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 위한 소농의 ‘전환’ 노력에 정부는 응답하라

[기획]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의 방향은? - ① 오래된 미래

  • 입력 2020.11.29 18:00
  • 수정 2020.12.13 14:3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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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가 내걸고 있는 이 구호는,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할 열쇠를 농민이, 그 중에서도 소농이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환경농업은 소농이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은 여전히 정부 농업정책에서 낮은 비중이며,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도 여전히 미진해 보인다.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제5차 친환경농업 5개년계획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본지는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이 나아갈 방향은’ 기획을 통해 친환경농업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기획 순서

① 오래된 미래

② 대안적 유통망을 개척하라

③ 공동체지지농업

④ 친환경농민 좌담회

 

친환경인증 안 받은 친환경농민

경북 김천시 지례면에서 15년째 유기농사를 짓는 이근우씨. 그는 ‘공식적으론’ 친환경농민이 아니다. 정부의 친환경인증을 안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농약도, 화학비료도 안 치는 건 기본이요, 돌려짓기·섞어짓기·사이짓기 등 전통농법에 따라 농사짓는다. 퇴비 또한 낙엽·똥오줌·양파 등으로 스스로 만들어 쓴다.

이씨가 친환경인증을 안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어떤 방식으로 농사짓든 똑같은 농민인데, 친환경인증을 받았다는 이유로 ‘친환경농민’과 ‘일반농민’을 구분짓는 게 싫어서다. 이씨는 “일반농민 중에도 퇴비 자가제조와 다양한 생산방식을 통해 농약, 화학비료 사용 감축에 기여하는 농민들이 있다”며 “이들이 새로운 생산방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친환경인증제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둘째, 규제 중심 친환경인증제 때문에 구속받는 농사가 싫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친환경인증을 받으면 “귀찮아질 듯하다”고 말했다. 다 아는 내용 들으러 가고 또 가야 하는 인증농가 대상 교육, 시시때때로 받아야 하는 잔류농약 검사 등은 이씨가 추구하는 유기농업 방식에 이렇다 할 보탬이 안 된다.

이씨의 사례는 다시금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부는 친환경인증제를 통해 농약 검출여부에 집중하면서 농민을 규제·감시할 뿐, 정작 다양한 친환경적 실천을 기울이는 농민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반농민의 친환경적 노력(벼농가의 왕우렁이 투입, 퇴비 자가제조, 농약·화학비료 사용 감축 노력 등)에 대해서도 살피지 않는다.

친환경적이지 않은 친환경농업

그렇다면 친환경인증제를 통해 친환경농업이 더 친환경적으로 발전했나? 그렇지만도 않다.

친환경농업계는 ‘산업적 친환경농업’에 우려를 표한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최근 저서 <푸드플랜, 농업과 먹거리 문제의 대안모색>(울력)에서 “획일적 유기농산물 기준이 제정되면서, 농기업은 이 기준에 맞춰 투입재를 생산하고 농민들은 그 기준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기업의 투입재에 의존하게 됐다”며 “그 결과 유기농업은 쓰이는 투입재의 ‘종류’만 일반농업과 다를 뿐, 에너지 집약적이고 대규모 단작에 기반한다는 점에선 20세기 농업과 다를 바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친환경인증제는 당초 제정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획일적 유기농산물 기준 제정’에 한 몫 했고, ‘농약·화학비료 검출만 안 되면 단작도 상관없고 기업농의 확산도 상관없다’는 인식의 강화에도 한 몫 했다.

농생태학

‘산업화된 친환경농업’의 극복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농생태학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 따르면, 농생태학은 생태학적 원리를 농업시스템에 적용해 외부투입재를 최소화하고, 농업·사회·생태계 간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먹거리를 생산·유통·소비토록 하는 실천적 논리이다.

농생태학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기물로 토양을 개선하고 토양의 생태를 살리는 데 활용한다. 둘째, 분뇨·생활하수·축분뇨 등 양분과 생물자원 재활용을 확대한다. 셋째, 경축순환농법 확대를 추구한다. 넷째, 다양한 생물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한다. 다섯째, 복합영농을 통해 토양의 산출력을 보전한다. 여섯째, 화학자재 사용 및 기계화를 지양한다.

각 나라나 지역에 따라 농생태학 실천은 다양한 형태를 보이나,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실천과정의 특성은 △높은 수준의 생물다양성 △토착기술을 통한 농업생태계 관리 △다양화된 농업방식 △다양한 재해나 변화에 저항력을 갖춘 농업생태계 보전 △농민의 전통지식 활용을 통한 혁신 △공동체 중심의 사회문화적 요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전통농법의 복원 절실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이사장은 농생태학의 특징 중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농민의 전통지식 활용을 통한 혁신’을 강조했다. 달리 말해 ‘오래된 미래’를 찾자는 것이다.

안 이사장은 “유기농업의 핵심은 ‘자원순환’인데, 최근의 농자재 투입 중심 유기농업은 이러한 순환의 원리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윤작(돌려짓기), 혼작(섞어짓기), 간작(사이짓기) 등의 농법을 통해 작물과 생물, 토양 간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전통문화를 집대성한 책으로 평가받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도 돌려짓기, 섞어짓기, 사이짓기 등의 각종 전통농법이 소개된다. 농생태학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조상들은 농생태학의 원리에 따라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어왔다고 볼 수 있다.

전통농법 복원이 꼭 우리나라의 전통농법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일례로 안 이사장은 경기도 안산시의 농장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통농법인 ‘세 자매 농법’을 시도해 왔다. ‘세 자매 농법’은 옥수수와 콩, 호박을 같이 심는 농법으로, 이 방식을 통해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세 자매 농법 과정에선 콩을 옥수수 사이에 심는데, 콩은 햇빛이 지나치게 강하면 잘 못 자란다. 옥수수와 같이 심을 시 옥수수 잎이 그늘을 만들어 콩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또한 호박 넝쿨은 옥수수와 콩 사이의 공간으로 이리저리 뻗으며 넓은 잎으로 토양을 덮어준다. 그 과정에서 토양의 유실을 막고 비가 올 시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다.

경북 김천시 지례면 농민 이근우씨와 그의 농지. 이씨는 돌려짓기, 섞어짓기 등의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스스로 ‘전환’ 노력을 기울였다.
경북 김천시 지례면 농민 이근우씨와 그의 농지. 이씨는 돌려짓기, 섞어짓기 등의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스스로 ‘전환’ 노력을 기울였다.

김천 이근우씨는 섞어짓기를 통해 병해충 방제를 시도한다. 이씨는 고추밭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이럴 경우 기생벌이 나타나 옥수수 알에 침을 찔러 알을 낳는다. 옥수수 속에서 부화된 기생벌들은 5월 중순경 고추밭에 침범하는 진딧물을 공격한다. 이씨는 친환경농자재 연구조직 자연을닮은사람들(대표 조영상, 자닮)이 개발한 ‘자닮오일’을 통해 진딧물을 잡는데, 그걸로 못 잡은 진딧물은 옥수수에서 나온 기생벌들이 잡아준다.

이씨는 “결코 쉬운 방식은 아니지만 전통농법을 잘 활용할 시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도 병해충 방제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무기물 구성이 편협해지는 것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의 전통농법 관련 연구는 미진했다는 평이 많다. 역설적으로 20세기에 우리나라의 전통농업을 가장 상세히 담은 책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농업관리 다카하시 노보루가 쓴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란 책이다. 이 책은 그 존재가 잊혀졌다가 2009년 김석기 토종씨드림 운영위원에 의해 번역됐는데, 이는 달리 말해 그 전까지 정부에서 전통농법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안 이사장은 “우리 조상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천년 간 개발해 온 농법과 종자들이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폐기됐다”며 “순환농법, 천수답 농법 등 고서에 나온 전통농법 복원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똥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이사장이 경기도 안산시의 생태농장에서 퇴비통에 담긴 각종 퇴비를 소개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사람똥, 개똥 등 각종 똥을 모아 퇴비화했고, 커피 찌꺼기로도 거름을 만들었다.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이사장이 경기도 안산시의 생태농장에서 퇴비통에 담긴 각종 퇴비를 소개하고 있다. 안 이사장은 사람똥, 개똥 등 각종 똥을 모아 퇴비화했고, 커피 찌꺼기로도 거름을 만들었다.

 

농민의 농자재 자가제조를 위한 기술보급으로 초저비용 친환경농업 발전 노력을 기울인 조영상 자닮 대표는 “과도한 농기계 사용, 농자재 수입 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발생도 무시할 순 없는 수준”이라며 “농민의 농자재 자가제조 확산 그 자체가 이산화탄소 절감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자닮은 농민들이 쉽게 제조 가능한 친환경농자재 개발에 앞장서 왔다. 특히 자닮의 대표 품목 중 하나인 ‘자닮유황’은 제조비용도 저렴하고 10여분 만에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 농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자닮유황은 흰가루병과 노균병, 곰팡이병 등에 탁월한 방제효과를 보인다.

김천 이근우씨도 자닮으로부터 배운 기술 및 농자재를 활용해 농사짓는다. 액비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씨는 “액비 100리터 한 통이면 1년을 쓸 수 있으니, 별도로 비료를 사서 쓸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농자재 자가제조에 있어 핵심 물질 중 하나는 똥이다. 안 이사장은 <시골똥 서울똥>이란 책까지 쓸 정도로 농업에서 똥이 가지는 가치를 복원하고자 노력해 왔다. 서양에선 농사과정의 똥 활용법을 못 찾아 화학비료를 만들었지만, 동양에선 똥을 이용한 자원순환농법을 활성화시켰다. 안 이사장은 “똥과 음식물 찌꺼기, 농사 과정의 부산물들을 무엇 하나 낭비하지 않고 그대로 땅으로 돌려주는 것이 자원순환농법의 핵심”이라며 “똥의 순환은 자연의 순환이자 생명의 순환”이라 강조했다.

농민의 ‘전환’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이근우씨는 15년간의 유기농사 과정에서 거친 온갖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친환경농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 그리고 이들을 위한 ‘전환과정’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친환경농업은 ‘지속가능성’은커녕 ‘실현가능성’도 사라진다”고 쓴소리했다.

‘전환과정’이란 무엇일까. 이씨는 도발적인 제안을 했다.

“친환경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최소 5년, 길게는 10년간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과정’을 두자는 것이다. 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에 대해 친환경농민에 준하는 수준의 지원을 해야 한다. 농법의 전환을 겨우 1~2년, 길어야 3년 만에 완료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장기간에 걸쳐 농민이 하나씩 하나씩 생산방식을 바꿀 수 있게끔, 그 과정에서 농민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끔 정부 차원의 계획과 교육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이씨는 스스로 기울였던 전환노력과 관련해 “처음엔 밭작물 보호를 위해 밭에 비닐을 덮었으나, 점차 비닐 대신 신문지를 덮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엔 낙엽·똥오줌 등으로 자가제조한 퇴비를 덮는 시도도 시작했다”며 “이 과정은 기계적으로, 순서대로 나아가는 건 아니다. 때로는 뒤로 돌아갈수도 있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대안적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농생태학에서 이야기하는 ‘전환’”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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