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그냥 붙여 놓으니께 보기도 안 좋고, 먼지도 앉고 해서 말인데, 액자를 좀 해서 끼워 놓으라고. 이장이 시내 나갈 때 해오지.” 정선택의 말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고, 왜 진즉에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꼬, 하는 작은 탄성들이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 거개가 사진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던 준석이었다. 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회관에 대통령 사진을 걸어두는가 싶었던 것이다. 준석의 기억으로는 전두환 시절에도 사진을 걸지는 않았었다. 대통령이 된 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만 곳곳에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러니까 삼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부녀 대통령이 탄생하고 마을도 자못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글쎄요, 꼭 대통령 사진을
강원도의 산골에서 태어나 산채 먹고 자라난 내게 있어 가장 친근한 나물은 고사리다.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나물이기 때문이겠다. 봄에 비가 그치고 집 근처의 산이나 들에 나가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고사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른들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산나물 들나물을 채취하던 놀이 같은 재미 뒤에 고사리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가지고 있다. 지리산으로 이사 온 어느 해 봄 ‘덤 앤 더머’ 같은 느낌의 할머니 친구 두 분을 따라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간 적이 있었다. 취나물도 뜯고 다래순도 따고 늦은 두릅순도 따면서 눈에 들어오는 고사리를 꺾어 배낭에 담는 재미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중의 으뜸이라 할 만큼 빠지게 된다. 한참을 돌아다
앞산 뒷산에서 장끼가 소리친다. 까투리를 찾아 부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콩(大豆)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농사에 서툰 사람은 콩 심는 시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콩은 까투리가 알을 까서 꼬랑지에 꺼병이를 매달고 다닐 때 쯤 심어야 한다. 너무 이른 시기에 콩을 심으면 콩이 매달리지 않는다. 요즘 귀농하는 이들이 그런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콩 씨를 넣고 꿩이나 비둘기와 사투를 벌이고 가뭄과도 싸워 콩 싹을 올려놓고 보면 주위어른들이 핀잔을 한다. 소를 먹이라는 둥 땔감이냐는 둥 ...콩은 봄에 파종하는 작물이 아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망종 무렵에 심어야 한다. 제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콩대만 웃자라고 콩을 맺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 콩은 우리역사와 함께한 귀중한 작물이다. 육류성 단백
“사실은 나도 영주 아버지, 그러니까 서준석 씨가 이장을 봐야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소. 다만 현 이장인 정갑철 씨가 큰 대과 없이 해온 터라 그간 정리로 보아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을 뿐이었소. 서준석 씨가 농협 총대도 보고 있고, 면내에서 인간관계도 넓으니까 잘 할 거라고 봅니다.” 뜻밖이었다. 정선택이 근엄한 말투로 아퀴를 짓자 분위기는 그대로 준석이 이장을 맡는 것으로 넘어갔다. 다만 정갑철만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이장을 맡게 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장을 맡아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마 평생 처음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는 재미에 들렸던 그로서는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다들 생각이 같은 걸루 봐야겠쥬? 정갑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바람 따라 보리밭도 같이 일렁인다. 푸른 바다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그 모습도 영락없이 바다와 닮아 있어 역시 제주의 보리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5월이 지나고 6월이 되고 보리타작을 하고, 그러면 본격적인 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때이므로 우리 몸은 더위를 피하는 음식을 부르는데 그 음식의 중앙에 보리밥과 된장, 오이 등이 있고 제주엔 육지에 없는 자리돔이 하나 더 있다. 딱 어린 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자리돔은 산란기인 5~6월이 제철로 산란기가 지나고 나면 뼈가 더 억세어지고 커지므로 젓갈로 담아 두고 일 년 내내 먹는다. 그러므로 그 크기는 작아도 제주 사람들의 밥상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꽤나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죽어지내다시피 드러누워 봄이 오길 기다리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들 뿐 만이 아니다. 말라버린 그루터기들이 제빛을 잃어버린 색 바랜 논들도 봄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트랙터가 들판을 울리고 봇물이 고랑을 빡빡하게 흐르면 논들은 모내기 준비로 한창 들썩인다. 색 바랜 논들이 물빛과 여린 볏모들의 환희로 가득차면 농촌의 들녘은 비로써 꽉 들어찬 충만함을 보여준다.이런 농촌의 모습을 완성시키는 모내기는 우리네의 오랜 습관이다. 마을 어른 중 누군가가 말끝을 잊지 못하며 그랬다. “이제 몇 번의 모판에 씨 나락 앉히는 일을 하게 될지….” 오래전부터 한해를 다시 맞는 것은 농사와 깊게 골이 맺혀있었다. 새로운 해를 맞으며 죽음의 문턱에 그만큼 가까워 젖지만 여전히 나락을 뿌리고 모를 내고 콩을 심는 것이다. 그것
“그럼, 두섭이네는 누가 이장을 했으믄 좋겠다는 거유?” 양만득이 맹한 표정으로 부녀회장을 바라보았다. 올해 오십이 되는, 마을에서 세 번째로 젊은 편인 그녀는 주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여자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편이었다. 젊은 데다 마을 일을 제 일처럼 늘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기 때문이었다. 회관 청소며 음식이며 그녀가 나서서 손을 내지 않으면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가 붙박이로 부녀회장을 한지 벌써 육년 째였다. “저 혼자 생각은 아니구, 다덜 영주 아부지가 한 번 해야허지 않을까 말이 돌었시유. 왜 저한테만 그런대유? 우리찌리 있을 때 성진 할무니두 그리 말씀하셨는데.” 석준은 속으로 으이구, 하고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성진 할머니란 다름 아닌 정선택의 부
할아버지의 밥상에나 가끔 오르던 소고기, 아이들인 우리들은 병이 나서 심하게 앓고 난 다음에라야 몸을 추스르라는 뜻으로 끓여주시던 죽에서 볼 수 있었던 소고기를 떠올린다.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때였으니 만큼 투정을 부릴 처지도 아니었기에 일 년이면 불과 몇 번 밖에 먹을 수 없었던 소고기는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먹을 것이 흔해진 요즘에도 여전히 밥상에 쉽게 올릴 수 있는 먹을거리는 아니다. 닭처럼 성질이 따뜻한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처럼 몸을 차게 하지도 않으니 형편만 된다면 평소에 자주 먹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소고기는 그 맛이 달다. 비장이나 위장을 도와 몸에 기와 혈을 더해주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오래된 병으로 몸이 허약해졌을 때 먹으면 회복을 빠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문헌
피는 것은 어려워도 지는 것은 쉽다더니 인공수분이 끝나자마자 꽃잎이 흩날린다. 한해농사가 인공수분의 결과에 달렸으니 배과수원은 모두가 정신없이 비상상황이다. 일을 할 사람은 없고 시간은 촉박하다. 막걸리 마셔가며 꽃구름속에 어쩌고 하다가는 패농하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그러다 보니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수분용 꽃을 따다가 꽃가루를 묻혀준 것은 70년대 방식이다. 80년대 개방농정은 농법도 수입됐다. 선진농가라는 사람들이 수분용꽃을 길러 화분을 채취해서 인공수분을 했다. 지금도 일부기술센타에서 꽃가루은행을 시행하는데 일손이 모자라고 기계가 없는 농가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엔 중국의 값싼 수분용 꽃가루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지자체는 꽃가루값 일
말단 공무원도 내려 보는 이장 자리일지언정 머리에 든 게 있고 관에 가서 말발이라도 세울 줄 아는 사람이라야 마을에도 득이 될 터이고 정선택으로 말하자면 누가 뭐래도 마을에서 제일 많이 배우고 면이 아닌 시에서도 함부로 보지 못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에, 정선택이 다시는 이장을 맡지 않겠노라는 선언과 함께 그 자리를 내려놓을 때까지 마을의 이장은 당연히 정선택으로 알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때도 이미 예순 중반이었던 정선택은 면내의 이장 중에 자신이 제일 나이가 많다며 이제 나다니기도 창피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받혀 달포 넘게 병원에 입원했던 것도 이유였다. 그런데 정선택의 뒤를 이어 이장이 된, 지금은 흙보탬이 된 최성대가 맡은 지 일
대한민국 최후의 오지를 한 곳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경북 영양을 말할 것이다. 개발이 덜 된 원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고 느껴지는 일월산이 있어 더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오지답게 꽁꽁 숨겨진 산채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다. 게다가 경상북도 보건환경연구원 산채류 연구팀이 영양지역에 자생하는 산채류의 생리활성에 대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항고혈압 활성, 항당뇨 활성, 항산화 활성 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활성이 뛰어난 영양의 산채류 중 특히 어수리는 항고혈압·항당뇨 활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미나리과의 어수리는 다년초로서 성인 키 만큼 자라지만,
손전화를 내던져버릴까를 여러 차례 고민하고 있다. 이미 그렇게 결행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음을 주위에서 보고 있어 고민은 더 깊어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는 그런대로 소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들어오는 금융권의 집요한 광고와 마지막기회를 강조하며 새전화기를 구입하라는 판촉까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도대체 누가 내 전화번호를 팔아먹었는지에 대한 분노와 금융자본주의의 끝장이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대감이 교차한다. 이렇게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돈을 빌려가라고 꼬시는 것을 보면 투자에 한계가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손전화 시장도 새로운 시장은 없고 이미 형성된 시장안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 가입자를 가져가는가가 살아남는 조건이 된 것이리라. 바로 제로섬게임의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자녀나 손자 있으신 분 계신가요? 장학금 때문인데요, 시곡에선 아무도 없구먼요. 다음에 각자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지만, 올해 화재 공제나 안심운전자 공제가 만기 돌아오는 분이 몇 집 있네요.” 이상태를 따라온 박한주가 서류를 뒤적여가며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제 담당으로 상무인 그녀는 오십 줄을 넘어선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주름살 없는 얼굴이 탱글탱글했다. 그녀는 연봉이 조합장보다도 많다. 일반 보험 모집인들은 발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뜨악하게 쳐다보기 마련이지만 시골에서는 농협에서 하는 공제라고 하면 그저 들어야 하나보다 하고 선뜻 들게 마련이라 박한주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어떻게 돌아가는 조화속인지 무지렁이들이 알 리 없는데 아마 거기에서 떨어지는 커미션
초등학교 다니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체하셨다고 가슴이 쥐어뜯듯이 아프다고 하셨다. 며칠간 고생을 하셨고 그 후로도 가끔씩 같은 증세를 호소하시면서 고생을 하셨다. 내가 좀 더 자란 후 어머니께서 그러실 때마다 드신 음식을 찾아보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범인이 오징어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징어만이 아니라 오징어 비슷하게 생긴 문어나 낙지 따위를 드셔도 늘 같은 통증을 느끼시기로 어머니는 아예 다리 많은 오징어 비슷한 것도 입에 대지 않으신다. 국물이라도 드셨으면 좋겠지만 그야말로 국물도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가능하면 낙지나 주꾸미, 오징어, 문어 등을 집에서 먹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일인지 알이 꽉 찬 주꾸미가 제철인 계절인 요즘 어머니께서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돼지새끼 세 마리를 얻어다 길렀다. 하교길에 음식점에서 짠밥(잔반)을 얻어와 먹이고 쌀겨와 뜨물로 길렀다. 돼지우리가 허술해서 가끔씩 뛰쳐나온 놈들과 과수원사이를 쫒고 쫒기며 숨박곡질하기도 여러차례, 다자란 돼지를 잡아 이웃과 나눠먹었다. 처마 밑에 돼지고기를 걸어두면 꾸둑하게 마르는데 이때 부엌에서 나온 연기가 자연스럽게 고기의 부패를 막아줘 오래두고 먹을 수 있었다. 옛날엔 돼지고기 조리법이 다양하지 않아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먹어야 본전이란 말이 있었다. 기껏해야 삶아서 큼직하게 썰어 두꺼운 비계와 함께 새우젓에 찍어먹었다. 특히 먼지가 많이 나는 탈곡일을 하고선 목구멍에 때를 벗겨야 한다며 즐겨 먹었다. 삼겹살이 일반화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삼겹살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등장
“에, 조금 더 있으면 저희 농협 사업보고서가 나올 것이고, 그걸 보믄 아시겠지만, 올해 우리 농협은 타 지역 농협보다 참 사업을 잘했다고 헐 수 있습니다. 아마 배당두 작년보다 더 할 거 같습니다. 다 여러분덜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만, 지가 쬐끔 서운한 말씀을 드리자믄, 그 농약이나 농자재럴 왜 개인업자한테 이용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제가 이해를 못하겠는 것이 십원이 싸도 농협이 더 싸고 나중에 이용고 배당도 하는데, 그리고 농협은 어차피 조합원 여러분덜이 주인인데, 주인이 자기 것 놔두고 남의 집 가서 사 쓴다는 건 좀 이상허지 않습니까? 제가 산동농약사 하고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들 모르는 말씀을 허는 분덜도 계신데, 절대 그런 게 아니고요. 여러분덜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보는 쪽으루 해야허지
앞산에 초록의 새순들이 올라오기도 전 사람의 살색과도 비슷한 색의 가녀린 가지 끝에서 부끄러워 붉어진 꽃잎을 달고 있는 진달래꽃을 본다. 전국의 어느 야산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봄꽃이지만 어쩐지 측은하고 스산한 것은 한기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이른 봄의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두견새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은 여자의 무덤가에서 해마다 붉게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라디오 방송 때문인지도 모른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마을에 전해오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딸 영랑이 안샘의 물로 백일간의 기도 끝에 만들었다는 두견주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진달래꽃을 볼 때 마다 느꼈던 그 서글픈 느낌도 없어졌다. 복지겸의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서인지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거대한 뿌리’를 통해 새로운 사회건설의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고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봤을 때는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그 모습과 행위에는 반드시 그 나름의 문화와 정서가 거대한 뿌리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면 결국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 봤다. 따라서 그 ‘거대한 뿌리’를 확인하고 인정한 가운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의 시대(60년대)에서 우리의 역사적 경험치를 무시한 채 외국의 새로운 정치제도를 이식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나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새로운 사회건설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목도한 4.19는 희망이었고 가능성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풀’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기
면내에서도 작은 마을인 시곡 마을이 부자 마을 소리를 듣게 된 연유가 있었다. 본래 빈촌인 산동면 여러 마을 중에서도 시곡은 더 살림살이가 째는 마을이었다. 산동면 전체가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흑싸리 껍데기 같은 곳이었다. 소백산맥 줄기라도 이름 있는 산도 없어, 근동의 사람들도 나이 어린 축은 알지도 못하는 장지산이니, 깨금봉이니, 태장골이니 하는 3,4백 미터쯤 되는 산에 이름도 없이 앞산 뒷산으로 불리는 낮은 산들이 엎드린, 어찌 보면 무색무취한 충청도의 작은 고을인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 동네가 그렇듯 맑은 공기나 깨끗한 물 정도가 억지로 끌어다대는 자랑이면 자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소, 돼지를 대규모로 키우고 골프장까지 들어서면서 동네 개울에는 아예 발도 담그지 못하게 되어 그나마도 허
방풍나물은 허균이 살던 시대로부터 4세기나 지난 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21세기의 세상에서 비로소 그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길동전 외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작가로 허균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나는 그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맛 칼럼리스트라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라 불리는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속 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음식의 재료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다양함은 물론이지만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곳곳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을 잘 분류했으며 그 자료는 요즘 보아도 결코 녹녹하지 않은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을 통해 세상에 나온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가 강릉에서 먹었다는 방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