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범대위가 백 농민의 이름 앞에 붙인 수식어는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 농민 사건에 두 팔 걷고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순결하고 정직한 삶과 무관하지 않다.1970년대 백 농민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불의한 권력에 오뚝이처럼 저항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군사정권 하에서 끝없이 민주화를 열망했던 가슴 뜨거운 청년이었다. 그러나 ‘전문 시위꾼’이라는 일각의 비판과는 달리 1980년대부터는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와 줄곧 농사에 전념했다. 돈푼 되지 않는 우리밀을 사명감으로 가꾸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는 사람’, ‘자기 몫 챙기지 않는 사람’, ‘양심이 곧은 사람’. 지인들은 백 농민을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1년간 정국의 중심엔 어김없이 농민이 등장했다.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에서 발생한 백남기 농민 사건, 농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봄부터 전국 도보행진으로 들불을 일궜다. 여성농민들은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없이 백남기 농민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고, 이어 농민단체 대표자들은 삭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상식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는 농민들의 끈질긴 투쟁에 국민들이 박수를 보낸 것도 그래서다. 백남기 농민 운명 이후 벌어진 부검 반대 투쟁에 국민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압권은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듯 국도를 타고 올라온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이다. 국민들은 답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전인권 ‘걱정말아요 그대’“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고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해요.”청와대 200미터 앞까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백만 군중 앞에서 울부짖듯 가객 전인권의 표효소리는 민중들의 떼창과 함께 어울려 청와대 구중궁궐 깊숙이 파고 들었을 것이다.필자는 56년 전 1960년 4월 19일 대학 3학년생일 때, 그 길을 민주주의 열망에 피가 끓는 학생 청년들 무리에 섞여 “독재자 이승만 하야”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미치도록 달렸었다. 총성이 난무했던 그 길을 이번에는 앞뒤 좌우가 군중 떼에 밀착되어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여성농민단체가 일관되게 필요성을 주장한 ‘여성농민정책 전담부서’ 의무설치 법안이 발의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군)은 지난 18일 건강한 농어촌가정의 구현을 위해 여성농어업인을 지원하는 내용의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전체 농업인 가운데 53%를 차지하는 여성농업인은 농촌 주역을 담당하지만 농어업인으로서의 지위는 남성농어업인에 비해 낮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여성농어업인의 육성·지원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 체계적인 정책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이에 황주홍 의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성농어업인의 육성정책을 담당하는 전담부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고 백남기 농민이 지난 6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영원히 잠들었다. 세상을 떠난 지 42일 만에 치러진 장례다. 수많은 추모행렬이 광주 금남로에서부터 장지까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이에 앞서 고 백남기농민 장례위원회는 지난 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천주교 수도사들과 유족들의 발인 이후 9시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가졌다. 이후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노제를 치르고 광화문광장에서 5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민주시민사회장으로 영결식을 진행했다. 이날 저녁 10시께 고인의 운구는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돌아갔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집을 떠난 지 358일만이다.고인은 1947년 전남 보성군 웅치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지난 6일 백 농민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고향 지인들의 추모사는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애도로 가득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그는 “항상 강자에 맞서 약자를 배려했던 내 고향의 큰 어른”이었고, “무척이나 진실된 농사꾼”이었으며, 끝내는 “그 이름을 지우려 해도 우리의 기억이 그 이름을 또 다시 새길 것”이라던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많은 사람들이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 그의 삶의 행적을 알게 되면서 놀라워했다. 이 나라 민주화의 중심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올곧게 지키며, 평소 좋아했던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를 가슴에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이 6일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영원히 잠들었다. 세상을 떠난 지 42일만에 치러진 고인의 장례식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슬픔에 잠긴 수많은 추모행렬이 광주 금남로에서부터 장지까지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 배웅했다.백씨 유족과 보성군농민회는 6일 오전 보성군 웅치면 부춘리에 주검을 운구해 마을사람들과 함께 노제를 지냈다. 이어 보성역에서 열린 노제에서는 고인의 지인과 시민사회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낭독, 헌화·분향, 추모 살풀이 공연 등이 진행됐다. 안규갑 웅치면민회장은 “농민대통령 고 백남기님의 영전에”라는 제목의 추모사를 낭독하며 “아직도 나는 당신이 돌아오지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병원에선 한 농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모였다.4일 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 모인 300여 시민들은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촛불을 들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추모의 밤을 보냈다. 고 백남기 농민은 사망 40일 만에 마지막 가는 길에 올랐다. 추모의 밤 사회를 맡은 김정열 전여농 사무총장은 “불의한 시대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앞에 선 기적같은 시간이었다”고 지난 40일을 떠올리며 백남기 농민을 함께 지킨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중앙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쓴 자작시로 시작한 추모의 밤은 살아생전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며 그의 삶과 뜻을 기리는 시간이었다. “8
“나는 보성 벌교 사람이오. 조정래의 .”얼마 전 담양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 아저씨가 타지인인 내게 불쑥 진한 전라도 말로 말씀을 건네셨다.“아, 보성이요? 백남기 어르신이 보성군 웅치면에서 나고 그곳에서 사셨다 하더군요.”“보성 사람이 본래 기가 세오.”기가 센 보성사람 백남기 어르신 장례를, 이제야 치른다. 아마 이 글이 농정신문에 실릴 즈음에는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에 평안히 묻히셨을 것이다. 그래도 딴에는 글쟁이랍시고 지면 욕심은 있어서 가끔 돌아오는 당번이 걸리면 가급적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건방이 앞서곤 했다. 외람되지만 그동안 백남기 어르신의 이야기는 뉴스 복판을 차지하였으니(적어도 농판에서 말이다), 굳이 나까지, 라는 심정이기도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남도에 머문 가을 하늘은 가슴 시리도록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시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부춘마을 어귀에 내건 현수막이 스치는 바람에 펄럭였다. ‘의로운 사람 헌신하는 삶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지난 2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은 오래간만에 생기가 돌았다. 지난 6월 생전의 그가 뿌리고 간 밀을 수확한 뒤 관심 둘 이 없어 발길이 뜸해진 밀밭을 로터리 치고, 퇴비와 유박, 비료 등을 뿌리는 후배 농민들의 일손이 아침나절부터 부산스럽게 이어졌다.지난해 고인의 쾌유를 기원하며 내건 빛바랜 현수막 옆엔 ‘이제 우리밀은 저희들이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적힌 새로운 현수막이 가을 햇살을 머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운명한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가 오는 5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1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5일 오후 2시에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갖고 6일 광주 망월동 5‧18구묘역에 고인을 안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투쟁본부는 곧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에서 추모의 밤을 연다. 5일 오전 8시에 발인한 후, 오전 9시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가운데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이어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진행한다. 6일에는 고인의 고향인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이 파기해서 없다고 했던 ‘백남기 농민 상황속보’가 공개된 가운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잇따른 거짓말이 조직적인 은폐로 밝혀졌다. 전·현직 경찰청장의 위증 책임과 현 청장의 자진사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지난 19일 야3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의 위증을 중대한 위법 행위로 규정하고 이철성 경찰청장의 자진사퇴와 부검영장 강제집행 시도 중단,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발단이 된 것은 지난 18일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백 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당시 상황이 담긴 경찰 상황속보 문건을 공개하면서 그동안의 은폐의혹이 모두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6일 쌀수급 대책 발표, 18일 시장격리 25만톤 잠정 확정, 쌀 대책 간담회. 농식품부가 수확기 쌀 대책에 동분서주 하고 있지만 산지쌀값은 지난 5일보다 1.7% 다시 하락했다. 정부 대책에 대한 효과를 기대하긴 이르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쌀값 반등에는 역부족이란 여론이 대세다.신곡 수요량의 초과량을 시장격리해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농식품부의 지난 6일 발표 이후 격리물량이 잠정 확정됐다. 농식품부는 지난 18일 국무회의가 끝나고 ‘25만톤’의 잠정 격리물량을 확정했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예상생산량 420만2,000톤 중 신곡수요량을 390만톤 내외로 추산한 물량이라는 것이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관계자의 설명이다.농식품부는 시장격리 효과를 높이기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신경 못 썼는데도 농사는 잘 됐구먼. 알곡도 잘 찬 것 같고. 근데 관리를 제때 못 했어. 풀약도 못 주고. 피가 키 마냥 커서 일일이 제거하는 중이여. 아직 논에 물이 안 말라서 기계가 못 들어와. 푹푹 빠져서 지금도 장화신고 왔지. 볕이 좋으니 아마 다음 주면 수확하지 않을까 싶네. 남의 집에서 농사 진 것부터 따지면 한 70년 됐지. 올핸 2필지 정도 했는데 이젠 힘에 부치는구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백남기 농민이) 친동생들처럼 잘 해줬죠. 그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 아는 사실을 갖다가 지금 경찰이 은폐하고 있는 거잖여. 명백한 사실인데, 봉사가 봐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여. 자기들이 시인을 하고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했으면 우리들도 좀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식으로 하니까…. 정부가 농민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줬으면 이런 일이 안 벌어지죠.”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그 분의 마음이 항상 민주화였어요. 막내딸 이름도 ‘민주화’로 지었잖아요.”지난 3일 고 백남기 농민 빈소에서 만난 고향 주민 김기중(60)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땅거미가 진 늦은 오후 6시 전남 보성군 웅치면 주민 60여명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14일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이틀 뒤 한달음에 병문안을 왔던 이웃들이다. 조문 리본을 가슴에 단 주민들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 하나둘 눈시울만 붉혔다. 빈소 안에선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라는 어느 조문객의 울분에 찬 외침도 들려왔다.‘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웃’을 조문하는 이웃들의 속내를 묻는 것도 고역스러운 일. 슬퍼할 새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8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 이화사거리 앞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살인정권 규탄 백남기투쟁본부’에서 주최했다. 이날 집회엔 주최 측 추산 3,000여 명(경찰 추산 2,000여 명)이 모였다.추모대회의 첫 번째 발언은 천주교 전주교구 김회인 신부가 했다. 김 신부는 “국가에 대해 그 분(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일 권리를 그 누구도 내어준 적 없다. 그럼에도 백남기 어르신은 국가가 물대포로 죽였다. 그를 죽인 물대포는 없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불법 폭력시위는 엄단하세요’ 한 마디 남기고 외국으로 간 대통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4일 전북 전주 농촌진흥청(청장 정황근, 농진청)에서 이뤄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김영춘, 농해수위) 2016년도 국정감사의 화두는 GMO(유전자변형농산물)였다. 농진청은 현재 청사 근처 노지를 비롯해 각지의 지역사업소에 GM벼 격리포장 시설을 두고 있으며, 이곳에서 GMO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의원들은 GMO의 위험성 및 GM 벼 관련 시설 관리의 허술함 등을 강하게 지적했다.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충남 천안을)은 농진청의 GMO 위험 관리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며, “완주 격리포장 시설의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화분 비산 방지용 그물망(GM벼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다른 논밭을 오염시킬 가능성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그물망)이 올해 7월말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백남기 농민이 지난달 25일 일요일 운명했다. ‘한국농민의 죽음’ 앞에 각계각층은 국가폭력의 책임을 묻고 백남기 농민의 뜻을 이어 민주주의 회복, 식량주권 사수에 나서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물대포 직사 살수로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박근혜정권은 대규모 경찰 병력을 병원에 난입시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국가폭력으로 막아섰다.앞서 전날인 24일은 백남기 농민의 70번째 생신이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에게 주말을 넘기기 힘들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 사건을 10개월 동안 ‘조사’만 하고 있던 검찰에서 부검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가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그늘을 드리웠다.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농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경찰이 죽였다.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로 살수했고 혈혈단신의 한 농부는 이를 온 몸으로 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살수는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촬영 영상을 재차 돌려보며 곱씹노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걸로 끝이었다. 농업 위기의 시대, 먹어야 사는 우리에게 쌀의 소중함, 생명농업의 숭고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저 멀리 남도의 고장, 보성에서 올라온 농민 백남기씨는 정권의 폭압적인 공권력에 당당히 맞서 선두에 섰다는 이유로 그날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의식불명에 빠진 후 317일이 되는 날, 그의 생명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과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겠다며 부검부터 운운하기 시작했다.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