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농업 결산] 인정받기 위한 투쟁, 2020 농민운동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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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청 앞에 마련된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 지급’ 천막농성장 앞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지난달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청 앞에 마련된 ‘모든 농민에게 농민수당 지급’ 천막농성장 앞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농가수당에서 농민수당으로, 그 힘겨운 여정

2010년대 후반 농민운동 진영은 농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기여하는 농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농민수당 운동에 전력투구했다. 농민들은 농민수당을 아래에서부터 탄탄히,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계획 아래 지방자치법이 규정한 주민발의 청구조례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셀 수 없는 숫자의 공론화를 주도한 노력 끝에 얻은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2018년 전남 해남을 시작으로 많은 기초 지자체들이 실제로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예산 확보 및 지급 대상 설정 등의 현실적 문제로 인해 개별 농민이 아닌 농가로 지급 단위를 설정한 한계점 또한 함께 확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농민수당이 지속가능한 농업 및 이를 위한 농민기본권 확보를 꾀할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경영체수당’, ‘농가수당’이라는 오명을 남긴 초기의 농민수당 모형을 반드시 뜯어 고칠 필요가 있었다.

기초 지자체들이야 그 한정된 자체 예산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 농민수당을 도입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광역단위 지자체들이었다. 특히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농민수당을 도입하고 시행 단계까지 진입한 전북과 전남의 경우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농민수당을 도입했던 속내가 올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9년 3만명이 넘는 도민의 서명을 받아 청구된 전라북도의 농민수당 주민발의 청구 조례는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당시 전북도의회는 주민발의 청구 조례안을 무시하고 도가 제출한 농가당 연 60만원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병합 심의 절차는 거쳤지만 도의 조례안에 흡수된 전남 농민수당 주민발의 청구 조례안도 사실상 그대로 사라져버린 셈이 됐다.

결국 참지 못한 전북 농민들은 지난 11월 말 도청 앞에 농성장을 설치했고, 매일 밤 교대로 지키며 24시간 농성을 이어간 지 벌써 50일을 넘기고 있다. 여성농민들은 흰 상복을 입고 전북도가 자랑하던 민관 농정 협치 기구 ‘삼락농정위원회’에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공론화를 활발히 이어온 덕택에 후발 주자들이 이를 주시하도록 만든 성과는 분명히 나타났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오는 2022년부터 농민수당 도입을 확정짓고 지급대상 선정도 ‘경영체’만을 기준으로 하는 선례에서 탈피했으며, 경남의 경우 농민들이 애초부터 ‘농가수당’으로 시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결국 도의회의 중재로 조례안만 통과되고 핵심내용을 추후 협의하게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4월 8일 충남 천안시내에서 열린 4.15 총선 유세에서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가운데)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4월 8일 충남 천안시내에서 열린 4.15 총선 유세에서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가운데)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결실 맺지 못한 ‘정치농사’

한편 지난 4월 실시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농민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것 또한 농민수당 확산세에는 좋지 않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정당들이 농민 후보는 받되 당선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배정한 상황에서 민중당(현 진보당)은 비례대표 후보 2번째 자리에 ‘농민수당 전국화’를 내건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세웠고, ‘비례대표 당선권에 위치한 유일한 농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농업을 생각하는 국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가 도입됐다. 도입 취지대로라면 전통적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가져갈 비례대표 의석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였으나, 의석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나선 야당에 이어 여당도 눈치를 본 끝에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를 부렸고 결국 ‘다시는 쓸 수 없는 제도’가 됐다.

많은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집단의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킨다는 제도의 의미는 무색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제도에서 정한 최소 정당득표율만 얻는다면 정당의 세를 막론하고 비록 소수 나마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다. 그 요구치는 3%였고, 이를 충족했을 경우 위성정당들의 예상지지율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2명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주류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후보와 함께 할 단 한 자리에 농민 대표를 집어넣은 것에서, 당시 민중당과 농민운동 진영의 갈망을 엿볼 수 있다.

진보적인 농민들이 정치세력화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역사 또한 존재하지만, 절박함에서 피어오른 선거운동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당의 성적은 지지율 1.05%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수로는 29만5,612표로 도시민들은 물론 농민들조차 다수가 ‘농민수당’을 통한 더 많은 진보보다는 4년 차에 접어들 문재인 체제의 완성을 택했다.

공익형직불제에 공을 들이는 정부와 여당이 농민수당에 대해선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수당의 제도화는 국회 내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운동’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농민수당이 지역에서 워낙 확산되다보니 몇 개의 관련된 법안이 올라와 있긴 하지만 불완전한 초기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는 것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전혀 의제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농민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던 한 농민의 국회 진출 무산은 그런 점에서 더욱, 농민수당을 갈망하던 많은 농민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재해지원금 지급, 정부비축미 방출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재해지원금 지급, 정부비축미 방출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후위기·코로나19 대응’ 요구, 내년에도 계속된다

농민의 기본권이 급속한 도시화와 개방농정 등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2020년이 밝자마자 터진 감염병 확산 사태가 농촌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될 거란 전망이 내·외부적으로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대형 위기의 구성요소 가운데는 식량의 문제도 포함돼 있었고, 농민들은 ‘식량위기’라는 의제 안에서 정말 오랜만에 조명 받는 듯도 보였다.

그러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세간의 관심은 농촌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닌 그저 식량의 확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당시 특히 많은 피해를 입은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한국형 그린 뉴딜, 그리고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피해 구제책에도 농민과 농촌은 대상에 오르지 못했으며, 심지어 농림축산식품부의 내년 예산 또한 사실상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지역에서도 농민수당의 제도적 진전을 위한 새로운 발판은 거의 확보되지 못했다.

농민 대표자들이 나서 소수로나마 쉴 새 없이 마이크를 잡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농정을 촉구했지만, 결국 올해가 가기 전에 화답 받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집회와 모임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농민들은 그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결사 한 번조차 이루지 못한 채 투쟁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은 지난 11월 기어이 소수가 모여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국회대로 한가운데에 대량의 곤포 사일리지를 쌓아 비록 내년으로 다시 미룰지언정 결코 멈추지는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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