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먹거리로 다시 만나는 농민과 도시민

[기획]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의 방향은?
③ 공동체지지농업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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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가 내걸고 있는 이 구호는,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할 열쇠를 농민이, 그중에서도 소농이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환경농업은 소농이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은 여전히 정부 농업정책에서 낮은 비중이며,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도 여전히 미진해 보인다.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는 제5차 친환경농업 5개년계획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본지는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업이 나아갈 방향은’ 기획을 통해 친환경농업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농촌과 도시의 단절이 현대사회에 이르러 심화됐다지만 그나마 농민과 도시민을 이어주던 끈은 먹거리였다. 생활협동조합 운동, 학교급식 운동 등을 통해 ‘농촌의 건강한 먹거리를 도시 소비자가 먹자’는 목소리도 활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절은 심화되고 있다. 1차적으로는 수입농산물과 인스턴트 식품 등 이 땅의 건강 및 농촌의 삶과 별 상관없는 먹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유기농의 이름을 팔아먹는 자들

이젠 친환경농산물마저 생산자-소비자 간 교량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또한 현행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와 무관하지 않다. 농약·화학비료 검출 중심 친환경인증제가 생산자-소비자 관계를 어떻게 왜곡시킬지는, 우리 정부가 그토록 ‘선망’하는 미국의 선례가 잘 보여준다.

미국의 먹거리운동가 위노나 하우터는 최근 저서 <푸도폴리(Foodopoly)> (2020, 빨간소금)에서 미국 정부의 유기농인증제가 오히려 대기업들에게 친환경농산물 유통이란 좋은 먹잇감을 던졌다고 비판했다.

미국 유기농인증제도 항생제·합성비료·농약 등의 투입을 금지하는 측면에선 엄격하나, 정작 각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기농의 고차원적 이상(예컨대 전통농법, 농생태학적 실천 등)에 대한 언급은 제거해버렸다.

하우터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소규모 유기농 생산자들은 유기농 인증에 너무 많은 기록과 서류작업이 필요하기에, 이 기준이 소농을 배제하고 산업적 농장에만 이득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산업적 대형농장에선 서류작업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한 해 40개 작물을 여러 농지에서 돌려가며 경작하는 농장에선 서류작업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유기농법을 활용하는 많은 소농들이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오히려 대형식품 제조업체들은 유기농업의 윤리를 전부 채택하지 않고서도 수지맞는 틈새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봤다. 현재 국내 축산업이 하림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가 된 것마냥, 미국에선 딘푸드·하인 셀레셜 그룹·다농 등 유기농 식품가공 메이저들에 의해 유기농 ‘산업’이 수직계열화됐다. 딘푸드는 2008년 기준 한 해 8억7,700만달러의 유기농 식품 총매출을 거뒀다.

농민-도시민의 ‘쌍방향적 지지’

물론 <푸도폴리>에 언급된 사례는 극단적 예시다. 그러나 위 사례는 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얼굴 없는 친환경먹거리’가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왜곡하고, 더 나아가 친환경농업이 기후위기 극복에 아무 역할도 못하게 만드는 사례로서 경계해야 한다.

이에 대한 성찰 속에서 ‘공동체지지농업’ 논의가 본격화됐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공동체지지농업은 친환경농민이 생산한 먹거리를 특정 소비자 개인 또는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소비함으로서 친환경농민이 농사를 계속하게끔 만드는 방식이다.

사실 이 또한 해외에서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CSA)’라 불리는 표현을 수입한 개념이긴 하다. 보통은 ‘공동체지원농업’이라 번역되는데, ‘지원’이란 표현은 ‘농업이 어려우니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연대의 관점에서 응원하고 함께 한다’는 의미로서 ‘지지’란 표현이 적합하지 않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조리공간으로서의 마을부엌

지난 4일 서울 강북구 마을회관 ‘꿈빚는마을방아골’ 부엌에서 우리밥상공동체 ‘짓다’ 조합원들이 제철 농산물로 직접 조리한 반찬을 포장 중이다. 짓다의 반찬은 전국 각지 여성농민, 토종씨앗 재배농민들로부터 구입한 농산물이 원료다. 오른쪽은 김은진 짓다 대표.
지난 4일 서울 강북구 마을회관 ‘꿈빚는마을방아골’ 부엌에서 우리밥상공동체 ‘짓다’ 조합원들이 제철 농산물로 직접 조리한 반찬을 포장 중이다. 짓다의 반찬은 전국 각지 여성농민, 토종씨앗 재배농민들로부터 구입한 농산물이 원료다. 오른쪽은 김은진 짓다 대표.

 

그렇다면 도시민이 농민과 연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가 마을부엌의 부활이다. 물론 2010년대 들어 전국 곳곳에 공유부엌·마을부엌들이 점차 늘어나 요리교실, 바리스타 교육 등 각종 공동체활동이 활성화됐지만, 정작 마을부엌의 핵심인 조리기능은 한 켠으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환경농산물을 공공급식에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소비자들이 친환경농산물을 조리해 먹을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민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조리를 하는 게 쉽지 않으며, 식품기업들은 이러한 조건을 활용해 ‘가정간편식’ 등 간편히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 판매에 집중할 뿐이다. 따라서 마을부엌의 조리기능 복원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강북구·도봉구 주민들이 모여 만든 우리밥상공동체 ‘짓다(대표 김은진)’의 노력이 눈에 띈다. 짓다는 매주 금요일마다 강북구 마을회관의 조리시설을 대여해 제철·토종 농산물로 조리한 반찬을 동네 곳곳에 직접 배달한다. 활용하는 재료는 전국 각지의 여성농민, 토종씨앗 재배농민들이 생산한 제철 농산물들이다.

짓다 조합원들은 전처리조·조리조·설거지조·청소조·배달조 등을 구성해, 각자 자기 역할을 하며 반찬을 만드는 분업체계를 구성했다. 기존의 부엌노동이 사실상 여성에게 강요된 것과 달리, 짓다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짓다는 회의를 통해 2~3주치 식단을 짜는데, 반찬은 철저히 제철 채소로 조리된 먹거리들이다. 고기는 식단에 미포함된다. 지난 4일 만든 식단은 냉이배추된장국·감자조림·무생채·달걀찜 등이었다. 조합원들은 1주일에 3시간씩 부엌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로 짓다에서 만든 반찬을 공급받아 먹을 수 있다. 현재 강북구·도봉구 내 약 30가구가 짓다에 참여 중이다.

김은진 짓다 대표는 “많은 도시민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너무 바빠서 반찬을 조리해 먹을 시간이 없다. 이는 개인의 게으름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며 “점차 우리 농산물을 각 가정에서 조리해 먹기 어려워지고, 식단도 가공식품 중심, 대량생산된 먹거리 중심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짓다는 농민이 생태친화적 방식으로 생산한 이 땅의 농산물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엌노동의 가치를 나누며 큰 돈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함께 먹으며 ‘농(農)’을 배운다

친환경먹거리를 먹는 것 못지않게, 그것의 가치를 여럿이 함께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대규모 유통망 속에선 농산물의 가치가 알려지기 어렵다. 최근 사회적기업 및 협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들고자 하는 대안적 유통망은 △생태친화적으로 만든 먹거리의 가치 파악 △농민-도시민 간 소통 △새로운 사회적경제 영역 개척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일례로 사회적기업 (주)동네정미소는 전국 각지 토종벼 재배농민들과의 직거래로 구입한 벼를 가공해 만든 쌀을 파는, 이름대로 ‘동네 속 정미소’다.

황의충 동네정미소 공동대표는 “산업화 이후 우리가 먹는 쌀 품종 중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이식된 품종이 많고, 심지어 국산 품종도 그 모종을 보면 일본 품종이 섞인 혼합품종이 대다수”라며 “동네정미소는 각지에서 친환경농사로 토종벼를 재배하는 농민들로부터 단일품종의 벼를 직접 수매한 뒤 가공해, 도시민들이 토종벼의 다양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동네정미소는 농민과 도시민이 만나는 장이기도 하다. 교류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두런두런 밥상마실’이다. 매달 1회 10~20명이 저녁시간에 모여 토종쌀로 밥도 짓고, 토종벼 막걸리도 만들 뿐 아니라, 토종벼에 대한 교육 및 1인 가구를 위한 건강한 식단 레시피 보급 등의 활동도 이뤄진다. 토종벼 농민들을 초청해 같이 밥먹는 시간도 갖는다. 말하자면 ‘사회적 식사’ 시간이다.

동네정미소가 또 하나 중점에 두는 사업은 교육으로, 10주 간의 ‘쌀 큐레이터’ 과정을 통해 토종벼 전문가를 양성한다. 황 대표는 “쌀도 점차 미곡종합처리장(RPC) 중심의 대규모 유통체계 속에 갇히면서, 과거 전국 곳곳의 마을에 있던 정미소들이 점차 사라졌다. 쌀 품종 또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토종벼 종자들이 사라지고 고시히카리, 추청 등 일부 품종으로 획일화되기에 이르렀다”며 “일제강점기 일제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의 토종벼 종류가 1,451가지에 달했다고 돼 있는데, 토종벼 관련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고 밝혔다.

‘비대면 상황’의 만남 위한 고민 절실

황의충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고민이 많다. 매달 진행했던 두런두런 밥상마실도 코로나로 중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동네정미소는 비대면 시대, 그리고 코로나 이후 어떤 사업을 벌일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황 대표는 “그 동안 학교에 토종쌀 키트를 공급해 학생들에게 토종쌀 관련 교육이 이뤄지도록 했는데, 내년엔 이 사업을 확대해 비대면으로든 대면으로든 교사와 학생이 토종벼를 함께 키울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라 밝혔다.

또한 내년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부활하는 토종벼’ 프로젝트를 가동해, 용산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반도 토종벼 전시 및 역사 교육, 토종벼 시식체험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비대면 유통과 온라인 거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비대면으로든 대면으로든 어떻게 농민과 소비자가 계속 만날 것인가’, ‘코로나 이후 다시 잘 만날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고민은 빠져있다. 적어도 먹거리로 농민과 도시민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기업, 마을부엌, 기타 플랫폼에 대한 지원 및 육성책이라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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