 이용된 건 아닌지 궁금하다.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으로 사실 혼란에 빠지긴 했는데, 양곡관리법에 대한 농민들의 진짜 생각도 듣고 싶다.

전승욱 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비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밥 대신 모든 끼니를 밀가루로 먹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쌀 문제와 관련해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떠오르는데, 우리가 생산을 안 하니 일본이 이를 무기 삼았던 기억이다. 반도체 소부장은 제조업이니까 공장 짓고 돈 들여서 만들면 되는데 쌀은, 기반이 무너지면 농업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어려움이 닥칠 게 분명하다. 최소한 쌀이나 곡류 등 필수적인 소비재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의 정책 기조가 모든 걸 시장에 맡기자는 것 같은데, 쌀의 경우 이러한 태도가 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이아롬 주변을 둘러보면 양곡관리법에 대해서도 딱히 의견이 없었다. 밥이 당연한 세대가 아니다 보니 주변 농민들을 생각해서 국가가 쌀을 관리하는 걸 찬성해야 할지, 밥 안 먹는 사람이 앞으로 더 많아질 텐데 하는 식의 접근이 맞을지에 대한 고민이 좀 있다. 물론 양곡관리법을 찬반으로 나누고 찬반 모두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도 있고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근혁 양곡관리법의 본질은 쌀 생산량이 크게 늘거나 쌀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시장격리를 해서 쌀을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이를 시장에 풀거나 가공 등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 이슈가 떠오른 건 지난해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음에도 정부가 정책을 펼치지 않아서다. 지난 2019년에 제도가 바뀌며 목표가격제를 폐지했고, 당시 농민들은 쌀 가격 폭락 시의 대책을 요구했지만 국회의원들은 자동시장격리제도를 둬 이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여야가 똑같았다. 하지만 실제 가격이 폭락하고 시장격리를 요구하자, 자동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이에 양곡관리법을 제대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매년 1조원이 넘는 예산이 쌀 농가에 쓰이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 여론에 힘을 실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생산량과 가격 기준을 초과하거나 미달했을 때만 해당 예산이 쓰이는 거다. 또 양곡관리법은 쌀 가격을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란 걸 분명히 전하고 싶다.

박미정 1인당 쌀 소비량이 줄어든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 논리도 왜 남는 쌀 자꾸 심고, 안 그래도 예산 없는데 강제 수매까지 하란 얘기냐 이거다. 그래서 양곡관리법도 거부한 거다. 그런데 1인당 쌀 소비량이 진짜 줄었을까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집에서 밥이나 떡을 해 먹는 경우만 쌀 소비량으로 산정하고 있다. 식당에서 소비하는 쌀과 즉석밥 소비량도 포함하지 않는 거다. 조사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정부는 이걸 근거로 정책을 펴고 있다. 거기다 예산을 핑계로 양곡관리법은 거부하면서, 수입쌀 사들이기 위한 올해 예산은 30%나 증액했다.

조대성 개인적으로는 쌀이 농촌의 기득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귀농하려는 사람은 농촌에 내려와도 논을 구할 수 없다.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파종, 육묘, 정식, 물관리까지 싹 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때문에 쌀에 지원을 한다고 하면, 편중된 농민에게 그 혜택이 갈 수밖에 없다. 농사지으면서 느낀 점은 쌀에 대한 이슈도 중요한데 소농들이 살기 위해서는 논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기형적으로 한 작물만을 지원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쌀에 집중된 지원의 반작용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 농민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상경투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굉장히 공허하고 외롭다는 말씀을 했다. 이를 계기로 농민들만 농업 문제를 얘기할 게 아니라, 도시민과도 손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좌담회 소회를 청해 듣겠다.

박미정 올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는 데 1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국민 인식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구닥다리 무기를 대놓고 18조원이나 들여 사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식량안보가 중요하다 하면서도 농민 육성 대책이나 식량자급률 확산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의 의지가 없다. 여전히 수입으로 자급률을 높이려는 구상만 하고 있다. 국민이 살려면 농업이 있어야 하고, 농업이 살려면 농민이 있어야 한다. 농민들이 빚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시민과의 합의, 도시민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다. 이 과정이 없으면 식량안보니 식량주권이니 하는 것들은 헛구호가 아닐까 싶다.

이근혁 농민이 힘든 와중에도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농업이 유지되는 한 농업의 중요성을 알기 힘들 것이다. 쌀이 없거나 마늘, 양파, 배추가 없는 상황이 오면 국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불편해질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먹거리와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정책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시민들의 관심이 농업을 지키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대성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것 같다. 농업이라는 게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발전 가능성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농업 정책은 산업으로 보면 안 되고 국가 기반이기 때문에 안보 차원에서, 너무 식상하긴 하지만 안보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류미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 오늘 여러 얘기를 듣고 나니 농업 정책에 디테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대부분의 보조금이 대농을 향해 있고 소농들은 빚에 허덕인다는 현실을 알고 나니 앞으로의 농업 정책을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볼 예정이다. 농업 정책, 관련 법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전승욱 우리나라만큼 유행에 민감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정책마저 유행에 민감하다. 또 양자를 잘 융합해 가져갈 생각 대신 하나만 선택하고 또 다른 하나는 버리는 식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균형이 필요할 것 같다. 선진국에서 농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우리도 농업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것 같다. 이걸 뒷받침하려면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농민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맡겨진 일인데 각자도생 시대를 살다 보니 많이 단절돼 있었던 것 같다. 도시 소비자와 농촌 농민들 생활 사이의 연결이 조금 더 활성화돼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아롬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게 소비자도 상당히 다양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농산물 등을 소비하는 게 일상적인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오늘날엔 먹거리가 이벤트화된 세대도 다수 존재하는 것 같다. 베이글 가게에서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베이글을 사 먹는 세대 등이 그 예다. 이런 현상 자체가 소비자를 소비자로만 머물게 하고, 이벤트만 쫓아다니게 만드는 것 같다. 소비자와 농민 사이 심화된 연결감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