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22회

  • 입력 2013.08.12 08:5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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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털이 든 겨울용 장화까지 신었는데도 두어 시간이 못되어 발이 시려왔다. 혼자 전정을 다 하려면 달포는 족히 걸릴 터였다. 아내는 다른 일은 다 잘하면서도 과수 전정만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하긴 여자가 전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몇 해 전만 해도 과수원을 하는 친구들이나 작목반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작지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안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크게 하는 동필네에서 품앗이 전정을 하다가 한 친구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처음에는 허리를 삐끗한 정도로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점점 악화되어 그 해 내내 일을 못하고 드러누워 지내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일로 친구 사이에 병원비니, 한 해 동안 일을 하지 못해 들어간 품삯이니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고 끝내 고발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험상궂은 꼴까지 갔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품앗이로 전정을 하는 일이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워낙 과수원이 큰 사람은 품을 사서 하기도 했지만 전정도 기술이라고 일당을 이십만 원은 주어야 했다. 가을에 사과를 팔아서 들어온 돈은 초풍에 애 날리듯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다 사라졌고 고정으로 더해가는 빚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쓰는 판에 비싼 품을 살 엄두를 낼 수는 없었다. 하여 준석은 얼마가 걸리든 혼자 전정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터여서 전보다 일찍 시작을 한 것이었다. 어느새 점심참이 되어 집으로 내려가려 하는데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렸다. 사나흘이 지나도록 한 번도 울지 않는 때가 많은 휴대전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경태였다. 여간해서 전화를 거는 일이 없었는데 의외였다.

“형님, 아직 과수원에 계세요? 집으로 전화했더니 전지하러 가셨다고 하던데요.”

“그려. 인제 즘심 먹으러 내려갈려고 하는데, 웬일이여?”

“잘 되었네요.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점심 드시지요?”

“뭔 날인가? 갑자기 즘심을 내고.”

“그건 아니고요. 아침나절에 병균이하고 미꾸리를 한 사발이나 족히 잡았어요. 추어탕을 끓였는데 형님 생각이 나서요. 미꾸리는 요새 잡는 게 진짜잖아요.”

“아니, 이 겨울에 어디 가서 미꾸라지를 잡었다는겨?”

“병균이네 논에서 잡었다니까요. 저두 깜짝 놀랬어요. 요즘 논에 미꾸라지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말입죠.” 가겠노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나서도 준석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겨울이면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던게 벌써 언제 적 일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어릴 때부터 개울가에 붙은 병균네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삽으로 논흙을 퍼내면 손가락만한 미꾸라지들이 구물거리며 나오곤 했다. 개울에 살던 미꾸라지가 겨울이 되면 물꼬를 타고 올라와 가까운 논을 파고 월동을 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풍경이었다.

“어여 오셔. 찬두 없이 매운탕 하난데, 이장님을 불러서 어쩐댜?” 경태 어머니 찬샘댁이 마른 삭정이 같은 손을 비비며 준석을 맞았다. “어느 집이나 다 그렇쥬. 그런데 웬 미꾸리를 다 잡어왔대유?” 준석이 물으며 들어서자 경태와 병균이 방문을 열고 나와 제각기 인사를 했다. 벌써 술을 한 잔씩들 했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병균이 너는 직장에 있을 시간 아녀?” “오늘 일요일이잖유. 형님은 날짜 가는 것두 안 보구 사는 개벼.” “아, 그런가? 아버님은 여전하시지? 병원에 자주 가본다면서도 영 그렇게 안 되네.” 병균은 어엿한 공무원이다. 젊은 나이에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환경미화원이 되더니 이미 여러 해 전에 정규직 공무원이 되어 이제는 내남없이 부러워하는 직장인이었다. “지난 달에두 왔다 가셨잖유. 올 적마다 뭘 사오시구. 아부지는 자꾸 퇴원을 해달라구 그러시네유. 집에서 돌아가시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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