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風)을 막아주는 나물, 태안반도 방풍나물

  • 입력 2013.03.29 15:16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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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나물은 허균이 살던 시대로부터 4세기나 지난 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21세기의 세상에서 비로소 그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길동전 외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작가로 허균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나는 그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맛 칼럼리스트라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라 불리는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속 <도문대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음식의 재료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다양함은 물론이지만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곳곳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을 잘 분류했으며 그 자료는 요즘 보아도 결코 녹녹하지 않은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문대작>을 통해 세상에 나온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가 강릉에서 먹었다는 방풍의 잎으로 끓인 죽이다. 그 향이 얼마나 좋았으면 사흘이 지나서도 입안에서 방풍의 향이 가시지 않았다고 하는 기록을 남길 정도이니 말이다. 방풍나물은 해풍을 맞고 자란 것이 향과 맛이 더 좋으므로 현재도 제주도나 여수 등 해안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특히 태안반도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태안반도 부근의 한 마을에서는 방풍나물을 재배하고 그것을 요리해 파는 농가맛집도 생겨났다.

방풍나물전
방풍죽에 대해서는 <도문대작>뿐만 아니라 <증보산림경제>에도 “이른 봄에 나는 방풍의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외의 여러 고조리서에서도 다루고 있으며 육당 최남선의 <조선 상식>에는 강릉의 방풍죽이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등과 함께 팔도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으니 그 시대에는 꽤 사랑받는 음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나물로 먹고 있는 방풍나물은 약재로 쓰이고 있는 중국의 방풍과는 다른 갯기름나물이며 그 뿌리는 중국의 방풍과 구별하여 식방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의 방풍이나 우리나라의 식방풍 모두 그 이름에 걸맞게 풍(風)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방풍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고 매우며 36가지 풍증을 치료할 뿐 아니라 오장을 좋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방풍나물은 고기를 먹을 때 생잎을 쌈으로 먹으면 그 향이 절정에 달하고 식감이 특별하지만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나물로 먹으면 은은한 향이 오히려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무쳐도 좋지만 집간장으로 무치면 그 향이 온전히 살아 있는 가운데 깊은 맛을 더해 주므로 더더욱 좋다. 혹 많은 양의 방풍나물이 있어 먹기에 부담스러울 때는 간장양념에 장아찌로 담가 먹어도 훌륭한 밑반찬이 된다.

허균처럼 방풍죽을 느껴보고 싶다면 흰쌀로 죽을 쑤다가 중간에 살짝 데쳐 송송 썬 방풍나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마무리하면 된다. 흰죽과 어우러져 빛을 발하는 색감도 좋고 그 향이 온 입안으로 퍼져 행복해질 것이다.

1611년에 허균이 쓴 <도문대작>의 서문에는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을 경계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쓰여 있다.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 조상들의 건강한 전통 식생활을 버리고 외국에서 가져온 건강하지 못한 빠른 먹을거리에 열광하는 후손들을 우려한 성찰은 아니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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