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랑각시

  • 입력 2013.08.09 16:12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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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여 일 간의 장마가 끝나자마자 국지성 소나기가 뒤를 따른다. 장마가 일찍 시작 됐지만 10여 일 간은 실종상태였다가 7월부터 장마전선이 활성화 돼 8월 5일 소멸 됐으므로 실제 장마는 한 달 남짓 된 것이다. 이런 날씨 현상은 도시 확대와 곳곳의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를 일으키는 현대의 고질병이 되고 있다.

즉 기상이변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나 이는 기상청의 발표가 과장된 측면도 있고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매스컴의 문제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 장마는 지루하게 긴 장마임에는 분명하다.

집안이 축축한 채 오래가니 노래기들이 풀섶으로 들어가질 않고 집안으로 기어든다. 징그럽고 냄새난다고 아내는 매일 노래기 잡는 일로 아침을 시작한다. 워낙 습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는데 어찌알고 들어가는지 신통할 정도다. 아직 사람을 물거나 전염병을 옮기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보기에 흉측하고 냄새가 역한 것 때문에 수도 없이 죽임을 당한다.

향랑각시는 바로 노래기의 다른 이름이다. 양반네들이 노래기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인데 지방사투리로 굳어진 것이다. 예로 다산의 구우(久雨)라는 시에 “敗屋香娘墜 (패옥향낭추)” 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여기에 향랑(香娘)이 노래기를 말하는 것이다.

오랜 비로 노래기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당시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민간전설에는 향랑각시가 대들보 뒤에 숨어산다고 하는데, 머리는 여자이고 몸은 지네로 표현된 요물이다. 향랑각시는 독가스를 뿜고 불을 뿜기도 하는데 노래기처럼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집을 지키는 수호신도 아닌데 사람하고 동거를 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노래기는 풀섶에서 장마시기인 7~8월에 교미하고 산란하는데 이는 식물의 유체를 분해하는 상위분해자로 생태고리를 이루고 있다. 요즘은 지자체들의 방역팀이 노래기로 인해 민원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닭을 놓아기르며 자연스럽게 개체수를 조정했다. 닭이 지네나 노래기를 잡아먹기에 생태사슬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또 정신적으로 향낭각시를 만들고 마음의 위로를 가지며 살아있는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고 동거한다는 정신적 공간을 열어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공존의 사유와 상생의 공간이 협소해졌다.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고추값이 폭락하고 있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자급률 40%도 지키지 못하도록 값싼 고추를 들여와 국내 농가를 쓰러뜨린다. 돈이 되는 것이면 공존이고 상생이고 없다. 같이 산다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이다.

약탈식을 버리긴 했으나 여전히 수탈식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바뀌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다. 향랑각시를 대들보 뒤에 숨겨둔 조상들의 지혜를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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