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폭염으로 무너진 농민, 국가가 살려라

  • 입력 2024.11.03 18:00
  • 수정 2024.11.03 19:52
  • 기자명 김성보(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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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보(전남 나주)
김성보(전남 나주)

지난 9월 21일, 나에게는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나는 나주에서 20년 동안 나주배 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 배 농사를 시작한 2004년 이후로 별놈의 날씨를 겪어 봤지만 올해처럼 허망하게 배가 검게 그을리거나 폭 삶아지는 일소피해를 겪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기후위기가 내 과수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을 배 수확기에 동시다발로 덮쳐왔다. 지난 8월 폭염이 추석을 지나 9월 말까지 지속되더니 결국은 본격적인 가을 수확기에 자연재해의 습격을 당한 것이다.

돌아보니 김장을 앞두고 심었던 배추, 무 모종이 폭염에 전부 사그라들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폭염이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해남을 비롯한 전남 서남부지역에 벼멸구가 창궐했을 때까지도 나주배까지 피해가 닥쳐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추석이 지난 9월 18일부터 1차 배 수확을 했다. 그리고 9월 21일 설 명절에 사용할 배 저장작업을 했는데, 배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불과 보름 전에 있었던 추석 배 작업을 할 때까지도 잘 나타나지 않았던 배 햇빛 데임과 경도가 약해진 무름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즉시 나주시농업기술센터에 피해과실 사진을 보여주며 현장 방문을 요청했다. 그날 오후 찾아온 농업기술센터장에게 매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며 본격적인 수확기를 감안해 배 주산지인 나주시부터 자체 피해 조사를 실시할 것을 적극 제안했다. 하지만, 나주시의 행정 대처는 소극적이었고 기초적인 피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농협손해보험에 가입한 배농작물보험 조사마저도 조사시기나 조사방식이 일소피해 증상의 잠복기와 지속적인 피해과 발생을 무시한 채 일회성으로 단순조사에만 그쳐 제대로 된 피해조사가 되지 않아, 사실상 피해보상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9월 말~10월 초순에 접어들면서 폭염으로 인해 일소피해와 더불어 열과 피해까지 발생해, 과수원에서는 봉지째 버려지는 배들이 배밭에 나뒹굴었고, 저장작업을 위해 배 봉지를 열어보니 검게 햇빛에 그을리거나 무름 증상이 심각했다. 가슴이 울컥거리며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올해 4월 초 개화기에 날씨가 너무나 좋았고 배 수정도 잘돼 배 봉지가 평년보다 더 많이 들어가 가을 수확을 많이 기대했는데, 폭염이 장기화되면서 이런 기막힌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틀림없이 올해도 무슨 자연의 변수가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추석 작업을 잘했는데, 곧장 이어 시작된 가을 수확기 배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이야.

지난 10월 24일, 나주시 거점 산지유통센터(APC)와 나주배원예농협 수출선과장을 다녀왔다. 나주배 수출작업이 한창이었다. 선별작업장의 마지막 라인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상품과에 들어가지 못한 배들이 절반 이상 물철(폐기)로, 가공용 배로 분류되어 노란 컨테이너 상자들에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폭염으로 많게는 30% 이상 물철이 나오는 농가가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작업팀장이 말한다. 그야말로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수출작업장에서 만난 한 농민이 나에게 수출작업결과표를 보여주었다. 9월 말 수확해서 입고한 수출배 결과표였다. 입고량 720상자, 특품 15kg 385개, 비품 15kg 308개, 물철 150상자였다. 폐기처분할 물철이 20% 넘게 나온 것에 절망감이 역력했다. 수출배를 입고하기 전에 인부를 동원해 상자 작업을 한 번 했는데도 트럭 2대 분량의 150상자 물철을 자기 과수원에 버려야 할 그 심정이 어떨지 눈앞이 캄캄해 보였다.

나는 한 달 동안에 겪었던 폭염피해 상황이 자연재해로 생긴 문제이기에 지켜만 볼 수가 없어, 진보당 전종덕 의원실에 피해 현황을 설명하고 마지막 국감 자리에서나마 과수농가들을 대변해줄 것을 요청드렸다. 10월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농업정책보험금융원장을 상대로 과수 농민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농작물재해보험마저도 폭염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하고 대책을 강구하라는 전 의원의 강력한 질의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다만, 농식품부도, 농협손해보험도, 지자체도 아직까지 분명한 대책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말하고 싶다. 폭염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농민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국가가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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