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때 이른 극한 폭염이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수도권과 충청권이 폭우에 휩싸여 있지만, 전문가들은 폭염이 더 심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촌진흥청(청장 권재한, 농진청)이 지난 16일 전북 완주군 국립농업과학원(원장 이승돈, 농과원)에서 농업전문지 기자단을 대상으로 폭염 속 농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현재 추진하는 대책을 소개했다.
주로 바깥과 비닐온실 등에서 농작업을 하는 농민은 폭염 취약 계층이다. 특히 고령 농민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폭염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상대적으로 낮아 온열질환에 더욱 취약하다.
지난 13일 기준, 전국 응급실에 신고된 온열질환자 1566명 가운데 농업분야 온열질환자는 271명으로 전체의 17%로 집계됐다. 전체 온열질환자 가운데 사망자는 9명이며, 농업분야 사망자는 4명을 차지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전체 온열질환자는 약 2.9배, 농업분야는 2.2배 증가한 상태다.
농업분야 온열질환자의 약 79%는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온열질환 발생은 오전 8시부터 급격히 증가해 12~14시(20%)에 가장 많았다.
이날 설명에 나선 김경란 농진청 농업인안전팀 과장은 “이 같은 지표는 폭염이 단기간에 농민의 건강을 얼마나 위협하는지를 보여준다. 실효성 있는 현장 대책이 필요한 이유”라며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보다 5일 빠른 지난 5월 15일부터 폭염 대책 기간을 운영하고, 농진청도 2025년 온열질환 예방대책을 수립해 각 기관에 배포했다. 지난해까진 165개 농촌진흥기관이 재해대책의 일부로 온열질환을 다뤘다면 올해는 농진청 정책에 맞춰 각 기관이 온열질환 대책을 수립해서 시행 중인 것이 차이”라고 설명했다.
농민 온열질환 관련 추진 중인 주요 대책은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가이드 및 농업인 온열질환 자율점검 체크리스트 △전국 농촌진흥기관에 시군 단위 농업분야 온열질환 발생 통계(질병관리청 협조) 주 1회 이상 공유 △폭염 영향 예보 정보 및 체감온도 계산 서비스 제공(기상청 협업) △온열질환 예방 장비 및 온열 환경 개선설비 지원사업(농사업장에 이동식 에어컨, 냉풍기 등 지원) △민간(동아오츠카(주), 대한적십자사 등)과 온열질환 예방 물품 지원 및 캠페인 진행 등이 있다.
아울러 관련 신기술로는 △에어냉각조끼 보급 사업(전국 20개소, 209농가) △온열질환 위험알림 워치(2027년 보급 예정)가 진행 중이다.
에어냉각조끼는 애초 조선소 노동자들이 쓰던 것에서 착안해 소음과 무게를 낮추고 조끼 형태로 제작했다. 착용하면 외부 실온보다 15℃를 낮춰 줘 시원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어콤프레셔와 호스, 전기 시설이 필요해 온실 작업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온열질환 위험알림 워치는 손목에 착용하는 장비로, 열 스트레스 정도·운동량·심박수·에너지 소모량·GPS 위치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위험 경고·휴식 알림·119 자동연결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김경란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때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온열질환 예방가이드가 다국어로 제공되지 않는 점을 지적해, 농진청은 신속하게 고용노동부와 외국 자료 등을 활용해 모두 9개국어(한국어 포함)로 된 예방가이드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했다.
농진청에서 총 5만부 배포했으며, 시군 농업기술센터와 유관 단체는 필요한 만큼 인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각 지자체에서도 이 자료를 쓰고 있다. 특히 외국어와 한국어가 따로 제작된 기존 자료와 달리 왼쪽 면은 한국어, 오른쪽 면은 외국어를 배치해 현장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기 쉽게 했다. 아울러 현장 기술 지도자들이 작물지도와 함께 온열질환 예방책도 함께 지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질병청 및 기상청과 협업해 제공되는 농업분야 온열질환 관련 통계와 폭염 기상 정보는 각 기관이 온열질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 자료로 쓰인다. 특히 폭염 때는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보다 체감온도가 더 중요하다. 이는 기상청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체감온도와 그에 따른 대응요령을 알기 쉽도록 농진청은 ‘농업인안전 365’ 누리집에서 체감온도 계산과 단계별 행동요령을 제공한다.
김 과장은 특히 농민들이 ‘20% 규칙’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 규칙은 휴일 뒤 일하는 첫날은 더위 노출을 줄이고, 이후 하루 최대 20%씩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온열질환자의 다수가 폭염 시 농작업을 시작한 첫날에 발생하기 때문에 몸이 더위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서다.
아울러 17일부터 시행되는「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개정안에 따라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가라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보냉장구 지급 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김 과장은 “극한 폭염이 이어지고 농민은 다른 직업군보다 폭염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어 관련 법규를 꼭 지켜야 한다”라며 “핵심은 폭염특보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씩 쉬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관련한 5대 원칙도 예방가이드에 담았다”라고 설명했다.
설명을 마무리하며 김경란 과장은 “온열질환은 단순 질병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지만 철저한 사전 예방으로 막을 수 있다”라며 “예방 중심 체계와 실효성 있는 기술 개발 및 현장 보급으로 온열질환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권철희 농진청 농촌지원국장은 “폭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현장 밀착형 아이디어 발굴과 신규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라고 전했다.
설명회 뒤엔, 농과원에 있는 ‘농작업 안전 전시 체험관’에서 각종 농작업 질환에 대한 안내도 진행됐다. 2023년 개관한 이 체험관은 농작업(농약 방제 및 축산 작업) 개인 보호 장비, 농업기계 사고 예방, 안전체험존(각종 농작업 안전 장비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엔 농민 450여명, 올해 상반기엔 400여명이 찾아와 농작업 안전 교육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