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전쟁의 용사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던 길에 풍랑으로 조난을 당했다. 다행히 어느 섬에 다다랐는데 이 섬은 여신 칼립소의 섬이다. 여신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자신과 함께 낙원 같은 섬에서 신들처럼 죽지 않고, 편안히, 행복을 만끽하며, 사랑하며 살자고 속삭인다. 그렇다. 인간의 한정된 삶은 병마의 고통과 빼앗김의 공포와 전쟁의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칼립소와 함께 한다면 아늑하고 행복한 삶이 영원해질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오랜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칼립소와 함께하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라 판단했다. 인간으로서 고통과 공포가 견디기 어려운 형국의 길임을 잘 알지만, 신들과 같은 평온한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얻
“더 악화되신 겨?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연세두 있구, 즤덜두 자신이 읎넌 병이니께 퇴원할려면 하라는 투더라구요. 근데 집에 오셔두 누가 간병을 할 사람이 있어야쥬. 엄니두 자칫하다간 아부지보다 먼저 가게 생겼는디.” 병균의 아버지 장길태 씨는 두 달이 넘게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미 여든이 다 되었고 평생 술을 좋아해서 일흔 전에 이미 간경화 진단을 받은 깐으로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병균의 어머니 또한 얼마 전에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게 동티가 되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끼, 승희 애비넌 그기 무슨 소리여? 그깟 눈길에 넘어진 게 뭔 대수라구 그런 험한 소릴 다 혀? 암만 속이 상해두 그렇지.” 준석 몫의
괴산은 고추의 고장이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괴산에 귀농한 농부를 통해 해마다 고추를 구입하였다. 첫 구입 때 한 번 방문하여 인연을 맺고는 늘 추석 전에 연락을 하여 첫물고추나 두물고추를 위주로 사서 잘 닦고 조금 더 말려 필요할 때 써왔다. 김장할 것은 김치용으로 조금 덜 빻고 고추장을 담을 것은 아주 곱게 빻아 따로 잘 싸서 냉동보관을 해 두고 평소에 음식을 할 때 넣어 먹을 것은 또 별도로 보관을 하는 일을 추석 전에 모두 끝내두었었다. 지리산 인근으로 내려온 이후로 나는 마을의 농부에게서 고추를 구입하고 있으며 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고추구입도 대행하고 있다. 물론 이 마을 대부분의 농부들은 친환경농법으로 고추를 생산하기 때문에 고추가격의 등락에 별 생각 없이 생산
樂飢臺.배고픔을 즐긴다는 의미다. 체념일까. 아니면 요즘으로 치자면 건강을 위해 뱃속을 비운다는 것인가. 낙기대. 이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아랫자락 벼랑이다. 마을이 7,8미터 가까운 높이의 벼랑위에 있는 것도 기이하지만 그 벼랑을 낙기대라 칭하는 것도 기이하다. 이 마을은 ‘음식디미방’을 지은 장씨 부인의 석계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음식디미방은 17세기 중엽의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을 설명한 면,병류 등 모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이만큼 음식에 대해 기록하려면 다양한 음식재료를 쓸 수 있는 경제적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장씨의 남편 석계 이시명은 당대 영남의 5대부호로 손꼽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집안의 사람이 낙기대라 명하고 배고
휴가철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계곡을 한 구비 돌 때 마다 옥수수를 쪄서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옥수수다. 땀 흘리고 일하다 지쳐서 돌아가는 길이니 입맛도 없고 밥하는 것도 귀찮은데 집에 가면 누군가 쪄놓은 옥수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현관을 들어서는데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춘천에 계시는 이모에게서 온 것인데 풀어보니 얼음팩에 둘러싸인 올챙이묵이 하나 가득하다. 양념장과 잘 익은 열무김치까지 들어있다. 입이 귀에 걸려 저녁으로 올챙이묵을 먹는다. 맛나고 맛나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엔 정말 옥수수가 잘도 컸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 옥수수 쪄먹자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께서는 늘 밭에 가서 옥수수를 따올 테니 가마솥에 물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라고 말씀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털이 든 겨울용 장화까지 신었는데도 두어 시간이 못되어 발이 시려왔다. 혼자 전정을 다 하려면 달포는 족히 걸릴 터였다. 아내는 다른 일은 다 잘하면서도 과수 전정만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하긴 여자가 전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몇 해 전만 해도 과수원을 하는 친구들이나 작목반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작지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안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크게 하는 동필네에서 품앗이 전정을 하다가 한 친구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처음에는 허리를 삐끗한 정도로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점점 악화되어 그 해 내내 일을 못하고 드러누워 지내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일로 친구 사이에 병원비니, 한 해
50여 일 간의 장마가 끝나자마자 국지성 소나기가 뒤를 따른다. 장마가 일찍 시작 됐지만 10여 일 간은 실종상태였다가 7월부터 장마전선이 활성화 돼 8월 5일 소멸 됐으므로 실제 장마는 한 달 남짓 된 것이다. 이런 날씨 현상은 도시 확대와 곳곳의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를 일으키는 현대의 고질병이 되고 있다. 즉 기상이변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나 이는 기상청의 발표가 과장된 측면도 있고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매스컴의 문제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 장마는 지루하게 긴 장마임에는 분명하다. 집안이 축축한 채 오래가니 노래기들이 풀섶으로 들어가질 않고 집안으로 기어든다. 징그럽고 냄새난다고 아내는 매일 노래기 잡는 일로 아침을 시작한다. 워낙 습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화장
소파에 누워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아직 자정 전이었다. 잠결에 영주가 칭얼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아내는 영주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준석은 한기가 느껴져 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등을 댄 바닥이 서늘했다. 연탄보일러는 불이 셀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는데, 새벽녘에 따뜻하려면 하루에 두 번은 갈아주어야 한다. 불구멍도 조금은 열어두어야 그나마 온기가 도는데, 두 번씩 갈아대는 것도 귀찮을뿐더러 연탄 값도 만만찮아서 늘 불구멍을 막고 지내다보니, 때로는 방바닥이 등 덕을 보자고 할 판이었다. 준석은 바닥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에 제일 약하게 스위치를 켜고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담배 한 대 생각이 간절했지만 창문을 열었다가는 살을 에는 바람이 들어올 터여서 눌러 참는 수
10월이면 남양주에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슬로푸드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1000가지나 되는 풍성하고 맛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리라고 한다. 음식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모여 소통하는 자리로 농부가 요리사가 되고 음식전문가가 되어보는 시간도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행사이다. 수많은 행사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맛의 방주라는 행사다. 맛의 방주는 슬로푸드의 세계적인 프로젝트로 잊혀져가는 음식의 맛을 재발견하고, 멸종위기에 놓인 종자나 품목 등을 찾고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어서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이 발표된 이후로, 현재 총 76개국의 1162개의 품목이 등재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단
서울이 무서워서인지 복잡해진 탓인지 경부고속도로 판교 지나 달래내 고개 길이 출근시간대면 차들이 설설 기다가 멈춰서버리기 일수이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한남대교 남단까지 바람처럼 달려왔다. 서울이 텅 비어 버린다는 휴가철인 것이다. 장마가 끝나는 7월 말부터 8월 초순까지 약 15일간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휴가기간이 집중된 탓으로 서울이 순간 비워지는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휴가는 서구식생활이 자릴 잡으면서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불어로 바캉스라고 하는 서구의 문화가 우리에게 일부 오지 않았나 싶다. 왜냐면 우리민족의 여름휴가는 대부분 벌거를 벗어야 하는 바다가 아니라 계곡에 발을 담그고 머리를 감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휴가철이면 부산해운대에 5~60만인파가 몰렸다하고 경
타이타닉호는 1912년에 건조된 세계 최고의 호화 유람선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 있다. 영화는 극한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생명의 고귀함과 그 한계들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타이타닉의 비극은 초호화여객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자본의 마성이 비극의 근원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마늘 값이 떨어졌다고 걱정들이 크다. 주산단지는 그것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작년의 반값인 kg에 2000원이라니 시장에 팔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마늘농가들로서는 한 많은 마늘이다. 중국산 마늘 파동으로 정책 혼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연습 했건만 학습효과도 없고 준비도 없다. 정부는 늘 그렇다. kg에 2300원으로 수매가를 결정할 때부터 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부터 준석은 자신이 총기를 많이 잃었다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녹슨 톱이나 삽을 발견하기도 했다. 연장을 잃어버렸다고 내동 찾던 것이 아무렇게나 밭에다 놓아 둔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연장을 쓰고 나면 꼭 물로 씻어서 가지런히 걸어두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꼼꼼함도 사라지고 말았다. “당신 나이가 올해 몇이지?”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이제 늙어간다는 느낌에 마음이 쓸쓸해져서 나온 말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돌아보던 정숙이 이내 알만하다는 얼굴이 된다. 여태껏 살아온 깜냥으로 남편이 가끔 감상적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런 감상을 밀어내는 법도 안다. “저녁을 건너뛰더니 무슨 새
자기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이 농부의 큰 즐거움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산청 끝자락에서 ‘닭아빠’로 불리기를 자청하는 한 농부는 닭을 키우는 재미 세 가지도 그에 못지않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다. 그 첫째는 자식의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처럼 풀을 뜯고 있는 닭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고, 두 번째는 매일매일 낳아놓은 알들을 줍는 재미이며, 그 알들이 통장 잔고를 계속 불어나게 하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 즐거움이라 하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여 오늘은 함양에 사는 지인에게서 병아리를 열 마리 얻어왔다. 식구들이 먹을 알도 매일 얻고, 때가 되면 씨암탉 잡아 가족들 몸보신도 하려는 야무진 꿈은 가지고 데려 왔지만, 닭장도 없
타이타닉호는 1912년에 건조된 세계최고의 호화유람선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 있다. 영화는 극한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생명의 고귀함과 그 한계들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타이타닉의 비극은 초호화여객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자본의 마성이 비극의 근원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마늘 값이 떨어졌다고 걱정들이 크다. 주산단지는 그것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작년의 반값인 kg에 2000원이라니 시장에 팔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마늘농가들로서는 한 많은 마늘이다. 중국산 마늘 파동으로 장책 혼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연습 했건만 학습효과도 없고 준비도 없다. 정부는 늘 그렇다. kg에 2300원으로 수매가를 결정할 때부터 알아봤다. 40
‘괴물쥐’라고 불리는 뉴트리아가 낙동강 수계를 점령했다며 TV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몸길이가 최대 60cm나 되고 몸무게가 10kg이나 되는 데다, 오렌지색의 길쭉한 송곳니가 살벌해 보이니 TV의 호들갑과 잘 맞아 떨어진다. 뉴트리아의 잡식성은 생태계를 혼란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상위 포식자가 없으니 개체수는 날로 늘어나고 이미 한강수계로 넘어왔다는 보고도 있다. 그야말로 지자체들이 뉴트리아 포획작전에 돌입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트리아는 우리 땅에 왜 들여왔을까. 모피나 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뉴트리아 고기는 오리고기와 같이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웰빙시대를 끌어갈 육류로 보았다. 아무거나 잘 먹고 병도 적으며 번식이 왕성해 사육하기에 맞춤이다. 꿩이나 다른 가금류
서병(더위 먹는 병)으로 고생하던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폭군 연산군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방탕과 사치, 패륜 등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분노 외에도 연산군을 몹시 괴롭힌 것은 하초가 부실하여 생긴 소변불리(小便不利)와 소갈증이었다고 전해진다. 연산군 8년 12월의 에는 연산군이 북경으로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박을 구하여 오게 하라는 명을 승정원에 내렸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수박을 갈아 만든 즙과 껍질에 소변을 잘 보게 하는 이뇨작용이 있으며 소갈증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으므로 평소에 수박을 즐겨먹던 연산군이 겨울이 되어 수박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던 것
마을 점심에 별로 즐기지 않는 고기를 낫게 먹어서인지 준석은 저녁 생각이 없었다. 어쩐지 오늘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고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한 일도 없이 피곤한 걸로 보아서는 마을에 찾아온 손님맞이며 이장 선출 따위에 저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준석은 은실이네로 몰려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차를 몰았다. 낮에 잔뜩 꾸물거리며 눈발을 날리던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어서 별이 총총 돋아나 있었다. “영주는 벌써 자?”“저녁은 먹고 왔쥬?” 초저녁부터 드라마에 정신을 놓고 있던 정숙이 묻는 말을 잘못 들었는지 건성으로 되물었다. “어디서 저녁을 먹어? 집 놔두고.”“난 먹구 오는 줄 알구 영주하고 있는 반찬에 비벼먹구 말었는데. 라면이나 한 봉 삶을까?”
하지가 지났고 감자들이 하지감자라 불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도 지나갔으며 수박과 참외 같은 과일이나 채소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이 무렵부터는 장맛비가 자주 내리므로 잘못하면 습기가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7월(음력 6월)을 썩은 달 혹은 액월(厄月)이라고 부르니 매사에 조심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만물이 썩는 계절, 이때부터 시작되는 감자 썩는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고약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는 이즈음 때맞춰 수확된 감자 중 크고 잘 생긴 것들은 골라져 저장되거나 팔리고 상처 나고 못생긴 감자들은 말 그대로 썩히기에 들어가게 된다. 요즘이야 기능 좋은 기계들이 많으므로 감자전분 만들기가 아주 수월하다.
은실이네는 이 년쯤 전에 새로 면내에 생긴 식당이다. 면내의 식당 주인들은 대개 면소재지인 대정리 토박이거나 산동면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자들이었는데, 은실이네만은 생판 타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재작년 겨울에 대대로 약방을 하던 황씨네가 백년도 넘은 기와집을 헐고 새로 삼층 건물을 지었는데, 일층에 약방 말고도 두 개의 가게를 더 들였고 그 중 하나에 세를 들어온 게 바로 은실이네였다. 순실은 음식을 담당하고 네 명이 앉는 상 여덟 개가 놓인 온돌방 홀은 은실이 몫이었다. 묵밥과 묵무침, 전 따위에 닭볶음탕과 두루치기 등속이 메뉴였다. 외지인이 들어와 식당을 연 것도 작은 화젯거리였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삼십대의 젊은 두 자매가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가 지났고 감자들이 하지감자라 불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어제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도 지나갔으며 수박과 참외 같은 과일이나 채소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이 무렵부터는 장맛비가 자주 내리므로 잘못하면 습기가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7월(음력 6월)을 썩은 달 혹은 액월(厄月)이라고 부르니 매사에 조심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만물이 썩는 계절, 이때부터 시작되는 감자 썩는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고약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는 이즈음 때맞춰 수확된 감자 중 크고 잘 생긴 것들은 골라져 저장되거나 팔리고 상처 나고 못생긴 감자들은 말 그대로 썩히기에 들어가게 된다. 요즘이야 기능 좋은 기계들이 많으므로 감자전분 만들기가 아주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