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후 지리산 고사리 꺾기

  • 입력 2013.05.19 17:23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태어나 산채 먹고 자라난 내게 있어 가장 친근한 나물은 고사리다.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나물이기 때문이겠다.

봄에 비가 그치고 집 근처의 산이나 들에 나가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고사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른들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산나물 들나물을 채취하던 놀이 같은 재미 뒤에 고사리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가지고 있다.

지리산으로 이사 온 어느 해 봄 ‘덤 앤 더머’ 같은 느낌의 할머니 친구 두 분을 따라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간 적이 있었다. 취나물도 뜯고 다래순도 따고 늦은 두릅순도 따면서 눈에 들어오는 고사리를 꺾어 배낭에 담는 재미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중의 으뜸이라 할 만큼 빠지게 된다.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봄이었던 때였으므로 산 속에서 비를 맞으며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워 얼굴까지 파랗게 되었는데 그 모습으로 보고 묘한 웃음을 흘리며 서씨 할머니께서 한 말씀 해주셨다.
“춥지? 되게 추우면 옷 입은 채로 소피를 봐. 그러면 엄청 따뜻해.” 

아무튼 맛도 좋고 쓰임새도 많은 고사리지만 유독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오래 먹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코가 막히며 머리가 빠지고 발이 약해져 잘 걷지 못하게 된다고 한 기록이 있다. 영국의 한 학자는 발암 성분인 브라켄톡신(brackentoxin)과 비타민 B1의 파괴효소인 아네우리나아제(aneurinase)가 극미량 들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물질은 자라면서 더 많이 생기므로 어린순만을 채취해 먹는 것이 좋으며 삶아서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해물질은 감소되어 식용에 문제가 없어진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리하기 전에 쌀뜨물에 담가두거나 여러 번 우려내어 음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안전하므로 걱정할 것은 없다. 고사리 생나물은 조심해야 하지만 묵나물은 식용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칩거하며 고사리로 연명하고 살다가 그것마저 끊고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만 보더라도 고사리 성분의 유해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방에서는 고사리를 궐채(蕨菜)라 부르는데 이 궐채는 단맛을 가지고 있으며 성질이 서늘하고 약간의 독이 있다고 하였다. 간, 위, 대장을 이롭게 하며 열을 내려주고 수분대사에 이로우며 지혈작용이 있어 식용은 물론, 감기로 인한 열이나 이질, 대하, 폐결핵 등에 약재로도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고사리는 맛이 달고 성질이 차며 매끄러우므로 폭열(暴熱)을 제거하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잠을 자게하며, 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뱀에 물리거나 벌레에 물렸을 때 뿌리를 태운 재를 기름에 개어 바르면 도움이 되고 치질로 인한 출혈과 열독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상들은 흉년에 도토리 등과 함께 고사리도 구황식품으로 먹었다고 한다. 고사리에 함유된 녹말과 식이섬유가 포만감을 가지게 하였을 것인데 고사리의 어린 순은 꺾자마자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재빨리 삶아 데쳐야 한다. 꺾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데쳐 말리면 가식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氣)를 보하는 생선이라 조기(助氣)라 불리는 조기 몇 마리 얹고 끓이는 고사리 고추장찌개가 맛있는 때다. 내일 새벽에는 윗집 할머니 따라 나도 고사리 꺾으러 갈까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