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남기 농민’을 기억한다는 것

  • 입력 2016.11.11 10:34
  • 수정 2016.11.11 10:37
  • 기자명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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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지난 6일 백 농민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고향 지인들의 추모사는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애도로 가득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그는 “항상 강자에 맞서 약자를 배려했던 내 고향의 큰 어른”이었고, “무척이나 진실된 농사꾼”이었으며, 끝내는 “그 이름을 지우려 해도 우리의 기억이 그 이름을 또 다시 새길 것”이라던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 그의 삶의 행적을 알게 되면서 놀라워했다. 이 나라 민주화의 중심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올곧게 지키며, 평소 좋아했던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를 가슴에 간직한 채 물대포에 맞는 그 순간까지 살았다.

6일 이른 아침, 보성역에서 택시를 타고 웅치면 부춘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택시기사는 “원래 웅치면은 음지여서 밀이 잘 자라지 못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독 부춘마을만은 따뜻해서 밀재배를 많이 한다고 일러줬다. 그가 평생 일군 밀밭을 바라보니 고인의 생은 삶과 말이 완벽하게 일치한 ‘쓰여지지 않은 시(詩)’와 같았다. 보성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망월동에서, 장례식을 거행하는 그 순간순간이 그의 삶과 결을 같이해 큰 슬픔과 함께 울림을 주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이란 이름자 외에는 어떤 수식도 필요 없던 분이었다. 이 땅에 씨가 마른 듯 했던 우리밀을 살려냈던 것처럼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양심과 행동과 민주주의 물결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백남기 농민은 그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길 위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름다운 유산을 추모의 물결 속에 남기고 떠났다. 한 줌 재가 아닌 빛으로.

고인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아버지의 약력이 적힌 작은 종이 뒤에 ‘다짐’이란 제목으로 ‘거대한 악과 싸운다는 것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느낌이다’며 ‘그러나 내 아버지의 딸로서, 나는 할 일을 하려 한다’고 썼다. 책임자 처벌은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존엄한 삶과 그 존엄을 죽인 살인정권에 대한 책임자처벌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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