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11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5.19 17:25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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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박홍규 화백.
  “사진을 그냥 붙여 놓으니께 보기도 안 좋고, 먼지도 앉고 해서 말인데, 액자를 좀 해서 끼워 놓으라고. 이장이 시내 나갈 때 해오지.”

  정선택의 말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고, 왜 진즉에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꼬, 하는 작은 탄성들이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 거개가 사진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던 준석이었다. 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회관에 대통령 사진을 걸어두는가 싶었던 것이다.

준석의 기억으로는 전두환 시절에도 사진을 걸지는 않았었다. 대통령이 된 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만 곳곳에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러니까 삼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부녀 대통령이 탄생하고 마을도 자못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글쎄요, 꼭 대통령 사진을 회관에 붙여놔야 되나요? 요즘은 관공서에도 안 거는 것 같던데. 다른 동네에두 사진 붙여놨단 말은 읎구……”

  준석이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정선택이 어조를 높여 입을 열었다.
  “허어, 그게 무슨 소린가? 사진을 안 걸다니? 자유총연맹하고 새마을회관이며 가는 데마다 근사하게 액자에 넣어두었드만. 자네가 보기에는 그래, 저렇게 맨 사진을 붙여놓는 게 어디 우리가 할 도리인가? 글고 딴 동네 말할 것이 무엇이여? 우리 동네는 박 대통령 은혜를 절대 잊을 수 읎다는 것을 자네도 알 것이네.”

  “예? 아직 대통령에 취임도 안 했는데 무슨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인지?”
  “이 사람아, 박정희 대통령 말하는 거 아닌가. 가만 있자, 벌써 사십 년이 넘었구만. 그 때 자네도 중학생쯤 되었으니까 기억나겠지. 대통령께서 우리 면에 와서, 그것두 우리 동네에서 모를 심지 않었는가? 그 뿐이여? 다녀가신 뒤루 우리 동네가 을마나 새마을이 되었는지는 다덜 알 것이여. 그런데 이번에 하늘이 보살펴서 영애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가 이리 무심한대서야 어찌 인두겁을 쓰고 사는 사람이라 하겠냔 말이여, 내 말이.”

  사실 준석은 적당히 때를 보아서 사진을 떼어버릴 참이었다. 아직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가 남아있어 회관에 모일 때마다 마치 무용담처럼 선거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터라 그저 두고 있었지만 사진까지 붙여 놓은 것은 남 보기에도 우세스러운 일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예 액자까지 해서 모셔두자니 적잖이 난감하였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판에 혼자 안 된다고 우기기도 어려웠다.

  “어찌 헐까요? 성진 할아버지 말씀대루 액자를 해서 걸까요? 제 생각엔, 아니, 여러분들 의견대루 허겠습니다.”

  “의견은 다 같은 의견일 테구, 자네가 마뜩찮게 생각할 줄은 내 아네. 내 눈으루 보던 않었어두 지난 슨거 때 누굴 찍었는지두 알만허구, 헹. 비용은 내 사비루라두 댈 테니까 그리 알게.”  

  정선택이 준석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준석은 그런 그에게 쏘아주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눌러 참았다. 이장이 된 첫날만 아니었다면 정색을 하고 따졌을 것이었다. 하우스 일을 하느라고 늦게 온 경태만이 입가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때에도 정선택에게 당한 일이 있었다. 선거를 일주일쯤 앞두고 정선택이 준석을 찾아왔었다. 다른 말은 없고 다음 날 점심참에 차를 좀 빌자고 했다. 준석의 트럭은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더블 캡이라 마을에서 여럿이 장에 간다거나 목욕탕이라도 갈 때에 자주 징발되었다.

차가 없는 집이 많고 거의 노인들이라 일이 있을 때마다 준석은 귀찮다는 내색 없이 운전수가 되곤 했다. 게다가 농사 일이 끝난 겨울철이라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그러마고 대답을 했던 것이었다.

  “장도 좀 보고, 아줌씨들은 미장원에두 간다더만.”

  정선택이 밝힌 볼 일은 그러했다. 미장원까지 가면 시간이 많이 걸려 준석으로서는 심심한 노릇이었지만 간 김에 시청 농정과에 있는 농고 동창생이나 찾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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