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없던’ 배 일소…기후변화 못 따라가는 농작물재해보험

전국 배 농가, 일소 피해 농업재해 즉각 인정 요구
일소·폭염 및 기후재해 관련 보험 보장 확대해야

  • 입력 2024.11.29 10:04
  • 기자명 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올해 배 농가를 덮친 일소 피해는 농작물재해보험(재해보험)과 정부의 농업재해 대책이 기후위기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소 피해는 열매에 봉지를 씌워서 재배하는 배에서는 그간 거의 발생하지 않아 재해를 인식한 시점도, 일소 피해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다. 수확 과정에서는 물론 선별해 저장고에 들어간 배에서도 현재 피해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해보험은 실질적인 피해율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보장기간 종료(일소는 판매개시 연도 9월 30일 보장 종료)로 보상이 어렵고, 농업재해 인정 여부 역시 수확 이후라 피해 면적을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폭염재해 일소피해 배농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지난 27일 나주배원예농협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배 농작물재해보험 개정 전국 배농가 토론회(사진)에 19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번 피해에 대한 배 농가의 요구안, 재해보험의 약관과 피해조사의 문제점, 관련 법 개정을 위한 국회의 과제 등이 논의됐다.

전국 배 출하현황(한국과수협회)에 따르면 올해 배 출하량은 추석 전(49.5%)과 후(49.4%) 모두 지난해에 견줘 절반 수준이다. 추석 이후 생산된 전체 물량(11만8000톤) 가운데 예상 일소과는 55%(6만5000톤)에 이른다.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겨울 전정부터 가을 수확까지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이 나간 상태에서 이제 돈으로 들어와야 할 배가 무참한 상황”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강한 햇볕에 덴 부분은 서서히 갈변하면서 썩어 가거나, ‘쪄낸 것’처럼 물러져 가공용으로도 쓸 수 없어 전량 폐기해야 한다.

이날 기후변화와 배 재배관리 대응 방향을 발표한 홍성식 농촌진흥청 배연구센터장은 “올해 같은 고온과 높은 일조, 돌발 강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기상현상으로 거의 배를 찐 것 같은 현상이 전국 단위로 발생했다”라며 “주요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의 저장 물량 가운데 내부 장해과의 현황을 조사하고 있으며, 농식품부 장관 주재 기관장 회의 때 농진청장이 관련 사항을 지속 보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농진청은 이번 피해를 계기로, NIR(근적외선) 비파괴 검사, 품종별 적정 수확시기 재설정, 과실 표면의 온도 낮추기, 수분 스트레스 경감 등에 대한 연구에 돌입할 예정이다.

‘폭염재해 일소피해 배농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7일 나주배원예농협 대회의실에서 배 농작물재해보험 개정 전국 배농가 토론회를 열었다. 
‘폭염재해 일소피해 배농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7일 나주배원예농협 대회의실에서 배 농작물재해보험 개정 전국 배농가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농가들로서는 눈앞의 막대한 피해 앞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정부의 농업재해 인정과 이상기후에 맞는 재해보험 약관 개정이 시급하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재해보험 피해조사에 따른 평균 피해율도 18~20%(나주시 기준)에 그치고, 수확 뒤 봉지를 벗기지 않고 저장한 배에서 비품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다. 나주시는 자체 현장 조사를 통해 평균 피해율을 34%로 추정하면서 ‘저장 배 전수 조사를 기초로 농가 단위 피해율을 산출하고 지원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비대위는 △폭염·일소 피해를 자연재해로 공식 인정, 추석 이후 폭염·일소 피해 배에 대해 일괄 보상(농식품부) △일소 피해 배 보험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피해율 30% 이상으로 보상(농업정책보험금융원) △배 일소 피해 보험을 적과 전·후 폭염재해 보험으로 전면 개정 △배 일소 피해 등 폭염 피해 배 농가에 대한 특별 지원 대책 마련(나주시)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의 핵심은 이번 피해를 정확히 조사해(보험조사뿐 아니라 행정 당국의 선제적 조사), 폭염 및 아열대로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해보험과 농업재해 대책이 ‘피해 보상에 그치지 않고 내년에도 다시 농사지을 수 있도록(농가 경영 안정)' 보장하는 장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약관과 관련한 요구로는 △일소 피해의 인정 기준(적과 후 전체 착과수 기준 6% 이상 발생)을 삭제하고 △피해율을 구분해 산정(50·80·100%)하는 대신 고정 비율(일소 피해과 80%)을 신설하며 △과수 4종(사과·배·단감·떫은감)에도 전기간종합위험방식의 상품을 도입하라는 것 등이다. 현재 이들 과수는 적과 후엔 특정 자연재해만 피해가 인정된다. 즉 일소 피해는 물론 폭염에 따른 다양한 피해를 통합해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비대위는 전국 배 농가 서명 운동 및 오는 4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앞에서 전국 배 농가 총궐기 대회를 진행하는 등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서 펼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