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농업 결산] 농민들, ‘농식품부’라는 벽에 막히다

변화 없는 농림축산식품부

  • 입력 2020.12.23 00:00
  • 수정 2020.12.27 19:2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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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지난 5월 7일 (사)전국마늘생산자협회 소속 회원 30여명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구태답습, 책임전가 농식품부 규탄 전국마늘생산자 기자회견’에서 물량 처리에 급급한 수급대책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월 7일 (사)전국마늘생산자협회 소속 회원 30여명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구태답습, 책임전가 농식품부 규탄 전국마늘생산자 기자회견’에서 물량 처리에 급급한 수급대책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올해 농민들을 괴롭힌 건 코로나19, 이상기후 말고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있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가 현안마다 농민 정서를 외면해서다.

쌀 수확량이 급감한 올해 흉년을 대처하는 농식품부의 자세만 봐도 주식의 생산기반 유지 의지가 있는지 물음표가 붙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악의 흉년을 맞는 농민들의 심경을 가장 절절하게 대변한 의원으로 꼽힌다.

서삼석 의원은 지난 11월 상임위 회의 때 “지금 농사를 잘 지었다는 분들 모니터링해 보니 20% (쌀 생산량이) 감소했다. 그런데 농사 잘 지었다는 분들은 마을 단위로 보면 열 집에 한두 집 정도 밖에 안 된다. 나머지 분들은 30%에 육박하는 수확량 감소를 이미 겪고 있다. 30%로 계산하면 2조6,000억 정도”라며 “재난·재해의 연장선상에서 2020년 쌀 감소분에 대해 정부가 어떤 식으로 됐든 (농가에) 보상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한다”고 대책을 촉구했다. 혹독한 자연재해로 쌀 생산량이 감소되면서 농가소득도 형편없이 주저앉은 데 대한 장기적 안목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쌀 생산 감소 피해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대책도 없었다. 더구나 농가소득 감소 고충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김현수 장관의 첫 대답은 ‘가격이 오르지 않았냐’는 것이었다고 국회 여당 의원실 관계자가 전하며 기막혀 했다. 이어 나온 대책이라곤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재해지역에 지원되는 시설복구비용, 대파대·농약대 등이 전부다. 쌀값이 올라서 생산 감소분의 소득이 벌충된다고 ‘믿는’ 농식품부는 그러나 12월엔 시중 쌀값 인상 억제책인 ‘정부양곡’ 방출 계획을 발표하고 만다.

전북 김제시의 한 농민은 “쌀값이 지난해 18만원에서 20만원으로 12% 올랐어도 소용없는 이유가 대부분 수확량이 3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1필지에 지난해 75개 나오던 쌀이 60개로 줄었으니 못해도 20~30% 감소한 셈이다. 대략 계산해 봐도 쌀값 인상폭보다 쌀 생산량 감소폭이 2배 더 많다”고 현실을 전했고, “여기에 농지임차료를 쌀값으로 계산해 주다보니, 엄살이 아니라 진짜 손에 쥐는 게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쌀소득에 대한 관점부터 현실과 괴리된 농식품부는 농산물 유통개혁에도 농민과 반대편에 서 있다. 공영도매시장의 ‘법인 독점 경매제’를 가장 노골적으로 고수하는 곳이 다름 아닌 농식품부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농산물 거래제 다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의원들에게도 ‘경매제 문제는 경매제 안에서 푼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 최대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인 서울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변화를 외치는 생산농민들의 목소리도 농식품부라는 벽에 막혀있는 상태다.

농식품부의 ‘독불장군’ 모습은 올해 더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농식품부와 접점이 많은 농해수위 한 관계자는 “앞선 정권에서 기획조정실장, 차관을 거쳐 장관까지, 30년 농식품부 외길을 걸어온 장관이 기존 농정철학을 바꾸는 건 자기모순 아니겠냐”며 “농민단체와 국회가 아무리 얘기해도 도통 입장변화가 없다. 19명의 여·야 농해수위원이 질타를 해도 기획재정부나 다른 부처와 협의해 보겠다, 는 말로 버티기를 하고, 농해수위를 넘어서면 농업에 관심이 없다는 걸 너무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특히 김현수 장관에게 ‘실책’을 찾기 어려운 것도 못한 게 없어서가 아니라, 농업·농촌·농민을 위해 한 일이 없어서라는 평도 나왔다. 국회 관계자는 “농식품부 내에 실장·국장들이 건강한 목소리가 툭툭 나와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데, 현재의 농식품부는 곧 김현수 장관이라는 공식으로 정형화 돼 있다”면서 “스스로 전문가라는 자부심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올해 농업의 주요 지표인 △농업소득 △곡물자급률 △국가 전체예산 대비 농식품부 예산 비율 등은 모두 ‘뒷걸음’ 친 한 해였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전염병 유행 속에 각국은 농업생산기반의 토대를 갖추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나라 농정의 지향점은 여전히 시장주의를 놓지 못하고 있다. 김현수 장관이 농민들에겐 낙제점을 받지만 문재인정권 핵심인사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후문에 대해 한 농업계 인사는 “농업예산으로 농업현장은 전혀 준비 안 된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을 밀어붙이다보니, 대기업의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농업에 대기업 진출을 열면서 점수를 따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2020년 농민들은 농정의 변화를 기대하기엔 여건이 너무 척박했다. 이 추세가 더 이어지다간 농민정서를 외면하는 농식품부 앞에서 촛불을 들어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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