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당진 면천만의 특별한 진달래

  • 입력 2013.04.05 09:21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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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 초록의 새순들이 올라오기도 전 사람의 살색과도 비슷한 색의 가녀린 가지 끝에서 부끄러워 붉어진 꽃잎을 달고 있는 진달래꽃을 본다. 전국의 어느 야산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봄꽃이지만 어쩐지 측은하고 스산한 것은 한기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이른 봄의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두견새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은 여자의 무덤가에서 해마다 붉게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라디오 방송 때문인지도 모른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마을에 전해오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딸 영랑이 안샘의 물로 백일간의 기도 끝에 만들었다는 두견주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진달래꽃을 볼 때 마다 느꼈던 그 서글픈 느낌도 없어졌다.

복지겸의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서인지 이 면천마을에서는 한식(동지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로 해마다 4월 5일 전후에 해당)에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진달래꽃으로 담근 두견주와 진달래화전을 밥상에 올려 조상들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어디에나 흔한 진달래지만 그 속에 숨은 면천지역에서만 맥이 이어져 오는 두견주가 있어 면천면의 진달래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특별한 진달래임이 틀림없다.

영산홍이라는 한의학명을 가진 진달래는 그 맛이 시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독이 없다. 주로 뿌리를 채취하여 깨끗이 씻고 썰어서 말린 후 약재로 쓰는데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토혈, 코피, 월경 불순, 자궁 출혈, 직장 궤양 출혈 등을 멈추게 한다. 규합총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조들은 봄이면 흔하게 빚어 먹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두견주는 기침이나 천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인 걸렸던 병은 어쩌면 출혈을 동반한 기침이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한식(寒食)이 지나갔다.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한식날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일으킨 새 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민가에서는 진달래꽃을 찹쌀가루로 만든 둥근 떡에 얹어 참기름에 지진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었다.

또한 진달래꽃의 술을 떼어 내고 살짝 씻어 건져 녹말을 입힌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오미자 우린 물에 띄워 먹는 두견화채는 화전과 더불어 한식을 전후로 해먹는 음식의 사치로는 절정에 이른다. 녹두녹말을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꿀물에 띄운 뒤 잣을 곁들인 화면(花麵)을 만들어 사당에 올려 조상들을 먼저 대접하고 먹었다.

며칠 후면 삼월 삼짓날이다. 한식을 즈음하여 화전을 부쳐 먹고 두견화채를 해서 먹는 조상들의 음식문화는 3이라는 숫자가 겹치는 양기(陽氣) 넘치는 날인 삼월 삼짓날에 이르러 완성된다. 겨우내 집안에 있던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오랜만에 집을 벗어나 산과 들로 나가 진달래꽃을 따면서 화전놀이를 즐겼다고 하니 신윤복의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에 표현된 봄의 정경 속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진달래의 모습도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특히 진달래꽃잎에는 유기산과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항산화효과가 있는 비타민이 풍부하며  여성들의 생리를 편안하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며 기침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하니 어쩌면 음력 3월 3일에 산과 들로 나가 진달래화전을 부쳐 먹고 즐기는 풍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꽃 한 송이를 통해 즐기던 멋스러운 식생활문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여성들의 건강을 배려하는 마음도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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