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농업 결산] 친환경농민들, 지난 10년의 친환경농업을 논하다

[기획]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의 방향은?
④ 친환경농민 좌담회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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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가 내걸고 있는 이 구호는,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할 열쇠를 농민이, 그중에서도 소농이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환경농업은 소농이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은 여전히 정부 농업정책에서 낮은 비중이며,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도 여전히 미진해 보인다.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제5차 친환경농업 5개년계획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본지는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이 나아갈 방향은’ 기획을 통해 친환경농업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지난 14일 <한국농정>은 세종시 SB플라자에서 현장 친환경농민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는 4회에 걸친 기획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의 방향은?’을 마무리하는 기획이자, 어찌보면 지난 2010년대의 친환경농업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였다.

5명의 친환경농민들은 본인들의 현장 경험 및 그 과정에서 느낀 한국 친환경농정의 문제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두 면에 걸쳐 이날 농민들이 남긴 이야기를 정리한다. 좌담회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지난 14일 세종시 SB플라자 회의실에서 열린 친환경농민 좌담회에서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에 대한 경험 및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승애씨, 우봉희씨,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좌장), 김남운씨, 김상범씨.
지난 14일 세종시 SB플라자 회의실에서 열린 친환경농민 좌담회에서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에 대한 경험 및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승애씨, 우봉희씨,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좌장), 김남운씨, 김상범씨.
윤석원(좌장, 중앙대 명예교수, 강원 양양)
윤석원(좌장, 중앙대 명예교수, 강원 양양)

윤석원(좌장):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저는 양양 로댐농원에서 친환경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김남운: 청주에서 유기농 마늘·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 청주 학교급식과 생협에 농산물을 출하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

김상범: 익산에서 친환경 쌀농사를 지으며, 익산친환경농민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한때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과거 오랫동안 농약을 사용하던 과정에서 몸에 문제가 생겼던 거 아닌가 싶다. 결국 건강 때문에 친환경농사를 시작한 셈이다. 아팠던 건 친환경농사 시작 2년 뒤 거의 나았다.

우봉희: 20~30년 전엔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던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자연농 방식으로 논농사를 짓는다. 영농조합법인 주남나누미(주나미) 대표를 맡고 있다.

김승애: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결혼 뒤 남편이 고향인 담양에서 살고 싶다고 해 2012년 귀농했다. 조그맣게 농사지으면서 농민회와 한살림 활동도 같이 하고 있다. 전농 강령 4항에도 환경농업에 대한 지향점이 담겨 있다 보니, 어떻게든 친환경농사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농사짓는다.

친환경농민으로 산다는 것

우봉희: 2015년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2030 쌀 전업농’으로 선정돼 8,000평의 논을 추가로 임대했다. 농어촌공사에선 논을 해당 농민에게 우선적으로 5년간 임대하는 걸로 돼 있었다.

갱신 시기에 이르러 농어촌공사가 “5년간 벼를 심지 말라”고 했다. 1년 쉬고 1년 농사짓는 식의 윤작을 하라면 말이 되는데, 5년간 짓지 말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따져 보니, 쌀 생산량 조절을 위한 타 작물 전환 명목으로 이뤄지는 정책이라 한다.

그 5년 기간 도중에 벼를 심으면 계약은 해지되며, 임대 갱신도 해주지 않는다. 그리되면 논은 놀게 된다. 5년간 벼를 심지 않으면 논이 논으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윤작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안으로 습지나 철새도래지 인근 지역부터라도 무논을 조성하는 걸 농어촌공사와 지자체에 건의하고 싶다. 무논 조성 시 경관도 좋고 논이 건강해진다. 무논 조성엔 비용도 크게 안 든다.

김남운(충북 청주)
김남운(충북 청주)

김남운: 마을에서 2,000평 농지에 마늘을 심어야 하는데, 마늘 심을 농민이 점차 줄어든다. 어머니 올해 연세가 76세인데, 동네에서 마늘 심을 수 있는 농민 중 ‘막내’다. 내년이 되면 판로보다도 파종을 할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된다.

그런데도 행정은 느긋하다. “직불금 올려주면 좀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 할 뿐이다. 점점 마을에서 일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늘처럼 일손이 많이 필요한 작물들은 기계화해 대규모 농사를 짓는 지역에 경쟁력 측면에서 밀린다.

생협에 장아찌형 마늘을 많이 넣는데, 장아찌형 마늘은 전남 영광에서 많이 공급된다. 생협이 단가를 제시하면 우리로선 그 가격이 생산비와 비교할 때 안 맞는데, 영광에선 맞다고 한다. 주산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을지 몰라도, 주산지 아닌 지역의 중소농들은 농사가 점차 어려워질 듯하다.

청주는 벼를 제외하면 주 작목이 많지 않다. 전반적으로 가격경쟁력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판로가 임산부 대상 친환경꾸러미나 학교급식 등 공공급식 영역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그냥 마늘이 아닌 깐마늘을 받는다는 것이다. 청주 학교급식을 위탁받은 업체는 경북 영천에서 친환경 마늘을 벌크로 1kg당 1만500원에 사서 학교에 1kg당 1만4,500원에 납품한다. 지역 농가와 거래 시 1kg당 적어도 1만~1만1,000원은 줘야 하는데, 업체에선 7,500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이처럼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윤석원: 농민들이 마늘을 직접 까는 건 어렵나?

김남운: 농민이 직접 까기엔 물량이 너무 많다. 물량이 학교급식에 조금씩 매일 나가다 보니, 농민이 그것까지 담당하기 어렵다. 학교급식에선 급식 가격결정 뿐 아니라 농민들의 수취가격 보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체계는 안정적이지 않다.

저부터도 청주 학교급식지원센터 가격심의위원으로 활동하는데, 가격심의위에선 농민에게 수취가격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보장할지에 대한 결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생산자가 힘을 쓸 수 없는 구조다. 학교급식지원센터에서의 민·관협치를 통해 농가 수취가격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김상범: 올해는 코로나19로 3~4월에 학교급식이 중단돼 지역 쌀농가들이 매우 힘들어 했다. 쌀 이외에도 익산친환경농민협동조합에선 보리·밀을 같이 하는데, 냉해로 인한 보리·밀 손실이 50% 이상이었다.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어야 할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여름엔 계속 고온이었다.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면서 열대야가 1년에 60일까지 늘었다. 벼를 재배하기엔 치명적인 기후로 변해간다. 장마도 골칫거리다. 익산에선 햇빛이 안 나고 흐린 날이 많았다. 도열병 등 병해충도 극심했다.

일반농업은 각종 병해충에 살균제나 살충제를 살포하면 일시적이나마 멈추는데, 친환경자재는 예방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효과가 크지 않다. 그 결과 조합원들의 전반적인 쌀 수량이 30~40% 가량 감소했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농약 비산 문제다. 최근에도 일반농가에서 뿌린 농약의 비산으로, 협동조합 내 여러 농가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다.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자연재해로 살균제, 살충제를 사용 안 하곤 일반농가들도 농사를 짓기 어렵고, 그들로서도 생존 문제가 걸려 절실한 상황에서 그들이 농약을 사용하는 걸 뭐라 할 수도, 그들에게 농약을 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올해 일반나락과 친환경나락 각 80kg의 가격 차이는 불과 2,000~3,000원이었다. 이 모든 걸 감수하며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을 할 수 있나? 어렵다. 오늘도 2명의 농민이 영농조합 탈퇴서를 썼다.

김승애: 중소농을 위한 정책 및 유통 정보가 부족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법인이나 대농이면 그나마 판로도 있고 정보를 획득하기 용이하지만, 우리 같은 소농들은 정보도 얻기 힘들다.

각 친환경농가가 어디서 어떤 작물을 언제쯤 수확하는지에 대해 정보가 모이고 관리된다면, 판로 개척과 계약생산 체계 구축, 농산물 수급조절 등의 측면에서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다 할 정보를 얻기 힘든 상태에서, 친환경농민들은 내가 우선 지을 수 있고 시기에 맞는 걸 심는다는 생각으로, 팔 수 있을 듯하다고 예상되면 심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걸 팔 때 반드시 농민의 예상대로 맞춰지는 건 아니지 않나.

왕우렁이 문제, 대책은?

김상범(전북 익산)
김상범(전북 익산)

김상범: 왕우렁이의 제초 효과는 제초제보다도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전남에서 문제 제기됐듯이 왕우렁이 수중직파 시 물 속에 담긴 어린 모에서 월동한 왕우렁이가 모를 갉아먹는 데 따른 피해 사례가 있지만, 이를 전체 사례로 일반화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왕우렁이 관리 과정에서 보이는 농식품부의 탁상행정에 몇 번 직접 쓴소리했다. 어차피 왕우렁이는 7~8월에 물 빼기 전까지 논에서 활동해야 한다. 10월 수확 뒤 11월부터 월동을 대비해 알을 수집하는 식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데, 굳이 3월에 왕우렁이를 수거해라, 7월말에 왕우렁이 사진을 찍으라, 10월에 또 사진을 찍으라며 의미 없는 활동을 요구한다. 농식품부의 행정은 현장 친환경농민 상황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김남운: 최근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에서 왕우렁이가 투입된 논과 일반논의 생물다양성을 비교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왕우렁이 투입 논에서 수서곤충이 다양하게 발견되는 등,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제초제를 안 쓰고 왕우렁이를 투입한 논에서도 생물다양성이 강화된다는 결과가 도출된 걸로 보인다.

우봉희: 저는 다르게 알고 있다. 일단 왕우렁이는 둠벙 밑의 수초를 다 뜯어먹는다. 최근 우리 논을 방문한 몇몇 대학 교수들에 따르면, 수초가 줄어듦에 따라 물 밑에서의 플랑크톤 생성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또한 우리 지역에선 5~6년 전부터 왕우렁이가 겨울을 나는 게 목격됐다. 현재 다수 농가가 활용하는 제초형 왕우렁이는 멕시코에서 들여왔다. 국내 도입 시 왕우렁이는 ‘겨울을 나지 못 한다’는 전제 하에 들여왔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점차 기후가 변하면서 겨울을 나는 개체가 늘어나는 거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환경부의 ‘왕우렁이 생태계 교란종 지정’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농식품부 차원에서 왕우렁이 이외의 친환경적 논 제초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왕우렁이 이용을 막으면, 전국 친환경 벼농가들로선 친환경적 제초 방법이 사실상 없기에 전부 제초제 사용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결코 생태계 교란종 지정을 쉽게 결정해선 안 된다.

왜 농민에게만 ‘철학’ 강요하나

윤석원: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초창기 친환경농업에선 생명운동의 가치와 순환이 강조됐는데, 이후 이 가치가 훼손되고 농민들이 ‘기술’, ‘안전’ 프레임에 갇힌 채 양적 성장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농자재를 자가제조하거나 순환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외부 자재를 투입하는 농민들의 상황을 비판한 듯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승애: 그 분들의 말씀이 틀렸다고 보진 않으나, 농민들로선 현실에 부딪치며 어려움을 겪는다. 가격보장이 안 되니 재배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현행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 하에선 진정한 의미의 생태순환 농사가 쉽지 않다.

김남운: 저부터도 농지의 흙 상태에 대해 예전보다 관심을 많이 못 쏟는 것도 사실이다. 농사가 소득과 관련이 있고 농사환경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농민들로선 현실적으로 가격과 약정량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농민들의 농자재 자가제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농업부산물이 자유롭게 순환·활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행 잔류농약 검사 중심 친환경인증제 하에선 그것마저 어렵다.

일례로 산에서 자리공을 캐서 주정에 우린 뒤 천연살충제로 만들려 했는데, 일부 농민들은 “거기서 농약 검출되면 어쩌냐”고 우려했다. 또한 마늘농사 지으면서 겨울에 왕겨를 밭에 덮고 싶었는데, 왕겨에서마저 농약이 검출되면 어쩌냐는 우려도 나왔다.

아무리 생태순환적 방식으로 농사지으려 해도, ‘농약 검출 여부’만을 바라보는 현행 인증제 하에선 생태순환적 방식도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버릴 여지가 크다.

윤석원: 5년째 친환경 사과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제초제나 화학비료, 농약을 안 치고 농사짓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은 친환경농민에게 너무 ‘철학’을 강요하는 듯하다. 물론 생태보전 농업으로의 지향점은 가져가는 게 맞지만, 그러한 철학을 갖고 농사지었을 때 ‘철학’을 강요하는 이들이 농민 소득을 보장했나? 그들은 “농민들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농사지어서 먹고 살아야지”라고 하지만, 농민들로서는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를 사용 안 하는 건 물론이고 사용량을 줄여서 농사짓는 것도 엄청나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농가현실을 무시한 채 농민에게 친환경농업 당위성만 강조하는 건 문제가 있다. 난 그러는 사람들에게 “그럼 당신이 농사지어 봐라”고 하고 싶다.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

우봉희(경남 창원)
우봉희(경남 창원)

우봉희: 자연재배 벼농가들은 화학농약,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친환경농자재로 인정되는 유기질비료도 논농사에 투입하지 않는다. 저의 경우 자가배양한 미생물 이외엔 어떤 것도 논에 넣지 않는다. 1년에 3~4회 정도 논 물꼬에 자가배양한 미생물을 넣는다. 가을 수확 뒤엔 짚을 잘게 썰어서 깔고 1주일 안에 논을 갈아준다. 이런 식으로 4~5년을 반복하니 일반 벼농가와 수확량 차이가 점차 줄어들었다.

물론 제가 활용하는 무투입 농법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벼농사에선 좀 더 무투입 방식의 농사가 확대될 여지는 있다고 본다. 현행 친환경인증제는 단순히 무농약·유기농으로 구분돼 있어 자연재배 방식에 대한 별도의 고려가 없다.

김상범: 저는 ‘생태적이지 않은 친환경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이게 농민들만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 중심 인증제’는 농민들에게 사실상 평가기준처럼 돼 버렸고, 이 문제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은 잔류농약의 농산물 혼입문제에 있어서도 농민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양 편파적으로 다뤘다. 농약을 일부러 쳤다면야 문제지만, 그렇지 않고 10년간 유기농사를 지은 사람이 비산에 따른 잔류농약 혼입으로 한순간에 인증 취소, 유기농사 중단 상황에 처하면 이 농민들의 억울함은 어찌해야 하나?

김남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잔류농약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7년 ‘살충제 계란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살충제에 오염된 땅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다가 농축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될 수도 있고, 비산으로 인해 농약이 검출되는 등의 ‘비의도적 혼입’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은 ‘무조건 잔류농약 0’인 농업이 아니다. 농민이 ‘얼마나 건강한 방식으로 생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소비자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다만 방사능, GMO 등에 대한 안전성 검사는 필요하다.

첨단농법, 생태계 조사에 써라

지난해 8월 26일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메뚜기.
지난해 8월 26일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메뚜기.

 

윤석원: 한국의 잔류농약 검사 기준은 세계적 수준으로 봐도 빡빡하다. 잔류농약 검사 과정에서 ‘일반농업에서 허용되는 기준치’의 20분의 1 이상도 나오면 안 되는 기준이니, 농약이 없는 것에 가까운 것 아닌가.

김상범: 아니다. 지금은 아예 잔류농약 검출이 되면 안 된다. 아예 ‘0’이어야 한다. 잔류농약 기준은 오히려 더 강화되는 추세다.

농가들을 뜰 단위, 즉 단지화를 통해 묶어 해당 농가들이 함께 친환경농업을 한다면, 비산 염려도 없고 농가 간 협력도 용이하리라 생각한다. 소농들에게까지 모두 통용되긴 어렵지만, 적어도 평야지대 농가들에 대해선 이러한 ‘뜰 단위 친환경농업’ 확산을 위한 정책적 연구를 했으면 한다.

김승애: 잔류농약에 이리 엄격할 거면, 일관성 있게 수입농산물의 GMO와 농약 성분 검사도 엄격하게 하면 좋겠다. 그러나 정작 관리 부실로 GMO 유채씨앗도 질질 흘려 생태계에 유출시키면서, 친환경농산물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사실상 친환경농업 육성 생각이 없음을 입증하는 거 아닌가?

윤석원: 잔류농약 검사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농지의 ‘생태계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AI나 사물인터넷, 그 밖의 첨단농업 기법을 활용해 특정 농지에서 비료를 얼마나 투입하면 될지는 고민하면서, 왜 농지에 메뚜기는 몇 마리인지, 미생물은 몇 마리인지 조사 못 하나?

우봉희: 우리 농민들도 소비자 입장에서 친환경농업을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의 차이가 뭔지 알기 힘들다. 그냥 ‘일반농산물은 농약을 친다. 친환경농산물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다’, 이 정도 외엔 구체적 정보를 알기 힘들다.

인증 관련해 제 의견은 세분화시키던지, 단순화시키던지, 둘 중 하나다. 일반·친환경으로 단순하게 나누던지, 아니면 유기농·무농약 뿐 아니라 자연농법, 생명역동농법, 무제초제 농법 등 구체적으로 세분화시키던지 말이다. 어떤 방식이 됐든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들을 생각해 인증제를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도시의 다양한 소비자가 참여하는 친환경농장 또는 농산물 대상 모니터링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일종의 ‘시민참여형 인증제’랄까.

기존 인증제 하에선 민간인증기관 직원이 잠깐 들러 잔류농약 검사용 흙과 모를 떠 가는 게 전부다. 반면 ‘시민참여형 인증제’로서 도시민과 농민의 교류가 이뤄질 수 있고, 농장을 모니터링단에 보여주고 친환경농업의 장점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 아울러 시민들에게 친환경 논농사가 주남저수지에 철새가 돌아오게 하고, 물을 깨끗하게 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GAP, 표시라도 바꿔라

윤석원: 속초 한 마트 친환경농산물 판매대에 GAP 농산물을 올렸더라. 직원한데 “GAP 농산물은 친환경농산물이 아니니까 여기 올리면 안 된다. 마트 사장한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며칠 뒤 가 보니 친환경농산물 코너 옆에 ‘GAP 코너’를 만들어놓더라.

GAP 인증은 친환경인증과 달리 제초제 사용을 허용한다. 그럼에도 똑같이 생긴 마크 때문에 소비자들이 겪는 혼란은 무시할 수 없다. 하다못해 디자인이라도 바꾸라는 얘길 예전부터 정부 당국에 했는데, 도대체 정부는 이것마저 왜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김상범: 모 방송에서 유기농·무농약·GAP 인증마크 선호도를 조사한 걸 보면, GAP 인증이 무농약 인증보다 더 친환경적인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책 혼란으로 소비자들도 혼란스럽다.

농업·먹거리교육 강화해야

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 시민들 뿐 아니라 공무원, 교사 등을 대상으로 먹거리교육을 강화하면 어떨까 한다. 공무원들이 농사의 작기 등을 잘 모르니까 ‘왕우렁이 사진 촬영’ 같은 일이 벌어지는 듯하다. 농업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친환경농업 및 먹거리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리사나 영양사들도 친환경먹거리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학교급식에 들어오는 친환경농산물을 품위문제 때문에 반납하려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항변한다. “어떻게 농사지은 작물이 다 모양새가 똑같고 크기가 같을 수 있나. 농산물의 외형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저의 경우 전남도교육청에 “교육 과정에서도 방과 후 활동의 일환으로 농사 관련 교육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안 중이다. 한 학년이라도 농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어보면서, 농사의 가치에 공감하는 마음을 키우고, 우리 농산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 사례를 보면 당근을 싫어하던 학생들도 직접 당근을 재배해보더니 결국 먹더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농사·먹거리교육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우봉희: 동의한다. 특히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친환경먹거리에 대해 입맛이 길들여져야 커서도 그걸 먹지, 어른 돼서 입맛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영양사들 중에도 인스턴트 식품 입맛에 길들여진 분들이 일부 있다. 80~90년대생들은 친환경먹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다못해 교육 과정에서 농산물 하나하나 직접 만져보게라도 해야 한다. 농식품부와 교육부가 연계해 뭔가 더 정책적 접근을 했으면 좋겠다.

김승애: 학교급식 먹거리부터 GMO가 있는지 없는지 표시라도 하게 해야 한다. GAP 농산물에 대해서도 농약이 몇 번 들어갔다고 정확히 표시를 한다면, 소비자도 “농약 한두 번 친 건 괜찮아”라며, 또는 “화학비료 정도까진 괜찮아”라며 제대로 알고 먹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현행 친환경인증제와 각종 먹거리 관련 표시제는 오히려 정보를 제대로 안 준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기도, 제대로 먹기도,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김남운: 친환경급식을 청주에서도 하지만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교육은 없다. 아이들이 친환경농산물에 대해 쉽게 인식하고, 커서도 친환경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소비자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친환경급식을 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2018년 9월 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읍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가 진행한 학생 대상 친환경 벼 탈곡체험 중 한 학생이 농민과 함께 호롱기에 벼를 갖다 대어 낟알을 훑고 있다.
지난 2018년 9월 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읍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가 진행한 학생 대상 친환경 벼 탈곡체험 중 한 학생이 농민과 함께 호롱기에 벼를 갖다 대어 낟알을 훑고 있다.

판로·계약생산체계 확보도 숙제

김승애: 담양 벼농가의 경우 많은 분들이 친환경농사를 짓더라.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강당이 미어터질 정도로 친환경농민이 많았다. 그러나 그 외의 작목은 그렇지 않다. 제가 사는 지역의 경우 딸기, 수박, 토마토 등 몇 가지만 집중 육성된다. 그 외의 작물 재배과정에선 도움을 받기 힘들다.

각 작목별 출하회 구성도 어렵다. 작물이 골고루 있어야 하는데 그걸 키우는 분들이 없다. 그걸 키울 사람들을 섭외 중이긴 하나 쉽지 않다.

고민이 든다. 친환경농업도 규모화·분업화해서 담양에선 A작물을, 영광에선 B작물을 키우는 식으로 하는 게 맞을까? 이렇게 돼야 행정에서 더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원래 친환경농업 원칙대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골고루 생산되고 그것이 로컬푸드에서 골고루 소비돼야 맞는 것일까?

정부와 지자체는 푸드플랜과 로컬푸드 확대를 표방하지만, 막상 로컬푸드에 들어갈 다양한 작물이 없다 보니, 판매대를 꾸미려고 타 지역에서 물품을 갖고 오는 상황이다. 이게 무슨 로컬푸드냐. 지역에서 로컬푸드를 제대로 하기 위해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게끔 정책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행정은 그런 방식이 효율성, 가성비가 없다고 한다.

김상범: 익산 학교급식의 경우도 처음엔 쌀만 들어갔다. 익산 내 친환경 원예·과수농가 쪽에서도 함께 물건을 공급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지역 내 원예·과수농가들에 연락해 조직화에 나섰는데, 50농가 정도 되더라. 이때 각 지역에서 어떤 작물이 얼마나 생산되고, 어느 학교에서 어떤 작물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각 농가별 면적이 얼마이니 이 농가에선 무엇을 생산할지 등을 파악하고, 이 정보에 기반해 농가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추진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노력했다.

물론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계약생산 체계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품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또한 농민들이 함께, 주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승애: 민·관협치 성격의 컨트롤타워가 행정과 농민, 유통을 이어주는 게 필요하다. 행정에서만 사업을 진행하거나 외부에 위탁 맡기는 식으로 하면 문제가 생긴다. 농민도 모여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이때 행정이 이렇게 모인 농민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같이 협의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채소들은 작기도, 유통기한도, 포장단위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계약생산 관련 논의가 쉽지 않다. 학교급식 기본 품목이 56품목인데 그걸 다 키울 수 없는 것이다. 1년 내내 작기에 맞게 키우는 노하우를 갖기 쉽지 않다.

농민이 스스로 하려고 할 때 관에서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재배과정이 안정화될 때까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계약생산 체계 구축 시 상당한 희생이 필요하니까.

김상범: 최근 익산에서도 푸드플랜 논의가 시작됐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푸드플랜 논의 과정에서도 진정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우린 ‘익산먹거리연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농민·소비자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먹거리연대를 조직하자는 것이다. 푸드플랜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먹거리연대를 만들어 시민사회가 뭉친다면, 행정에서 쉽게 무시 못 한다고 본다.

푸드플랜을 통해 지역 대학교, 또는 지역에 공단을 둔 대기업들과 MOU를 체결해 대학교·공단 급식을 차액지원하는 사업, 지역 식당에서 지역농산물을 쓰면 인센티브 부여 또는 차액지원하는 식의 방안들을 고민 중이다. 이러한 방안 또한 생산자·소비자가 힘을 합쳐 스스로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남운: 올해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중단되거나 파행 운영됨에 따라 많은 친환경농가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친환경농가들로선 학교급식 이외에 이렇다 할 판로도 없고, 학교급식 바깥 영역에서 농산물 가격 안정성도 담보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자체는 향후 학교급식 실시 과정에서 매년 1%씩 계약재배안정기금을 적립해, 비상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

우봉희: 창원시의 경우 도시 내에 중소기업들이 많다. 창원시장이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 “지역농산물을 구내식당에 공급하면 세제혜택 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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