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수입산 ‘알몸배추’·‘들쥐고추’, 이대로는 피할 수 없다

수입농산물 총체적인 위험요소, ‘식량주권’ 근본 인식 중요

정부 농산물 수입 남발 시대 … 시민들 역량이 버팀목 된다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2 21:0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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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1년 3월, 중국 한 업체의 배추 절임작업 사진이 SNS에 공개돼 대중을 경악게 했다. 배추가 절여진 구정물 속을 녹슨 포클레인이 휘젓고 있고 그 옆에선 상의를 탈의한 남성이 하체를 물에 담근 채 작업하고 있다. 이 사진은 중국산 김치는 물론 국내 김치산업과 외식업 전체에 타격을 입힐 만큼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이른바 중국산 ‘알몸배추’ 파동이다.

배추에 문제가 생기자 배추김치 대신 총각김치·열무김치·오이소박이 등의 수요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실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수입농산물은 이미 우리 밥상을 속속들이 점령한 지 오래고 중국산 배추김치 역시 눈에 보이는 배추뿐 아니라 고추·마늘·생강·무·당근·쪽파 등 수십 가지 중국산 식재료의 혼합물이다. 이 가운데 당장 고추만 해도, 건고추 더미를 뒤지자 바글거리는 들쥐떼가 튀어나오는 중국의 영상이 2020년에 공개된 바 있다.

더욱이 매스컴을 타고 일시에 확산하는 먹거리 논란은 그 수명이 매우 짧다. 2020년까지 연간 28만~30만톤으로 정점을 찍은 중국산 김치 수입실적은 2021년 알몸배추 파동으로 24만톤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26만톤으로 올라섰고 올해 5월까지 12만톤을 기록, 전년동기(9만8,000톤)보다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음식점의 중국산 김치 사용 비율 역시 2020년 85.7%에서 파동 직후 69.3%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80%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비단 알몸김치 파동의 특수성이 아니라, 2009년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도입 때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 바 있다.

녹슨 포클레인과 알몸의 사내가 절임배추를 휘젓는 ‘알몸배추’(왼쪽), 들쥐가 들끓는 건고춧더미를 태연하게 갈퀴질하는 ‘들쥐고추’ 영상의 한 장면. 인터넷 커뮤니티 및 유튜브 영상 갈무리
녹슨 포클레인과 알몸의 사내가 절임배추를 휘젓는 ‘알몸배추’(왼쪽), 들쥐가 들끓는 건고춧더미를 태연하게 갈퀴질하는 ‘들쥐고추’ 영상의 한 장면. 인터넷 커뮤니티 및 유튜브 영상 갈무리

자극적 이슈는 금방 사라지지만, 시장개방과 같은 실제적 문제는 국내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2000년대부터 줄곧 연간 22만톤 수준을 유지했는데, 2016년 한-중 FTA 발효 이후 30만톤 수준으로 늘어났고 이후 알몸배추 파동에도 불구하고 20만톤 중후반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수입농산물은 눈에 보이는 특정 품목, 특정 이슈와 상관없이 모든 분야에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보다 위생관념이 낙후된 나라의 농산물도 문제지만 위생선진국의 농산물이라도 긴 수송기간을 견디기 위한 방부제와 훈증제, 유전자조작식품(GMO) 등의 위험이 늘 따라다닌다. 이들 산발적인 위험요소는 국지적 이슈에 휩쓸리기보다 ‘식량주권’ 관점에서의 근본적 성찰이 있어야만 대처가 가능하다.

수입농산물이 갖는 문제는 단지 위생·건강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러-우 전쟁에 따른 국제곡물가 상승과 국내 물가 격동 사례에서 경험했듯,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할수록 국가경제와 국민생계는 그 지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원거리 해상·항공 수송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농업 생산단계의 배출량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인 만큼 적어도 먹거리 분야에선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최대 요인이 되기도 한다.

농산물 수입을 기본 전제로 하는 개방 위주 농정은 보수성향 정부일수록 그 색깔이 짙어진다. 윤석열정부 역시 물가 억제를 위해 농산물 수입 카드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역사상 처음으로 마늘·고추 등 국산 농산물 수확기에 동일 품목 국영무역을 추진하기까지 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식량주권에 대한 정부의 관념이 약한 만큼, 먹거리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역량이 중요한 시기다.

주요 농산물 가운데 식량주권 상실의 결과를 가장 근접하게 보여주는 품목이 건고추다. 건고추 자체엔 관세 보호막이 있지만 냉동·다대기 등의 저관세 우회수입이 만연하며 정책은 이 맹점을 방관해왔다. 그 결과 건고추의 자급률은 40%대. 2010년대 후반 이어진 만성폭락과 값싼 중국산 시세탓에 건고추는 생산비 밑으로 폭락해야만 시장에서 ‘정상가격’ 취급을 받고 농가소득이 발생하면 ‘폭등’ 취급을 받는다. 자급률 회복의 길은 사실상 차단됐으며 아무리 ‘들쥐고추’ 영상이 떠돈다 한들 이제 국민들이 먹는 고춧가루의 절반 이상은 수입산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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