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 입력 2013.05.10 14:19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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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지내다시피 드러누워 봄이 오길 기다리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들 뿐 만이 아니다. 말라버린 그루터기들이 제빛을 잃어버린 색 바랜 논들도 봄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트랙터가 들판을 울리고 봇물이 고랑을 빡빡하게 흐르면 논들은 모내기 준비로 한창 들썩인다. 색 바랜 논들이 물빛과 여린 볏모들의 환희로 가득차면 농촌의 들녘은 비로써 꽉 들어찬 충만함을 보여준다.

이런 농촌의 모습을 완성시키는 모내기는 우리네의 오랜 습관이다. 마을 어른 중 누군가가 말끝을 잊지 못하며 그랬다. “이제 몇 번의 모판에 씨 나락 앉히는 일을 하게 될지….” 오래전부터 한해를 다시 맞는 것은 농사와 깊게 골이 맺혀있었다. 새로운 해를 맞으며 죽음의 문턱에 그만큼 가까워 젖지만 여전히 나락을 뿌리고 모를 내고 콩을 심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우리네 삶인 것이다.

모내기 즉 이양법을 시작한 것은 17세기 경상도지방에서 본격적으로 시작 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후기부터 이양법이 있긴 했으나 수리시설의 발달이 더딘 한반도는 중국이나 일본에 견줘 한참이나 늦게 시작됐다고 한다. 모내기 적기인 6월이 한참 가물 때이기에 이양법은 굉장히 위험한 농법이었던 것이다.

17세기에 들어 수리관개가 확충되고서야 이양법은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이다. 이로써 대지주가 생겨나고 농사로 신분상승의 기회도 주어지게 된다. 함양 안의면에 허삼둘가옥은 이런 조선후기 광작(廣作)으로 일군 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튼 모내기는 온 나라의 일대 사건이며 축제였다. 부지깽이도 거들고 나서야 할 만큼 고사리 손도 거들어야하는 모두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들놀이와 들노래, 들밥으로 이어지는 흥겨움에 고된 줄 모르고 모를 심었다.

그런데 지금은 들판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서 다들 무엇을 하는지 가끔 너른 들판에 트랙터 한 두 대가 논을 써레고 있을 뿐이다. 활력이라곤 없는 농촌이 이제 제 역할을 그만두게 돼야하는 것인지 무서워진다.

세계식량 사정이 점점 생산과 소비의 역전추세로 가고 있다. 점점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이미 82%대로 하락 했다. 그럼에도 정책은 쌀 감산정책이다. 박근혜정부는 빨리 식량자급에 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농업정책을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직접 챙기겠다는 농업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늦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싸전 앞에 보따리를 들고 줄을 서야하는 일이 지금 시작 되고 있음을 허투루 보아 넘기면 안 될 것이다.

이번 방미로 박근혜 대통령은 확고하고 완벽한 한미FTA를 다시 한 번 확약했다고 한다. 쇠고기 등 미국산 농산물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근원이다. 농산물이 교역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타락한자본의 발상일 뿐이다. 경거망동으로 국민들이 밥상위에 눈물을 떨구는 일이 없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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