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감자도 맛을 내는 강원도 사람들

  • 입력 2013.07.07 22:49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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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가 지났고 감자들이 하지감자라 불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도 지나갔으며 수박과 참외 같은 과일이나 채소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이 무렵부터는 장맛비가 자주 내리므로 잘못하면 습기가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7월(음력 6월)을 썩은 달 혹은 액월(厄月)이라고 부르니 매사에 조심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만물이 썩는 계절, 이때부터 시작되는 감자 썩는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고약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는 이즈음 때맞춰 수확된 감자 중 크고 잘 생긴 것들은 골라져 저장되거나 팔리고 상처 나고 못생긴 감자들은 말 그대로 썩히기에 들어가게 된다. 요즘이야 기능 좋은 기계들이 많으므로 감자전분 만들기가 아주 수월하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뭔가를 갈 때 이용하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강판 정도였으므로 감자전분을 얻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상품성 떨어지는 감자를 썩혀서 전분을 얻는 방법은 정말 감탄할만한 일이 나일 수 없다.

강원도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게 썩은 감자를 물갈이를 해가면서 얻은 전분은 항아리 속에 담겨져 몇 년을 두고 여러 가지 요리에 응용된다. 이미 한 번 온전히 썩은 감자전분은 또 다시 썩지 않으므로 좋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전분과는 다르게 고무줄과 비길 만큼 쫄깃하여 좋은데 그 백미가 바로 감자송편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고속도로의 휴게소 등에서 팔고 있는 감자송편과는 그 맛과 질이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송편을 먹으며 자란 나는 우리 집 마당에 감자를 썩힐 항아리를 하나 두고 싶다. 썩히는 감자 이야기만 늘어놓았지만 감자는 역시 별다른 조리 방법 없이 그냥 쪄서 먹는 것이 최고다.

껍질을 까지 않고 깨끗이 씻기만 한 감자를 소금 조금 넣고 찌면, 껍질이 툭툭 터진 틈 사이로 뽀얀 분이 밀고 나와 입에 넣기도 전에 벌써 침이 꼴깍하고 넘어간다. 역시 제철인 오이소박이와 함께 먹으면 배불리 많이 먹을 수 있어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막 수확한 감자를 쪄먹다 지칠 때쯤이면 매운 고추 몇 개를 썰어 넣고 감자전을 부쳐 먹으면 새롭다. 보리가 수확되면 감자밥을 해서 호박잎에 싸먹으면 그것도 별미다. 생선을 조릴 때 넣는 무나 시래기는 주인공인 생선보다 더 달콤하고 맛난데 나는 가끔 무 대신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조리는데 생선조림 속 감자는 정말이지 생선보다 더 구수하고 달고 맛나다.

소고기와 함께 조리해 먹는 감자는 몸을 보하는 효능이 한결 좋아진다. 성장기의 어린이, 기력이 쇠한 노인, 병후에 허약해진 사람이 해먹으면 몸의 기력을 회복시키고 허약해진 몸을 살리는데도 도움을 주므로 활용하면 좋다.

또한 토마토와 함께 요리해 먹으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우리 몸의 진액을 보충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위, 십이지장의 동통에도 생감자의 즙을 짜서 마시면 통증을 이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싹이 난 감자는 솔라닌 중독이 될 수 있으니 피하고 비위가 허해서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도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으니 조심해야 한다. 감자가 맛있는 때다. 요즘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감자송편을 먹을 수 있다면 만사 다 팽개치고 강원도로 훌쩍 떠나고 싶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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