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 이제는 친환경이다] 친환경농사로 하늘·땅·생명이 모두 건강해진다

  • 입력 2022.01.01 00:00
  • 수정 2022.01.01 00:0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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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에서 27년째 농사짓는 박순웅 씨. 그는 홍천에서 목회활동을 하며 약 2,000평의 농지에서 감자·고구마·옥수수·토종땅콩·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변화무쌍한 기후 때문에 어려움이 없진 않으나, 박씨는 “친환경농사가 재밌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건강해지는 땅

친환경농사로 토양이 건강해지면 대기로 빠져나가는 탄소를 더 확실히 붙잡아 토양에 저장할 수 있다. 건강한 토양에서 생산한 먹거리의 질 또한 우수한 걸로 나타난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의 친환경 밀밭에서 국산밀이 자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농사로 토양이 건강해지면 대기로 빠져나가는 탄소를 더 확실히 붙잡아 토양에 저장할 수 있다. 건강한 토양에서 생산한 먹거리의 질 또한 우수한 걸로 나타난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의 친환경 밀밭에서 국산밀이 자라고 있다. 한승호 기자

박씨는 왜 친환경농사가 좋을까? 첫째, 땅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원래 박씨의 농지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던 땅이었다. 땅은 척박했다. 그러나 27년간 친환경농사를 지은 결과 땅이 비옥해졌다. 박씨는 “농사 과정에서 밭 갈 때나 봄에 퇴비 주고자 땅을 엎을 때 흙이 매년 점점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다. 친환경농사를 지으면 확실히 토양이 좋아진다”고 밝혔다.

친환경농사로 토양이 건강해지면 대기로 빠져나가는 탄소를 토양이 더 확실하게 붙잡아 저장해 놓을 수 있게 된다. 농촌진흥청(청장 박병홍, 농진청)이 전국 6개 지역의 유기논과 일반벼 재배논의 탄소저장량을 비교·분석한 뒤 2020년 발표한 <유기논 토양의 토양탄소 저장효과 평가> 자료에 따르면, 유기 벼 재배논의 탄소저장량은 일반 벼 재배논에 비해 약 6.7MgC ha-¹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단위면적당 토양 탄소저장량을 화폐적 가치로 산출한 결과 유기논 토양은 1ha당 36.1MgC의 탄소를 저장해 75만8,100원, 일반논 토양은 1ha당 29.4MgC의 탄소를 저장해 61만7,400원의 화폐적 가치가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

농진청은 그에 앞선 2012년엔 무경운 유기재배 고추와 일반고추의 농사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비교한 바 있다. 조사 결과, 무경운 유기재배 고추는 일반고추 대비 약 58%의 온실가스 저감효과(일반고추 10에이커 당 온실가스 발생량 589.6kgCO₂, 무경운 유기재배 고추 244.9kgCO₂)를 보였다.

돌아오는 동물들

지난해 8월 서울 도봉구 무수골의 생태논에서 만난 거미. 거미는 논의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는 대표적 생물 중 하나이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의 생태논에서 만난 거미. 거미는 논의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는 대표적 생물 중 하나이다.

박순웅 씨가 친환경농사를 짓는 두 번째 이유. 바로 동물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원래 박씨가 농사짓던 지역엔 오랫동안 제비가 나타나지 않다가, 친환경농사를 시작하고서 몇 해 뒤에 제비가 돌아왔다는 게 박씨의 증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생물도 마찬가지지만 농약과 제초제는 제비의 천적이자 제비가 먹는 각종 벌레들의 천적이다. 농약과 제초제를 안 치니 익충(益蟲), 해충 안 가리고 다양한 곤충이 밭에 나타났다. 토양환경과 주변 생태환경이 좋아지고, 그에 따라 여러 동물들이 돌아와 ‘먹거리’도 다양해지니 제비도 돌아온 셈이다.”

마찬가지로 충남 예산군에선 친환경농업으로 황새가 돌아왔고,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경남 창원시에선 친환경농업으로 두루미가 돌아왔다.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는 과거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는데, 점차 도시화 및 논에서의 농약·제초제 사용 증가로 찾아오는 철새들이 줄어들었다. 이에 주남저수지 농민들 중 일부는 자연농법, 즉 비료·농약 사용 등 인위적 방법 대신 최대한 자연의 본래 활동에 맡겨 벼를 재배하는 농사방식을 택했다. 자연농법 과정에선 땅을 갈지 않고 풀과 벌레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동물들의 귀환은 농민에게도 좋다. 2013년 충남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농업의 지속성 제고를 위한 생물종다양성 증진 방안>에 따르면, 논생물다양성은 작물 성장에 필요한 논의 환경을 개선해 작물 생장을 도우며, 천적을 통해 병해충 피해를 줄여 작물을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당시 충남연구원은 논생물다양성이 어떻게 논을 윤택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과정을 설명했다. ①(친환경) 논 속에 실지렁이가 늘어나 (이들을 먹고자) 올챙이나 잠자리 유충 등이 자란다. ②올챙이와 잠자리 유충이 개구리와 잠자리가 되면 이들은 해충을 먹어 벼를 지켜준다. ③개구리·잠자리는 백로·제비 등의 먹이가 되고 더욱 많은 생물을 살려준다. ④백로·제비 등 새의 배설물은 겨울 동안 논의 흙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이곳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는 미생물들도 분해되면서 퇴비화된다.

강해지는 먹거리

지난해 12월 2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염현수 고양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한두 달 사이에 정식한 친환경 엽채류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염현수 고양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한두 달 사이에 정식한 친환경 엽채류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박씨가 친환경농사를 짓는 세 번째 이유는 먹거리의 ‘질’ 때문이다. 박씨는 본인이 재배한 작물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친환경으로 재배한 배추는 일반 배추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다. 그 대신 단단하고 쉬이 물러지지 않는다. 옥수수나 감자 또한 크기는 일반농산물보다 작으나 맛이 진하고 더 단단하다. 아무래도 토양 상태가 더 좋다 보니 작물의 맛과 건강성에도 영향을 주는 걸로 보인다.”

물론 먹거리의 ‘맛’은 주관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친환경농산물이 일반농산물 대비 영양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연구결과는 적지 않다. 일례로 2010년 의학 관련 학술지 <대체의학 리뷰(Alternative Medicine Review)>에선 유기농 먹거리의 영양성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여러 연구에 대한 검토 결과, 유기농 품종은 동일한 식품의 비(非)유기농 품종보다 훨씬 많은 수준의 비타민C, 철분, 마그네슘과 인을 제공한다. (중략) 유기농 식품은 일반적으로 항산화 파이토케미컬(안토시아닌, 플라보노이드, 카로티노이드)을 더 많이 제공한다.”

파이토케미컬이란 식물이 외부환경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배출하는 유기화합물인데,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저널이 2019년 2월 발표한 데 따르면, 파이토케미컬 성분이 들어간 먹거리를 섭취 시 체내에서 세포가 더 활성화되면서 면역력도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늘어나는 친구들

지난해 5월 8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천주교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도시민들이 모종 등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5월 8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천주교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도시민들이 모종 등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상과 같은 이유로 박순웅 씨는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홍천에서 만났던 고(故) 엄만봉 농민(박씨는 그의 이름을 꼭 기사에 넣어주길 바랐다)으로부터,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던 ‘정농회’ 원로 농민회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친환경농사의 길로 접어들었던 박씨는, 이제 본인부터가 목회자이자 농민으로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박씨는 말한다. “겉으로는 눈에 잘 안 띄는 듯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전국 곳곳에서 친환경농업을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더라. 친환경농업의 가치에 공감하는 도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종종 서울로 가서 학교텃밭 교육, 생협 조합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공유한다. 이젠 지자체, 정부 차원에서도 더 책임감 있게 친환경농업을 챙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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