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가 사라지는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비판’ 기사들

“농협중앙회장 연임 추진, ‘용산’에서 돕고 있다”

“농협대 총장, ‘연임제 답례’로 국회 관계자 내정”

“연임제 찬성 농민단체장은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어야 하루 안에 기사 삭제

  • 입력 2023.07.09 18:00
  • 수정 2023.07.09 18:1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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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의 비정상적인 양태에 침묵하던 언론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를 앞두고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껏 공개한 기사들이 얼마 못가 속속 삭제돼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농협 외곽 관계자들은 “농협중앙회의 언론 검열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며 이를 힐난하고 있다.

지난 4일 A언론사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셀프연임을 용산(대통령실)에서 돕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 범농협조직 모 임원은 A사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 현 이 회장 연임을 위해 농협법을 개정한다”, “소리나지 않게 잘 진행될 것이다. 두고 봐라, 법이 개정될 것이고 개정되면 무조건 이 회장이 연임된다”고 언질했다. 이미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농협중앙회가 이성희 회장 연임을 위해 치밀하고 구체적인 기획 및 준비작업을 해왔음을 시사하는 기사다. 기사에선 또한 “이 일(회장 연임)에 용산이 나서고 있다”는 이 회장 측 다른 관계자의 최근 발언도 소개하며 세간의 의혹에 힘을 싣기도 했다.

A사가 문제의 발언을 처음 채록한 뒤 1년이 훌쩍 지났고, 보도를 유예하는 사이 연임 이슈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달았다. A사로선 1년 이상의 긴 고심 끝에 어렵게 내놓은 폭로 기사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 기사는 한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대폭 수정된다.

기사가 공개된 4일 오후, ‘셀프연임’과 ‘용산’을 강조했던 기사 제목은 지극히 중립적·상투적인 제목으로 바뀌었고 전술한 문제의 발언들은 본문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셀프연임은 회장의 욕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등 이성희 회장을 향한 강도 높은 노동자들의 규탄 발언도 삭제됐다. 전체 기사 분량이 원본의 3분의1로 줄어들 정도로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달 28일엔 B언론사가 농협대학교 총장 인사 의혹을 보도했다. 농협대 총장의 임기는 통상 2년인데, 이상욱 농협대 총장이 취임 1년만인 지난달 초 중도 사퇴했다는 것이다. 본지 확인 결과 이 총장은 지난달 7일자로 사퇴했고 현재 조동수 부총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당초 이 총장이 부임할 때 노조의 거센 반대가 있었고 이에 임기를 1년으로 사전 약속해뒀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후임 총장이다. B사는 농협중앙회가 회장 연임 추진 과정에서 국회 내 여러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보은 인사로 농협대 총장에 국회 수석전문위원급을 내정했다는 소문을 소개했다.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로비야 무수한 의혹을 양산하고 있지만, 의원실이 아닌 전문위원의 관여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기사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통째로 삭제돼버렸다.

C언론사는 지난달 20일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찬성 성명을 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의 회장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연간 7,000만원의 수당을 받는 현직 농협중앙회 사외이사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연임제 찬성 여론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사로, 사흘 뒤엔 D언론사에서 같은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두 기사 역시 금세 사라져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기사들이다.

E언론사는 지난해 12월 2일과 지난 5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연임제의 부당성과 농협중앙회 로비 의혹을 보도했으나 기사는 게재하는 족족 삭제됐다. 특히 이 매체는 독자취재 없이 본지 기사를 대거 인용하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했고, 본지는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게재부터 삭제까지’ 걸린 정확한 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기사가 게재된 건 5월 18일 14시 46분, 사라진 건 16시 40~50분. 불과 두 시간만에 기사가 삭제돼버린 것이다.

본지가 앞선 보도(회장 연임을 위해 … 언론도 여론도 ‘돈’으로 틀어막기)에서 언급했듯 농협중앙회는 언론사의 ‘돈줄’을 쥔 대형 광고주이기 때문에 광고를 무기삼은 언론 관리가 가능하며, 실제로 농협중앙회 홍보실은 언론 보도에 매우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소개한 모든 기사들이 외압에 의해 삭제됐다고 확정할 순 없지만, 특정 시기에 특정 주제를 다룬 기사들이 자꾸 사라지는 모습은 의혹을 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상기 여섯 건의 기사는 어디까지나 삭제된 기사 전체가 아니라 본지가 파악한 것들일 뿐이다.

농협중앙회 퇴직 직원 F씨는 “불리한 기사가 뜨면 그걸 지우고 고치는 게 농협중앙회 홍보실의 업무이고 관행이지만, 원래는 농협이나 농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그런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회장 개인의 연임을 위해 너무 노골적으로 언론을 관리하고 있다”며 “농협의 질이 너무 낮아진 것 같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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