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기대(樂飢臺)

  • 입력 2013.08.16 13:22
  • 기자명 한도숙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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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飢臺.
배고픔을 즐긴다는 의미다. 체념일까. 아니면 요즘으로 치자면 건강을 위해 뱃속을 비운다는 것인가. 낙기대. 이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아랫자락 벼랑이다. 마을이 7,8미터 가까운 높이의 벼랑위에 있는 것도 기이하지만 그 벼랑을 낙기대라 칭하는 것도 기이하다.

이 마을은 ‘음식디미방’을 지은 장씨 부인의 석계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음식디미방은 17세기 중엽의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을 설명한 면,병류 등 모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이만큼 음식에 대해 기록하려면 다양한 음식재료를 쓸 수 있는 경제적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장씨의 남편 석계 이시명은 당대 영남의 5대부호로 손꼽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집안의 사람이 낙기대라 명하고  배고픔을 오히려 즐긴다는 생활철학을 얻었으니 웬일일까.

거기엔 당파싸움이 연루되어있다. 두들마을은 재령이씨 집성촌이다. 17세기말 영남학파(남인)의 수장 갈암 이현일이 장씨의 큰아들이다. 갈암은 기호학파수장이며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송시열에게 폐비민씨 복위문제로 정면도전해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이른바 갑술환국이다. 그 후 재령이씨는 관직에 나가지 못한다. 노론의 노골적 제척에 의해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정부인 장씨는 며느리와 함께 주변의 참나무에서 얻은 도토리로 죽을 쑤어 낙기대에서 이웃에 나누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관리들에게는 녹봉과 별도로 공신전·수신전·휼양전 등을 통해 정해진 토지를 나눠주었다. 이는 사회경제적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왔다. 벼슬길이 막힌 재령이씨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만의 생활철학과 선비정신으로 낙기대를 만들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며 그것을 즐길 줄 알았던 것이다.

현대의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부추켜 경쟁함으로써 최대의 경제효과를 끌어올린다는 아담스미스의 이론이 기본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의 이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변화 발전한다. 그러나 인간욕망은 한계가 없는듯하여 지구상의 자원이란 자원은 모두 고갈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들까지 효율과 경쟁의 논리에 말려들어 인류를 파멸지경에 이르도록 만들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농업도 마찬가지다. 느긋하게 도토리죽을 음미하는 것은 패배다. 살아남으려면 욕망의 최대치를 이끌어 내고 코피 터지는 경쟁에서 이겨야한다.  욕망을 부풀려 올리고 이런저런 투자를 통한 생산은, 농산물값 하락으로 농가부채로 이어 지고 결국 파산하거나 목숨을 버리거나 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우리농사는 지난 30년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농업이라는 산업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이제 파탄 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농사로 돌아가야 한다. 도토리죽을 음미하며 농사의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욕망을 내려놓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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