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농업 결산] 출범, 양파·마늘 의무자조금

농민·농식품부·농협 신경전 속
농민 주도로 의무자조금 출발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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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8일 마늘·양파 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실 개소식 모습.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제공
지난 8일 마늘·양파 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실 개소식 모습.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제공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2020년은 우리나라 농산물 수급정책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농민 주도형 수급정책’을 표방하는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은 노지채소 첫 의무자조금이다. 홍보·교육에 치중했던 기존 의무자조금들과 달리 개정 자조금법을 활용해 수급조절 역할을 하기 위해 출범했다. 지난해 대통령의 ‘근본적 수급대책 마련’ 지시 이후 농식품부가 중요 사업으로 삼았고 때마침 창립한 전국양파·마늘생산자협회가 그 손을 잡았다.

하지만 출범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협력적이지 못했다. 농식품부는 의무자조금 가입신청서를 받으면서 농협조합장 단체인 한국양파·마늘산업연합회에 농민들을 자동 가입시켜 농민-농협 간 싸움을 조장했다. 농민단체인 전국양파·마늘생산자협회가 반발했을 땐 이미 싸움판이 차려진 뒤였다.

이후엔 농민-농협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농민은 농협에 ‘농민 주도형 수급정책’이라는 목적을 뺏길 판이었고 농협은 농민에게 자신들의 조직과 그간 임의자조금을 운영해온 공을 뺏길 판이었다. 한국양파·마늘산업연합회 대의원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각종 편법과 비위 의심사례들이 등장한 가운데 경기장도, 심판도 사실상 농협이 맡아 논란이 됐다.

결과적으로 의무자조금의 주도권은 농협 측의 대승적 양보에 의해 농민들이 갖게 됐다. 의무자조금 단체인 한국양파·마늘산업연합회 대의원 의석은 농민들이 우세를 확보했고 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과 사무국도 농민들이 맡았다.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은 앞으로 면적조절·자율폐기 등 자기 품목의 수급조절을 주도하게 되며 전국 양파·마늘농가들은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 농식품부·농협이 주도했다면 일방적 압박이었겠지만, 농민이 주도하기 때문에 자구 대책이 될 수 있다.

관건은 농식품부의 역할이다. 농민들은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을 만들면서 농식품부에 정부 수급정책 강화, 의무자조금 자율성 확보 등의 요구조건을 걸었는데 아직 그 이행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최근 품목 농민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오이·가지·풋고추 등의 품목에 농식품부가 의무자조금을 추진하면서 애당초 ‘농민 주도형 수급정책’에 뜻이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하는 양파·마늘 의무자조금이 농산물 수급정책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아울러 오이·가지·풋고추 등 후속 의무자조금 역시 농민들이 주도할 수 있는 조직역량을 조속히 갖출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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