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연임을 위해 … 언론도 여론도 ‘돈’으로 틀어막기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연재기획④]
농협중앙회의 여론 왜곡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6.26 06:2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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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4년 단임인 농협중앙회장에 연임을 허용하자는「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일사천리의 진행 상황과는 반대로, 현직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을 위한 특혜 논란과 이를 둘러싼 각종 추문으로 이미 심각하게 얼룩져 있으며 그 내용 역시 모순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본지는 법안에 연루돼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매주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지난해 4월, 본지는 농협중앙회장 연임 법안의 수상쩍은 행보를 국내 매체들 중 최초로 보도했다. 당시 ‘현직 중앙회장부터’ 소급해 연임을 허용하자는 똑같은 내용의 법안들이 부자연스러우리만치 동시다발적으로 발의됐는데, 농협중앙회가 본분을 뒤로하고 이 입법로비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기사가 공개된 직후 농협중앙회 홍보실은 본지를 방문해 “어차피 나중에 이슈가 될 문제니,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전했다. 본지는 보도 유예가 사안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최대 광고주인 농협중앙회와의 관계를 고려해 청을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11월 돌연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은 여야 의원들 간 사전 합의라도 있었던 양, 그 논리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소위를 통과했고 지난달엔 농해수위 전체회의 관문까지 통과했다. 위원장·간사 의원들이 ‘묻지마’ 식으로 밀어붙인 탓에 논리적·이성적인 토론을 진행할 시간과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농협중앙회 홍보실은 언론 보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통제를 시도한다. 자사에 불리한 기사가 등장하면, 그 즉시 사전약속도 없이 언론사를 급습하거나 전화를 걸어 기사 수정 또는 삭제를 요구한다. 농협중앙회가 거대한 자금을 쥔 언론사 광고주이기 때문에, 요구의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다.

중앙회장 연임제에 대해선 특히 민감하다. 반대 여론이 들끓는 데다 막대한 이권과 도덕적 추문이 뒤얽힌 사안임에도 보도하는 매체는 손에 꼽으며 기사가 게재됐다가도 금세 삭제되기 십상이다. 지난달 게재한 A언론사 기사의 경우 심지어 게재된 지 불과 두 시간도 안돼 삭제 처리되기도 했다.

언론사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엔 실제로 경제적 제재가 이뤄진다. 가장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매체임에도, 농협중앙회는 본지에 지난 10년 이상 정기광고를 유지하며 관계를 구축해왔다. 그런데 ‘회장 연임’ 문제에 대해선 본지가 기사 수정 요청을 거절하는 등 소신을 고수하자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본지에 정기광고 중단을 통보했다. 기업 광고는 현실적으로 언론을 지탱하는 중요한 재원이 되기 때문에 역대 농협중앙회장들 모두 기사와 별개로 언론의 생리를 존중했지만, 지금은 보다 적극적으로 언론을 제재하는 데 활용하려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25일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에 대한 농식품부의 경기·강원권역 설명회(여론수렴 절차)에서 경기지역 농민들이 “농협이 설명회 참가자를 섭외하면서 반대 측 농민단체를 배제했다”며 시위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선 농협 측 패널들의 야유로 반대 발언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25일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에 대한 농식품부의 경기·강원권역 설명회(여론수렴 절차)에서 경기지역 농민들이 “농협이 설명회 참가자를 섭외하면서 반대 측 농민단체를 배제했다”며 시위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선 농협 측 패널들의 야유로 반대 발언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통제하는 건 언론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연임제가 처음 공론화됐을 때 농협중앙회는 전국 지역농협 조합장들을 대상으로 중앙회장 연임제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조사 방식이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농협중앙회 전국 시·군지부장들이 조합장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거나 한 자리에서 ‘만장일치’를 확인해 응답을 작성하는 식이라 ‘반대자 색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사실상 찬성을 종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시기 여론 수렴을 위한 농식품부의 법안 설명회에선 조직적으로 농협 측 패널을 동원해 농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역별로 진행한 설명회 중 일부 설명회에선 친중앙회 성향 농협 조합장들이 자리를 대거 장악, 반대 의견을 가진 전문가의 정규 발제조차 방해하는 추태를 보였다. 반대 측 10분짜리 발제를 “너무 길다”며 집단 항의로 중단시킨 뒤 찬성 측 20분짜리 발제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식이었다.

최근 일부 농민단체들에서도 속속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찬성’ 입장이 발표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의심도 팽배하다. 지난주에 게재됐다 당일 삭제된 B언론사 기사에 의하면, 연임제 찬성 성명을 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회장은 현직 농협중앙회 사외이사로 농협중앙회로부터 연 7,000만원가량의 수당을 받고 있다. 농협중앙회 사외이사의 임기는 2년이며, 최근 연거푸 연임제 찬성 성명을 내고 있는 몇몇 농축산단체의 회장들도 농협중앙회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있는 후보군에 있다. 법안 발의 때와 마찬가지로 부자연스럽게 쏟아지고 있는 단체들의 성명에 역시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드리우고 있다.

연임제에 반대하거나 사외이사 후보군이 아닌 단체장들에게도 회유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측이 “연임제 통과만 눈감아주면 원하는 것을 들어 드리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황이 복수의 단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농민·농협보다도 회장의 이익이 크게 걸린 ‘연임제’ 관철을 위해 농협중앙회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언론 통제, 설문 왜곡, 단체 포섭 등 앞서 살펴본 농협중앙회의 모든 행위는 결국 ‘여론 왜곡’으로 귀결된다. 여론을 왜곡한다는 건 정상적인 여론이라면 돌파할 수 없다는 뜻이며 그만큼 중앙회장 연임제에 커다란 논리적·상식적 하자가 있음을 말해준다. 어영부영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해 올라온 이 법안을 국회 법사위 위원들이 어느 때보다 이성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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