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먹거리 주고받는 ‘작은 실천’ 모아 ‘큰 변화’를

환경정의 주최 ‘기후위기 대응 먹거리 자급기반 마련’ 심포지엄

  • 입력 2021.07.25 18:00
  • 수정 2021.07.25 19:2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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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어둔리의 채종포에서 여성농민들과 시민들이 토종씨앗으로 키운 수수 모종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어둔리의 채종포에서 여성농민들과 시민들이 토종씨앗으로 키운 수수 모종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 땅 곳곳 토종씨앗의 발아는 토종농산물 수확으로, 토종농산물을 통한 농민-도시 소비자 교류 강화로, 더 나아가 식량주권 확보와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으로 이어진다.

최근 농정개혁 논의 속에서 토종씨앗과 이를 기반으로 한 생태농업·식량주권 강화 논의는, 의외로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처럼 현장 농민과 전문가가 모여 토종씨앗과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바로 지난 21일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 주최로 진행된 ‘기후위기 대응 먹거리 자급기반 마련’ 심포지엄에서였다.

지역 내에 더 많은 토종먹거리를

변현단 토종씨드림 상임대표는 여전히 토종작물 재배 농가가 전체 농가 중 1%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여전히 토종씨앗 확산과 관련해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변 대표는 “학교급식 체계 속에서 학교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품목을 선호하기에, 학교급식에 참여하는 친환경인증 농가와 일반농가 대부분은 토종작물 재배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친환경인증 농가 중에서도 토종작물 재배에 뛰어드는 농가는 적다. 그나마 토종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자급 위주 소농과 귀농민, 도시농부가 대부분이라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언급했다.

학교급식 등 공공급식 영역에서 토종농산물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조이니, 토종작물 재배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판로는 사실상 소규모 직거래가 전부다. 따라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로컬푸드(지역먹거리) 관련 공간(로컬푸드 매장, 지역 내 식당 등)을 통한 지역 토종작물 및 그 가공품의 판로 마련이 중요한데, 아직 로컬푸드 영역에서 토종작물의 지속가능성이 낮은 만큼 이를 키워야 한다는 게 변 대표의 입장이다.

변 대표는 이와 관련해 경남 거창 사례를 들었다. 거창군에선 토종작물 중 소비자와 농민에게 모두 이점이 있는 소득작물 30여 가지를 선정해, 올해부터 지역 로컬푸드 농가에서 해당 토종작물을 생산하기로 했다. 생산된 토종작물은 거창푸드종합센터에서 전량 수매한다는 게 변 대표의 설명이다.

토종작물, ‘먹어야’ 산다

토종농산물이 곳곳에서 더 많이 뿌리내리게 하려면, 토종농산물의 생산 못지않게 도시 소비자들이 토종농산물을 ‘먹는’ 일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도시민-농민 간 토종먹거리 직거래 및 도시 내 마을부엌에서의 먹거리 조리는 특히 중요하다. 우리밥상공동체 ‘짓다’는 횡성·봉화·진주·서천 등 7군데 지역 농민들과 제철 먹거리 직거래를 통한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짓다에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민들 중엔 횡성·봉화 등지에서 토종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많다.

김미숙 짓다 사무국장은 “직거래 과정에서 판로 확보가 어려운 농민들의 농산물을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최근엔 초당옥수수·마늘쫑·쌀 등을 공동구매했는데, 구매한 농산물을 매실청·효소·장아찌 등으로 대량 조리해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활동도 벌였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 도시농부 유형민 씨는 ‘소자농의 토종씨앗 전통농사’라는 온라인 밴드를 운영한다. 소자농은 ‘자립하는 작은 농부’란 뜻이다. 유씨는 본인의 밭에서 250종의 토종작물을 경작하는데, 이 씨앗을 한 달에 한 번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는 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유씨는 토종작물의 일종인 조선오이로 동네 주민들과 장아찌를 담그거나, 토종배추로 주민들과 김장하는 활동도 진행해 왔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이 활동들은 중단된 상태이나, 어떻게든 주민들이 토종먹거리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공간 및 과정은 필요하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유씨는 “공용텃밭을 비롯해 도시농업·먹거리 관련 공동체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이 함께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공용텃밭 안에 공동체가 모여 토종작물로 맛있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소농-도시민 직거래와 마을부엌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처럼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토종·제철 먹거리를 조리해 먹으려는 밥상공동체가 더 많이 생겨나야 하고, 공동체 간의 협력도 강화돼야 한다”고 한 뒤 “관(官)에서도 안정적으로 마을부엌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 마련, 밥상공동체들에 대한 지원책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한 방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상에 한 방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진정한 변화는 ‘작은 실천’, ‘작은 변화’가 모여야 가능하다고 본다”며 “지역 주민들의 마을부엌 활동이나 소농-도시민 직거래 등의 활동이 그냥 보기엔 아주 작은 활동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작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례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잘 되게 하며 늘려갈 것인지가 결국 변화를 위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토종씨앗과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토종씨앗 보전운동과 함께, 토종작물을 로컬푸드나 작은 직거래단위를 통해 공급하려는 운동이 미시적으로나마 늘어나는 만큼, 이를 어떻게 확산시킬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진 원광대 교수는 소농-도시민 간 교류 과정에 대한 ‘사대주의적 접근방식’을 경계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학계 일각에선 굳이 우리나라에서 잘하고 있던 사례를 해외사례, 예컨대 공동체지원농업(CSA)이나 파머스마켓 등의 사례와 무리하게 비교해 오히려 혼선을 야기했다. 과거부터 진행돼 온 농민장터나 오일장 등을 파머스마켓과 비교하며 장단점을 분석하는 식으로 말이다”라며 “그 과정에서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중심에 서는 식으로 관계가 규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향후 기후위기 상황에서 토종씨앗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농민과 소비자가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고, 토종씨앗 확대를 위한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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