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에서 제주까지’,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위해 모였다

지난 6일 전국연대회의 준비위원회 출범 후 12일 세종 산업통상자원부 앞 집회 개최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개발 즉시 중단 및 이격거리·주민수용성 강화·자립계획 수립 촉구

  • 입력 2021.05.13 18:52
  • 수정 2021.05.14 13:29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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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간척지 태양광 중단 및 이격거리 강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간척지 태양광 중단 및 이격거리 강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따가운 볕이 내리쬐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아스팔트 바닥 위에 전국 농민과 농촌 주민 50여명이 모여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울분을 쏟아냈다.

지난 6일 출범한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연대회의 준비위원회(전국연대회의 준비위)’가 주최한 이날 집회는 풍력·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와 화력·천연가스(LNG) 발전, 송전탑·송전선로 등 에너지로 인한 전국 각지의 농어촌파괴 현실을 한데 모아 알리고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열렸다. 더불어 전국연대회의 출범 준비를 알리는 의미도 더했다.

집회에는 준비위 실무진을 비롯해 강원 홍천군 송전탑 반대 대책위, 경북 청송 면봉산 풍력 대책위, 충북 음성 LNG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위, 제주 보롬왓 풍력 발전지구 비상대책위 등의 공동 대표들과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 연대회의 관계자 및 무안·화순·순천·영암·완도·해남 등의 지역 대표가 참석했다.

전국연대회의 준비위원장을 맡게 된 위두환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식량자급률이 22%에 불과한 나라에서 국제 식량가격이 치솟는 와중에도 농지에 태양광 설비와 풍력 발전기, 송전탑·송전선로를 세우고 있다. 또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한편으론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주택과 창고 옥상, 산업단지나 공장 지붕 등 풍력·태양광 발전을 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송전탑과 송전선로를 최소화하고 농산어촌 환경과 마을공동체 파괴를 막아내기 위한 해결책을 머리 맞대고 늦게나마 이제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후 현장 발언은 경북 청송과 전남 무안, 강원 홍천과 충북 음성 대표자들 순서로 이어졌다.

2016년부터 풍력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최상희 경북 청송 면봉산 풍력 대책위원장은 “칼데라 지형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면봉산은 경사도가 일반적으로 30도 이상이며, 정상부는 50도를 넘기도 하지만 이를 평지화시켜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격거리를 4km 이상으로 권장한다는데, 풍력발전기가 200m 높이 이상으로 커지는 와중에도 정부는 이격거리를 민가로부터 1km, 500m로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면서 “관계부처에서 말하는 주민 동의는 사실 의미 없는 절차일 뿐이고, 풍력발전기 설치를 반대하다 지금은 업체와 24억원 소송에까지 휘말린 상태다.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했지만 면봉산 3개 면 주민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람 보다 전기, 탄소, 기업이 먼저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정학철 준비위 공동집행위원장은 “풍력 반대 투쟁이 진행 중인 화순군도 발전사업 허가 주민 동의 서류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 이름이 수두룩하고, 15년 전 돌아가신 분 이름까지 확인되는 실정이다. 이런 게 바로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돼 버린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이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덕환 전남 무안 운남면 간척지태양광 대책위 공동대표는 “5개 리로 구성된 무안군 운남면에서만 현재 241건의 태양광 사업이 허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진행 중이다. 공무원들은 자기가 사업자인 것처럼 주민 설명회를 준비하고 추진하고 있다”라면서 “어민들을 내쫓고 식량 생산을 위해 수억원을 들여 만든 간척지를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염해 측정 방식을 들이밀어 염해간척지로 둔갑시키고 있다. 태양광도 좋고 풍력도 좋지만 놀고 있는 주택·건물 옥상, 공장·창고 지붕 놔두고 멀쩡한 농지를 없애버리는 건 안 된다”고 성토했다.

최영회 음성 LNG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위 사무국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가장 강력히 추진 중인 탈원전 탈석탄 정책은 대책도 없이 주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천연가스라고 해서 친환경일 거라 생각하지만 화력 발전이나 마찬가지인 데다 이산화탄소가 매년 290만톤이나 발생한다”라며 “매몰비용 보상을 노린 지방자치단체는 전담부서까지 만들어 사업을 유치하려 애쓰며 주민들의 절절한 호소와 반대를 외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강석헌 홍천군 송전탑 반대 대책위 간사는 “홍천에서는 2019년부터 230km에 달하는 송전선로와 75m 크기 송전탑 400개 반대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겨울엔 일흔 넘은 어르신들이 3보 1배 행진에 나섰고, 군청 앞 천막농성은 오늘로 157일째를 맞았다”라며 “한전 관계자는 앞장서 주민들을 이간질하고 돈으로 협박·회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네 인생과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집회 참석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어낸 현장 발언 이후 지역 대표들은 산업통상자원부 및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와 면담했다. 당초 계획했던 장·차관 면담은 불발됐지만 준비위는 산자부에 △자연파괴형 에너지 개발 즉시 중단 △이격거리 강화(풍력 2km·태양광 500m 이상) △주민수용성 강화 및 불편·편법 처벌 확대 △행정 단위별 에너지 자립계획 수립 및 에너지 주권 확립 등을 요구했고, 농식품부엔 △공유수면매립지(간척지) 태양광 중단 및 허용 법안 폐기 △농지법 강화 △재배사 꼼수 태양광 전수조사 및 처벌 근거 마련 등을 촉구했다.

담당 부서 확인·검토가 필요하다며 즉답은 피했지만 산자부와 농식품부 담당자는 각각 “주민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발전 이익이 공유될 수 있도록 하겠다. 원료를 100% 수입하는 석탄·화력 발전과 달리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자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버섯재배사 등 편법 사례에 대해선 모니터링 강화와 보완 대책을 마련하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 간척지 염도 측정과 농지법 강화 등에 관해선 관련 부서에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에 정학철 준비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주민수용성 강화는 이익을 공유받자고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철저한 동의를 전제로 하란 얘기고,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이 얘기하는 에너지 자립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자본을 가진 기업에 민영화하지 말란 거다”라며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먼저 말했으니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발전 전국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공개 토론회와 시민·사회·환경 단체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기구 발족, 차관 면담을 제안하겠다.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이 왜 신재생에너지에 그렇게 치를 떨며 반대하는지 어떤 대안들이 있는지 국민들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산자부 관계자는 다음주 내로 차관 면담 가능 여부를 답변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집회를 마무리하며 전국연대회의 준비위는 만약 산자부 차관 면담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한 집회를 확대 개최하겠다고 선포했으며, 2~3개월 내 전국연대회의 정식 출범을 목표로 전국 조직 통합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이격거리 및 주민수용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농어촌파괴형 에너지 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이격거리 및 주민수용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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