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날아온 올챙이묵국수를 먹다

  • 입력 2013.08.12 08:57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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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계곡을 한 구비 돌 때 마다 옥수수를 쪄서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옥수수다. 땀 흘리고 일하다 지쳐서 돌아가는 길이니 입맛도 없고 밥하는 것도 귀찮은데 집에 가면 누군가 쪄놓은 옥수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현관을 들어서는데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춘천에 계시는 이모에게서 온 것인데 풀어보니 얼음팩에 둘러싸인 올챙이묵이 하나 가득하다. 양념장과 잘 익은 열무김치까지 들어있다. 입이 귀에 걸려 저녁으로 올챙이묵을 먹는다. 맛나고 맛나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엔 정말 옥수수가 잘도 컸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 옥수수 쪄먹자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께서는 늘 밭에 가서 옥수수를 따올 테니 가마솥에 물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금방 쪄서 막 꺼낸 옥수수는 너무 뜨거워서 손으로 만지기 어려워서 호호거리면 할머니는 싸리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꽂아주시며 들고 먹으라고 하셨다. 달고 구수하고 찰지고 또 달디 달다.

몇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쳐 판매되는 옥수수를 사다 먹는 사람들은 밭에서 따자마자 솥에 넣고 쪄먹는 옥수수의 참맛을 모른다. 옥수수는 따서 바로 찌지 않으면 옥수수 속 탄수화물이 다당류로 변하면서 단맛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단맛을 잃게 되기 전에 바로 쪄서 먹어야 맛있는 옥수수를 먹을 수 있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바로 쪄서 먹는 옥수수의 맛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추측컨대 아마도 길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이유도 그나마 좀 더 노화되기 전의 옥수수맛을 보여주기 위한 상술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여름을 나면서 쪄먹는 옥수수가 지루하다 싶으면 어머니는 팥과 함께 옥수수를 넣고 푹 삶아 주셨다. 찰옥수수의 찐득하고 쫄깃함에 팥의 구수함이 더해져 숟가락으로 퍼먹는 그 맛이 일품이라 지금도 가끔 생각나서 해먹게 되는 음식이다. 쌀이 부족했던 우리 집에서는 말린 옥수수의 껍질을 까서는 맷돌에 갈아서 옥수수쌀을 만들어 부족한 쌀 대신 밥을 해서 먹기도 했었다.

옥수수로 만들어 먹는 음식 중에 백미는 올챙이묵이다. 옥수수가루로 묵을 쑤어 구멍 뚫린 바가지에 부어 찬물에 내리면 글루텐이 없는 옥수수묵은 뚝뚝 끊겨 올챙이 모양의 짧은 국수 가락이 물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것을 건져 그릇에 담아 칼칼하게 만든 양념간장을 얹고 열무김치와 함께 먹으면 입맛 떨어진 여름에 그만한 것이 없다.

한방에서는 옥수수를 옥촉서라고 부른다. 맛이 달고 성질이 화평하므로 식량이 부족한 나라의 사람들이나 쌀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주식으로 먹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작물이기도 하다. 식욕이 없을 때나 소변이 잘 나가지 않을 때, 몸이 부울 때, 만성신장염, 고지혈증,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수수에 함유된 마그네슘은 장벽 운동을 증가시키고 담즙분비물을 증가시켜서 장내 노폐물의 배출을 촉진·이완하므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항고지혈증, 항고혈압 등과 같은 효능들이 식품과학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옥수수를 볶아서 상시 음용하기 시작한 우리의 선조들은 정말 슬기로운 영혼을 가진 민족이었던 것 같다. 슬기로운 조상의 후손인 나는 이모가 보내준 올챙이묵국수를 먹으며 여름 더위를 잠시 잊는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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