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317일, 산 자의 몫

  • 입력 2016.09.30 12:56
  • 수정 2016.09.30 13:3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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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고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 조문객이 추모를 위한 흰 국화를 건네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경찰이 죽였다.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로 살수했고 혈혈단신의 한 농부는 이를 온 몸으로 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살수는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촬영 영상을 재차 돌려보며 곱씹노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걸로 끝이었다. 농업 위기의 시대, 먹어야 사는 우리에게 쌀의 소중함, 생명농업의 숭고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저 멀리 남도의 고장, 보성에서 올라온 농민 백남기씨는 정권의 폭압적인 공권력에 당당히 맞서 선두에 섰다는 이유로 그날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의식불명에 빠진 후 317일이 되는 날, 그의 생명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과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겠다며 부검부터 운운하기 시작했다. 인간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검경의 패륜적 행위에 분노를 금치 못할 즈음, 그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가족과 대책위 관계자가 임종을 지킨 가운데 그는 생을 달리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해결치 못한 문제는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로.

검경의 부검 운운으로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그 짧은 길조차 고인에겐 가시밭길이었다. 시신이 운구차로 운구되고 장례식장 안치실로 향하기까지 수많은 대학생들은 스스로 인간 바리게이트가 됐다. 서로의 양팔을 걸고 세 겹 네 겹으로 인간방패를 만들어 운구차의 안전한 이동을 확보했다. 당시 병원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막고 시민들의 진출입을 통제한 경찰들은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는 그 순간까지도 장례식장 진입을 시도하는 등 반인륜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법원은 경찰의 부검 영장을 기각했지만 경찰은 이의를 제기하며 영장을 재청구했다. 고인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추모의 시간을 가져야함에도 이렇게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한탄스럽다”며 경찰의 도가 지나친 행위들을 비난했다.

“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를 외치며 장례식장으로 속속 모여든 농민, 시민, 대학생들은 그날 이후로 한뎃잠을 자기 시작했다.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안치실 앞에선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번을 서는 듯 매일매일 홑겹의 비닐만을 덮고 아스팔트의 차디찬 냉기를 버텨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안치실로 향하는 비탈길엔 대학생들이 고인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노숙을 청했다. 장례식장 1층 출입구, 3층 출입구에서도 고인의 평온한 안식을 위해 함께 하겠다는 시민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 현장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317일이라는 그 긴 시간동안 단 한 번의 사과조차 사치스러운 듯 아꼈던 인륜을 저버린 정권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고 결기 있게 뜻을 모으는 장소였다.

결국, 법원은 검경의 재청구를 받아 들여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사인은 명확하다”며 부검을 일절 거부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협의하라고 종용하는 비겁하고 치졸한 영장이었다. 추모의 시간조차 온전히 허락되지 않은 유가족은 다시 기자회견에 불려 나왔다.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

험난한 삶 속에서도 이 나라의 민주화를 바라며 생전의 고인이 즐겨 불렀다는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에 보면 아래와 같은 가사가 흐른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어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인이 꿈꿔 온 세상이 지금의 아수라 같은 대한민국은 분명 아닐 터, 고인이 산 자에게 남겨둔 몫은 분명하다. 이제 무얼 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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