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금 장소에서 자신의 체감온도 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휴식 알림이 배지’는 생명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체감온도를 수치가 아닌, 노랑(주의)·주황(경고)·빨강(위험) 단계별로 보여준다. 1개에 약 1400원, 옷 위에 달거나 붙여 쓸 수 있는 소모품(하루 8시간 이상, 약 4주간 사용)일 뿐이지만, 농작업 중 몸 상태를 바로 식별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전국 165개 지방농촌진흥기관에 50개씩 배포해 이를 알리고 있다.
별것 아닌 이 용품이 주목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안전 문제를 대하는 방식과 연결돼서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막을 수 있었던 재해는 별것 아닌 상황들에 소홀히 대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기후위기의 제1차 직격 대상”이 된 농민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인력과 예산 속에서도 현장의 신호들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업인 안전 전담 부서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경란 농진청 농업인안전팀장(사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수나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폭염이 심각하다. 농민이 폭염에 더 취약한 이유는
여름이라고 농사를 접고 쉴 수도 없고, 농작업이 대부분 폭염을 피하기 어려운 야외나 온실에서 이뤄져서다. 특히 고령 농민은 대개 만성질환이 있어 더 취약하다.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으면 더위를 느끼는 감각이 약하다. 고령 농민이 논밭에서 쓰러지는 이유는 덥다고 느낄 땐 이미 체온이 열사병 수준으로 오른 상태라서다. 기후위기는 제1차로 농민을 직격한다.
기억해야 할 폭염 예방수칙은
농민들은 몸이 열에 적응돼 같은 온도라도 보통 사람들보다 덜 덥게 느끼고 더위를 잘 참는다. 이처럼 자각이 늦어 온열질환이 더욱 심각하게 올 수 있다.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나 일단은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작업시간을 관리하는 게 먼저다. 사는 지역이나 작업장 온도가 아닌 현재 자신의 체감온도를 수시로 점검해서 작업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현재 온열질환 정책, 보완할 방안은
‘안전바우처’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계절마다 작업복, 개인보호구 등을 받지만, 농민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산재를 막으려면 결국 예방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안전바우처로 1년에 일정 액수만큼을 보냉장비, 방진마스크 등을 사도록 하는 거다. 농민들도 실제로 써보면 효과를 알 수 있다.
아울러 농업 안전장비는 농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필수품이다. 농민들은 늘 현금이 아쉬우니 매우 싸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 농업 관련 회사들이 안전펀드를 조성해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게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아닌가.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이 되려면, 결국 그 주체인 농민의 삶부터 지속 가능해야 하고 그러려면 농민의 애로가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폭염 대책은
7월 17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5대 폭염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농민은 경영주인 동시에 작업자라는 고충이 있다. 일반 사업장은 사업주가 신경 쓰면 되지만 농민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에서 스스로 온열질환 예방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은 외국인노동자 공급에만 정책적 관심이 집중돼 있으나, 이젠 인력 공급과 함께 보냉장비 지원도 관련 사업에 포함해야 한다.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온열질환 예방사업, 마을 구석까지 가 닿으려면
앞으론 직접 찾아가서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 고령, 독거, 장애 등 취약한 농민들을 직접 만나 예방수칙을 안내하고, 보냉장비를 나줘 주는 것이다. 마을마다 활동할 수 있는 예방요원이 필요하다.
시군별로 8명 정도를 폭염 기간(약 8주)에 온열질환 예방 활동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전국에 걸친 지속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해 예산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농업이 특별하다면서도 지금까지 특별한 돌봄은 없지 않았나. 아울러 온열질환은 이제 산재다. 이런 사업부터 마중물처럼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농민 안전 전담 부서로서 어려움은
규모가 작은 농장이나 혼자 일하는 소농가엔 법·제도가 미치지 못한다. 농진청은 그 같은 사각지대의 안전을 지원하는데 예산이나 사업이 매우 부족하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나 전국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추진 지역 내에서도 일부에 그친다. 사업의 전국 단위 확산과 지속성이 절실하다. 인력과 예산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문제다. 관련 부처가 모두 애쓰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이를 뒷받침할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농민 안전 관련 정책에 큰 그림은
향후 ‘농업인건강안전센터’라고 연구·개발, 교육·지도, 전문 인력 육성, 재해 예방에 대한 통합 서비스 등을 총괄하는 기관을 만들 계획이다.
재해 원인 조사, 교육 자료 개발 및 교육, 편이·안전장비 기술 개발, 관련 정책과 예산 기획 등이 통합되는 기관 설립이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