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끄러운 농해수위

  • 입력 2023.10.08 18:00
  • 수정 2023.10.08 20:4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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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법’으로 더 유명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 본지는 이 법안의 문제점을 최초로 보도한 매체며 이후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 농해수위 전체회의, 법사위 전체회의 등 국회 내 모든 회의를 밀착 취재하고 있다.

농해수위가 이 법안을 의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아연실색했다. 법안은 명백히 비상식적이었고, 몇몇 의원들의 법안 반대 의견은 매우 논리정연했으며, 이에 대한 반론조차 개진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원안 가결. 위원장·간사와 여당 의원들은 하다못해 법안 통과를 위한 ‘억지논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없이 그냥 반대 의견을 무시해버렸다. 민주주의의 정수인 국회가, 심지어 법을 고치는 엄중한 과정에서 최소한의 형식적인 토론조차 포기해버린 것이다.

기자는 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을 면밀히 취재해본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국회 다른 상임위도 모두 농해수위 같은 줄만 알았다. 상식이나 토론이 정치력 앞에 너무나 쉽게 무릎꿇는 모습을 보며 내 나라의 허술한 입법 절차에 심대한 우려와 염증을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농해수위만의 특수한 행태였다. 농해수위를 떠나 법사위에 올라온 농협법 개정안은 마침내 정상적인 토론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현직 농협중앙회장에게 노골적으로 특혜를 주는 이 법안 내용에 법사위의 많은 의원들이 의문을 제기했고, 법안은 통과되지 못한 채 연거푸 계류돼 있다. 법사위원들의 형형한 눈빛을 볼 때 적어도 문제의 ‘셀프연임’ 조항이 원안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다.

상식이 결여된 게 국회 전체가 아니라 농해수위 하나뿐이라 참 다행이지만, 그 농해수위가 하필 기자가 근무하는 농업전문지의 소관이라는 게 괜시리 부끄럽다. 농해수위원인 윤미향 의원의 말대로 이번 농협법 개정안 의결은 “농해수위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기자는 이 법안의 추후 동향과 결말을 빠짐없이 보도할 예정이다. 특히 법안을 앞장서서 밀어붙인 몇몇 농해수위원들, 그리고 법안 계류 결정에 묘하게 발끈하는 반응을 보였던 모 법사위원을 앞으로도 각별히 주시하는 일은 기자에게 부여된 사명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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