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푸드마일리지’는 농축산물이 농장에서 생산된 이후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말한다. 물류의 이동이 탄소의 배출과 직결되는 일이고 보면, 푸드마일리지를 줄이는 건 농산물 자체의 친환경적 생산 못지않게 탄소중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유통혁신, 갈 길이 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유통실태 조사에 따르면 농산물의 소비자 구매가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47.5%(2019년 기준)다. 유통 비효율로 인한 비용 낭비가 크다는 걸 누구나 확인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비용들이 고스란히 탄소배출량으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최근 대형 유통업체나 온라인채널 등을 중심으로 나름의 유통단계 축소 노력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국내 생산 농산물의 절반은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도매시장은 가장 유통비효율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특히 가락시장이라는 독보적 시장의 존재는 전남·경남·제주까지 거리 불문 모든 지역 농산물을 서울로 대이동시키는 현상을 낳고 있다. 가락시장의 일일 출입 차량은 4만9,000여대(출하차량 약 1,500대)며 심지어 지역 도매시장의 수집능력이 부실한 탓에 전송거래도 횡행한다. 가령 광주 농산물이 가락시장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광주 도매시장으로 내려가는 식이다.
도매시장 개설자들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상물분리(소유권과 물류의 분리)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기득권이 강하고 보수적인 도매시장의 특성상 순탄치가 않다. 유통주체들의 소극적 태도로 경매 이외의 정가·수의매매가 전혀 확대되지 않고 있고 4년차에 접어든 가락시장 온라인경매 역시 연간 784톤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농협 온라인 도매거래는 그나마 좀 낫지만 3만5,000톤 수준으로 역시 아직은 아쉬운 모습이다.
유통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에 반해 몇몇 정부 정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농식품부가 도매시장 내 보수세력에 호의적인 건 주지의 사실이며, 그나마 대안유통을 활성화하는 사업엔 기재부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유통·장터 등 농식품부의 농산물 직거래 지원예산이 지난해 80억원에서 올해 69억원으로 삭감된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직거래장터 사업실적이 부진해지자 이를 구실삼은 것인데, 농식품부가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입 농산물만 안 먹어도 ‘지구 지킴이’
유통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생각하면 최대 적폐는 수입 농산물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수천 내지 1만km 이상을 이동하는 수입 유통은 수백km의 국내 유통과는 단위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특히 농식품 수입량이 많고 수입거리가 긴 나라에 속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최종 소비단계까지 포도의 톤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국산이 50.1kg, 수입이 221.7kg이며, 국민 1인당 연간 식품 수입량은 468kg,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2kg이다.
1인당 식품 수입량 468kg을 전 국민으로 환산하면 약 2,400만톤인데, 이조차도 농식품부의 편의적 집계일 뿐이다. 가공·사료용 곡물과 가공식품·사료 전체를 따지면 총 수입량은 약 4,200만톤. 계산해보면, 우리나라는 농식품 및 원재료 수입만으로 지구에 연간 1,3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운송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농산물은 통관 단계에서 과일을 중심으로 훈증소독을 거치는데, 훈증제인 메틸브로마이드는 대표적인 오존 파괴 물질이며 훈증 작업자에게도 중추신경계 이상을 유발한다. 대체훈증제 사용을 조금씩 늘리는 추세라지만 대체훈증제 역시 무해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유해성이 적을 뿐이다. 또한 통관 이전에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의 방부·훈증처리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분야다.
국내 유통개혁의 문제는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수입 농산물 문제는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수입 농산물의 환경적 문제를 인식하고 국산 위주의 소비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탄소중립에 한몫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의 유통·소비, ‘로컬푸드’
푸드마일리지를 생각하자면 가장 이상적인 유통방식은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소위 ‘로컬푸드’ 시스템이다. 애당초 푸드마일리지란 개념부터가 2000년대 후반 로컬푸드 운동과 함께 대두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초반 전북 완주에 뿌리내린 로컬푸드 운동이 전국적·정책적 주목을 받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양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전국 32개소였던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해(10월 기준) 663개소가 됐고, 2017년 1만8,000호였던 직매장 출하농가는 3만6,063명이 됐다. 공공급식·꾸러미 등에의 로컬푸드 사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관건은 질적 정비에 있다. 간판은 로컬푸드이되 정작 농가 참여 비중이 작거나 농협의 유통망이 주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으며 도·농의 분리, 작목별 주산지화로 지역 내에서 구색을 갖춘 공급이 힘든 경우도 매우 일반적이다.
최근의 로컬푸드는 정부·지자체가 지원하는 ‘푸드플랜’과 융합하고 있다. 작부체계 개편을 포함해 지역 내 먹거리 자급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도시의 경우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먹거리를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생산·유통·소비·폐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다 큰 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됐다는 뜻이다. 지역 구성원들의 주체적 의지와 함께 정부의 포용적 협력이 뒷받침된다면 로컬푸드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혁신을 이뤄낼 수도 있다.
지역 푸드플랜은 또한 식량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푸드플랜의 밑바탕이 된다. 적어도 먹거리 분야에선 탄소 문제를 최대한 제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시대 선진국의 품격은 바로 이같은 노력과 성과가 만들어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