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23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8.16 13:2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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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악화되신 겨?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연세두 있구, 즤덜두 자신이 읎넌 병이니께 퇴원할려면 하라는 투더라구요. 근데 집에 오셔두 누가 간병을 할 사람이 있어야쥬. 엄니두 자칫하다간 아부지보다 먼저 가게 생겼는디.”

  병균의 아버지 장길태 씨는 두 달이 넘게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미 여든이 다 되었고 평생 술을 좋아해서 일흔 전에 이미 간경화 진단을 받은 깐으로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병균의 어머니 또한 얼마 전에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게 동티가 되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끼, 승희 애비넌 그기 무슨 소리여? 그깟 눈길에 넘어진 게 뭔 대수라구 그런 험한 소릴 다 혀? 암만 속이 상해두 그렇지.”
  준석 몫의 밥을 퍼서 들여오던 찬샘댁이 정색을 하고 병균을 나무랐다. 

  “저두 첨에는 그리 생각혔는데, 요새 자꾸 이상허셔서 그려유. 가슴이 답답하다구 쥐어뜯기두 허고, 자면서 숨을 쉴 때 목에서 갸랑갸랑허는 소리두 나구, 아침마다 가래를 한 사발 턱은 되게 뱉어낸다니께유. 밥두 영 못 자시구.”
  “그럼 얼른 병원엘 모시구 가얄 것 아녀?”
  “암만 가자구 해두 병원엔 안 가겠다구 저리 뻗대시네유. 아부지 땜에 병원에 가 있더니 뭐에 틀렸는지 아예 병원엔 발길을 않겠다구 허셔유.”

  준석은 병균의 처지가 참으로 각다분하게 되었다고 생각되면서도 딱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지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마흔이 가까워 정식 공무원이 될 때만 해도 형편이 펴게 되었다고 부러움을 받는 처지였지만, 그 뒤로 무슨 마가 낀 것처럼 나쁜 일이 이어졌던 것이다.

오십 줄에 들도록 건설 현장 일용직을 전전하던 하나뿐인 형이 야밤에 뺑소니차에 치어 죽는 사고가 일어나더니, 이태 전에는 제 속으로 낳은 딸자식까지 팽개치고 마누라가 집을 나가버렸다. 요즘 농촌에서 국적 같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늦은 결혼에다 여섯 살이나 어린 경상도 어디의 여자와 중매로 혼인을 한 병균의 경우는 면내가 떠들썩할 정도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반주그레하여 장가 못간 시골 노총각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족했다. 그런데 결국 그 인물이 꼴값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시골로 시집을 왔으면서도 늙은 시부모 일하는 들에 새참 한 번 내가는 일이 없고 자루에 가시가 돋았는지 재미삼아라도 호미 한 번 쥐어보는 적이 없었다. 입 있는 사람마다 모두들 뒤에서 흉을 보았는데 정작 시부모는 그런 며느리를 늘 감싸고돌았다.

그러던 것이 결국은 마을에 대놓고 다니던 택배기사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고 만 것이었다. 병균의 부모가 몸져 누운 것도 나이 탓만은 아니었다. 큰 아들 잃은 데다 둘째 아들은 오쟁이를 졌지, 아직 어린 손녀는 제 어미를 찾아대지, 멀쩡한 사람도 견디기가 어려웠을 터였다. 

  그러다보니 개울가에 딸린 오백 평짜리 병균의 논은 농사고 말고 말할 것도 없게 없었다.  본래 그런 불행이 오기 전에 병균은 그 논에서 오리 농법으로 벼농사를 시작했었다. 병균네 뿐만 아니라 면내에서 꽤 많은 농가가 오리 농법을 시작했고 그들끼리 유기농 벼 작목반인가 하는 모임도 만들었었다. 오리와 함께 우렁이를 논에 집어넣어 하기도 했고 두어 농가는 미꾸라지로 제초를 한다고도 했다.

준석도 논이 있어서 알아보기는 했지만 과수원이 주 농사인 준석으로서는 선뜻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사실 논농사는 거개가 기계로 하는지라 일하는 날수로 치면 그리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었다. 몇 해 전 부터는 아예 못자리도 하지않고 키워놓은 모판을 사다가 모를 내는 판이라 더욱 편해진 게 벼농사였다. 논에 들어가서 뿌리던 제초제도 이제는 논둑에 서서 주먹탄 몇 개를 던져주기만 하면 되었다.

 돈만 주면 기계가 와서 다 해주고 직불금 명목으로 기계 쓰는 비용 한두 번은 벌충이 되니까 예전에 비하면 거저먹기로 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다 새삼 새로운 농법이니 뭐니 해서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이들 중에 적잖은 숫자가 정부에서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고 지원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가 있다는 것도 썩 마음이 내키지 않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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