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의제에 갇혀 놓친 대안농업 의제는?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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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지상과제로 떠오른 ‘탄소중립’. 이 의제에 농정당국도 지나치게 매몰돼, 정작 대안농업 실현을 위해 놓치면 안 되는 의제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지난 24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주최로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유기농업 기술혁신과 가치 확산을 위한 현장토론회’는 사실상 ‘놓치고 있는 의제’를 재점검하는 자리였다. 이날 이야기된 ‘놓치고 있는 의제’는 무엇이었을까?

유기농업 주체는 지역에 사는 농민

지난해 6월 5일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 인근 생태논에서 창원시, 생태관광협의체 주남나누기 주최로 열린 ‘토종벼 꽃이 피었습니다’ 행사 중 창원시민들이 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5일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 인근 생태논에서 창원시, 생태관광협의체 주남나누기 주최로 열린 ‘토종벼 꽃이 피었습니다’ 행사 중 창원시민들이 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첫째, ‘유기농업의 주체는 지역에 사는 농민’이라는 간명한 진실이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향후 대안 농식품운동으로서 유기농업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산업적 농업 혹은 녹색혁명형 농업의 대안으로서 유기농업운동은 지역별 환경요인에 바탕을 두고 자연순환농법과 저투입 농법을 확산시키며, 사회경제적·정책적 구성요소들이 서로 유기적 관련을 맺는 체계로의 전환을 꾀하는 운동”이라며 “이 과정에서 유기농가의 조직화, 생산자-소비자의 연대강화, 농가가 속한 공동체사회의 조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에서 내건 전략이 ‘유기농 3.0’이다. 유기농 3.0은 △더 많은 농민의 유기농 실천 유도 △지역단위에서의 최선의 실천을 위한 꾸준한 개선 △제3자 보증·인증을 넘어서는 유기농 실천 확대를 위한 투명성 보장 등의 내용이 핵심이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윤 교수는 “현재 지역사회가 가진 다양한 사회적 자본을 활용해 지역 농식품체계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에 어떻게 결합할지가 중요하다”며 “현재 농촌이 처한 인적·물적·생태적·사회적 측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활동을 로컬푸드(지역먹거리) 운동과 결합해 진행할 필요가 있다. 향후 보다 많은 주체들의 지역 내 활동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탄소감축’ 넘어 ‘탄소저장’ 농정 절실

지난 24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주최로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유기농업 기술혁신과 가치 확산을 위한 현장토론회’. 이날 토론회에서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24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주최로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유기농업 기술혁신과 가치 확산을 위한 현장토론회’. 이날 토론회에서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둘째, 농업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감축’보다 중요한 게 ‘농지로의 탄소저장’이라는 사실이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은 2020년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전략’,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에서 공통적으로 “탄소 흡수 수단으로서 농업과 농경지의 역할을 강화하는 전략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말하자면 벼농사·축산업 등의 ‘탄소배출 저감’ 부분에 치중하느라 ‘탄소의 농지 토양으로의 흡수·저장’ 대책은 소홀하다는 것이다.

특히 벼농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식량주권 실현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농업인데, ‘벼농사 과정의 메탄 발생’ 내용에만 치중해 ‘논농사도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식의 논리도 일각에서 나타난 바 있다. 국내외에서 많이 참고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이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대다수가 쌀이 주식이 아닌 서양인들)에서부터 ‘벼농사 과정의 메탄 발생’ 내용을 담았기에 여기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이상과 같은 논리 때문에 “논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괜한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분위기까지 조성됐다”는 게 유 소장의 입장이다. 유 소장은 “독일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모든 산업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극적으로 줄이는 걸 목표로 하나, 농업분야에선 온실가스를 거의 감축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농업은 온실가스 배출 여부만으로 따질 수 없는, 예컨대 식량주권과 같은 가치가 담겨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 소장은 향후 농업분야의 탄소중립 추진 과제로서 △농경지 토양의 탄소 흡수·저장기능 촉진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 강화 △‘전 과정평가’에 따른 종합적 대응 △농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 등을 강조했다. 전 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는 탄소중립 문제와 관련해 농업분야만 따로 볼 것이 아니라, 농업과 연계된 자재·가공·유통·식생활·폐기 등의 분야와 통합된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농지 탄소저장과 관련해선 최근 프랑스·독일·스페인 등 여러 나라와 민간단체가 동참 중인 ‘4 PER 1,000 이니셔티브’가 눈길을 끈다. 농생태학·혼농임업 실천 및 토지 황폐화 방지를 통해 매년 0.4%씩 세계 농지의 탄소저장량을 늘리자는 게 이 이니셔티브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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