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법 개정안, ‘회장 연임’에 막혀 법사위 계류

야당 의원들, 법안 논리적·도덕적 하자 집중 지적

국민의힘·농식품부는 관철 의지 … 재논의 여지 커

  • 입력 2023.08.23 21:14
  • 수정 2023.08.25 10:2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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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조항을 담은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김도읍,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됐다.

이 개정안은 농협의 역사나 구조·특징에 비춰봤을 때 사실상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보장하기 위한 특혜 법안이라는 의혹을 수반하고 있다. 또한 법안을 만들어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소병훈, 농해수위) 의결 과정을 보면 법안 첫 등장 당시 딱 한 차례 의결 유보가 있었을 뿐, 이후엔 반대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채 위원장·간사 의원들이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하면서 너저분한 로비 의혹을 양산한 바 있다.

23일 법사위 전체회의는 지난해 말 이 법안이 국회 공식 논의석상에 오른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토론’이 이뤄진 자리였다. 야당 의원들은 법안이 노출하는 논리적·도덕적 하자를 집중적으로 지적했고, 이 의견들이 마침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져 심사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5월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이 농해수위를 통과하자 윤미향 무소속 의원(왼쪽 네 번째)과 농민^노동단체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시 농해수위 의결 과정에서 윤미향^신정훈^윤준병 의원이 적극적으로 법안 반대 의사를 개진했으며 윤미향 의원은 이후에도 법사위 의원들에게 공정한 법안 심사를 호소해왔다.
지난 5월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이 농해수위를 통과하자 윤미향 무소속 의원(왼쪽 네 번째)과 농민·노동단체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시 농해수위 의결 과정에서 윤미향·신정훈·윤준병 의원이 적극적으로 법안 반대 의사를 개진했으며 윤미향 의원은 이후에도 법사위 의원들에게 공정한 법안 심사를 호소해왔다.

야당 의원들은 농협중앙회장 비리·횡령의 역사를 끊고자 단임제를 설정했던 선대 국회의 결정(2009년)에 주목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협중앙회장의 업무활동이 연임을 위한 활동으로 변질돼 단임제로 묶었던 거다. 이걸 다시 연임제로 푼다, 그걸 또 현직 회장에게 적용한다는 건 예민한 문제인데 면밀히 검토한 흔적이 없다”고 지적했으며,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연임제를 단임제로 돌렸던 건 농협 투명성 제고를 위한 큰 결단이었다. 다시 연임제로 간다면 예전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의문이다”라며 “만약 다음 회장이 비리를 저지르면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집중된 키워드는 ‘위인설법(특정 개인을 위해 법을 만듦)’이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반 상황을 둘러보면 현 회장 연임을 위해 모든 게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이 문제의 가장 간단한 해법이 있다. 법안은 통과시키고 현 회장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면 모든 논란과 의심은 사라지고 현 회장은 농협개혁을 끌어낸 인물로 남을 거다. 그 의견을 내가 중앙회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답은 없더라”라고 꼬집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법사위가 이렇게 쓸데없는 문제를 자아내는 조항(현직 소급적용)은 삭제하고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 조항이 농협개혁에 있어 필요불가결하다 주장하는 근거가 있나”라며 “도대체 왜 여기에 집착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여당과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대체로 법안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의 폐단을 애써 ‘무이자자금 분배권’ 문제 하나로 축소시킨 뒤 ‘동 법안에 개선책이 포함돼 있다’는 논리를 펼쳤고 여당 의원들이 이를 적극 수용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숱한 의혹으로 얼룩졌던 농해수위 의결 과정에 대해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숙의를 거쳐 올라온 법안”이라며 신뢰를 드러냈고(전주혜 의원), “(현직 소급 조항은) 국회의원들이 객관적 상황에서 판단해 발의한 것”이라며 농협중앙회의 법안로비 의혹도 일축했다(박형수 의원).

결과는 ‘법사위 전체회의 보류’지만 법안은 사장되지 않고 다시 논의될 여지가 크다. 여당·정부 측이 관철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데다, 이 법안 자체가 중앙회장 연임 이외에 몇몇 농협 개혁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무이자자금 운용 투명화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 임기제한 △도시농협 농업역할 제고 등, 비록 효과를 장담할 수 없거나 결정적 한계를 내포하지만 표면적 내용만으로도 농협개혁에 최소한의 의미를 갖는 조항들이다.

이날 법사위 회의에서 드러났듯, 향후 논의가 재개되더라도 법안 통과의 관건은 ‘회장 연임’ 또는 ‘현직 소급’ 조항의 존폐 여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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