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고난 뚫고 자라난 토종먹거리, 이젠 ‘등교’시키자

문재인정부 농정 4년 - 친환경농업

  • 입력 2021.07.04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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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8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 농민 박성인 씨가 토종고추밭에서 최근 농사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 농민 박성인 씨가 토종고추밭에서 최근 농사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경북 봉화군 재산면에서 10년째 토종작물 중심으로 친환경농사를 짓는 박성인 씨. 기후위기는 봉화 산골에서 토종 콩과 고추, 각종 잡곡을 재배하던 박씨에게도 위기였다.

“선대부터 한아가리콩을 비롯한 토종 콩 농사를 지어왔다. 전에는 콩보다 쉬운 농사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콩에 약이나 비료를 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퇴비 좀 남는 거 콩꽃 피면 갖다 뿌려주고, 풀 자라면 뽑아주다가 가을에 가서 몇 자락 베면 한 아름씩 나왔는데, 2015년경부터 노린재 피해가 늘어났다. 콩 소출이 반 이상 줄었다.”

“차조·메조·기장·수수도 2016년경부터 재배가 어려워졌다. 작년엔 이 잡곡들의 3분의 1을 새들이 먹어치웠다. 원래 새는 벼농사 지역에 많은데 왜 언젠가부터 이 산골짜기에 몰리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생협에 공급할 율무 빼곤 잡곡은 파종하지 않았다. 거둘 수 없으니까. 뿐만 아니라 지난해 태풍이 연달아 세 번이나 봉화에 들이닥쳤다. 소출이 더 줄었다. 그나마 남은 건 봉화군의 참새들이 다 가져갔다.”

박성인 씨 고춧잎의 진딧물들. 박씨는 “2017년경부터 진딧물 발생 빈도수가 더 늘었다”고 말했다.
박성인 씨 고춧잎의 진딧물들. 박씨는 “2017년경부터 진딧물 발생 빈도수가 더 늘었다”고 말했다.

고추 재배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고추가 수정을 거쳐 착과가 잘 되려면 평균 기온이 22~25℃는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야간 저온으로 착과가 잘 안 돼서 걱정이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고추는 온도가 10℃ 미만만 돼도 성장이 멈춰버린다. 18℃는 돼야 그나마 성장할 수 있건만 2주 전까지도 아침 기온은 최저 7~8℃ 수준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14~15℃ 수준이라는 것이다.

박씨의 토종고추밭에 가보니, 고춧잎에 진딧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박씨는 “2017년경부터 진딧물 발생 빈도수가 더 늘었다. 안 그래도 오늘도 진딧물들을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칠성초·수비초·땅땅이초, 한목소리로 “우리도 등교하고 싶다”

박씨가 토종작물만 재배하는 건 아니다. 고추의 경우 수비초·칠성초 등 경북 내륙지방의 토종고추뿐 아니라 청양고추·풋고추도 기른다. 박씨는 청양고추·풋고추·오이고추·미니단호박 등의 품목은 경북 각지의 학교급식에 납품하며, 또 다른 품목들은 생협에 공급하거나 개별 소비자와 직거래한다. 물품은 운송비용을 내고 농협 배송차량을 통해 경산시의 급식업체 물류창고로 보낸다.

그러나 여전히 친환경농산물은 학교급식 공급 과정에서 반품당하기 일쑤다. 소위 ‘못난이 농산물’의 품위문제 때문이다. 박씨에 따르면 학교급식용 고추는 길이가 9㎝ 이상, 15㎝ 미만이어야 한다. 곡과, 즉 고추가 굽어도 안 된다. 꼭지가 떨어져도 안 된다. 질겨도 안 된다. 너무 연해도 안 된다.

이러한 기준에 ‘미달’되면 반품 처리당한다. 한 번 낼 때의 반품 비율은 대체로 10~15% 수준이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박씨는 봉화뿐 아니라 경북 각지의 학교에 납품한다. 먼 곳까지 간 반품 농산물은 어찌할까? 그냥 현장에서 폐기하라고 한다. 단호박의 경우 영양사들에게 나눠 드시라고 한다.

“고추가 (학교로) 배송된 지 4~5일째 되면 상온에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물러진다. 그걸 배송비 들여가며 다시 받는 게 더 돈이 들고, 다시 받아서 쓸 수도 없다.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가공시설을 만들어 가공품으로 만들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식품가공시설의 경우 내가 거주하는 곳과 같은 ‘보전관리지역’에선 못 만들고, ‘계획관리지역’에서만 만들 수 있으니까.”

더 큰 문제가 있다. 토종고추들은 ‘등교’하기 어렵다. 학교에선 ‘품질의 균일성’ 때문에 청양고추, 오이맛고추 등의 품종을 선호한다. 물론 학교급식에서 일부러 토종작물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데다 지역 특성에 따라 모양도, 때깔도, 맛도 가지각색인 토종작물을 학교급식 ‘규격’에 맞추자니 반품될 가능성이 크다.

박씨는 “현행 학교급식 체계에선 토종작물이 발붙일 곳이 없다”며 “토종고추 중엔 모양이 못 생기거나 (규격보다) 작고 커서 그렇지, 청양고추보다 훨씬 달거나 매운 고추가 많다. 청양고추를 대체할 수 있는 땅땅이초·파주초 등의 다양한 고추가 있지만 학교급식에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학교급식 공급 과정에서 또 다른 웃지 못할 일도 이야기했다.

“학교 영양사가 풋고추를 줬는데 ‘안 먹겠다’면서 집에서 부모님에게 ‘풋고추 먹기 싫은데 선생님이 먹으라 해서 먹었다’고 얘길 키운 경우가 있었다. 학부모는 학교에 와선 대번 교장실 문부터 ‘쾅’ 차고 들어와 ‘저 X(영양사) 짤라라. 집에서도 안 먹이는 풋고추를 왜 먹이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모든 학부모와 학생이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그런 상황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계약직인 영양사들은 먹거리 발주나 품위문제에 있어 발언권이 좁은 상황이다.”

먹거리계획 통한 공공급식체계 구축을

박씨의 고민은 기후위기와 품위문제, 토종종자에 대한 ‘등교거부’만이 아니다.

박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봉화군 학교에도 먹거리를 공급한다. 봉화군은 인구 3만명을 겨우 넘는 지역이다. 학생 수는 점차 줄고 있다. 박씨는 봉화 내륙 어느 초등학교엔 두부 한 모, 콩나물 200g(즉 콩나물 한 묶음), 애호박 3개, 파 한 단을 낸다. 한 번 나오는 발주량이 이 정도다. 한 학교 다 합쳐도 납품대금이 10만원이 안 되는 학교도, 4만~5만원 수준인 학교도 있다. 그만큼 봉화 관내 학생 수가 적기 때문이다.

“매주 화·목요일 발주가 뜬다. 납품을 위해 기사 한 명에게 요청해 하루 한 바퀴 도는 식이다. 늘 20~30% 가량 적자가 난다. 하물며 봉화는 산지 지형에 면적도 넓지 않다 보니, 이동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나.”

이는 봉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송·울진·영양 등의 군(郡)은 물론이고 영주·안동·영천 등의 시(市)도 인구가 10만명대 또는 10만명대가 무너질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지자체 차원의 친환경 학교급식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급식 유통체계 하에선 한 지자체 인구가 25만~30만명은 돼야 적자 안 보고 정상적인 공공급식이 가능하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결국 문재인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국가종합먹거리전략’을 하루속히 수립해, 봉화 산골 학교까지 미치는 공공급식 체계를 촘촘히 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씨는 “요즘 친환경농업계에서 ‘공공급식지원센터 설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국가 차원에서 각지에 공적인 성격의 급식지원센터를 만들어 관리하면 이동·유통 과정의 문제점도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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