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이권 앞에 국회 ‘입법정의’가 무너진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연재기획 ①]
불합리로 점철된 국회 연임제 논의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7 13:5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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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4년 단임인 농협중앙회장에 연임을 허용하자는「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일사천리의 진행 상황과는 반대로, 현직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을 위한 특혜 논란과 이를 둘러싼 각종 추문으로 이미 심각하게 얼룩져 있으며 그 내용 역시 모순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본지는 법안에 연루돼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이번호부터 매주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농협중앙회장에 단임제를 도입한 건 2009년이다. 14~15대 한호선 회장 횡령, 16~17대 원철희 회장 횡령, 18~20대 정대근 회장 뇌물수수. 1990년 농협중앙회장 선출직 전환 이후 2007년까지 모든 농협중앙회장은 강력한 조직장악으로 연임에 도전해 실패한 적이 없고, 그 임기 동안 부정·비리를 저질러 처벌받았다. 이에 제18대 국회가 농협중앙회장의 반복되는 일탈에 제동을 걸고자 법을 고쳐 단임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금껏 단임제를 온전하게 적용받은 농협중앙회장은 한 명도 없다. 법 개정 당시의 회장이었던 21~22대 최원병 회장은 ‘개정법을 현직에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연임을 허용받았다. 그 결과, 전임 회장들처럼 회장 본인이 구속되진 않았지만 농협중앙회 곳곳이 이명박정부와 유착해 어느 회장 때보다도 어두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23대 김병원 회장은 표면상으론 단임제를 적용받은 것 같지만 애매한 면이 있다. 임기 내내 연임제 부활을 꿈꿨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발목을 잡았고, 총선 출마를 명목으로 임기를 마치기 전에 자진사퇴했다. 중도사퇴인 데다 연임 도전 자체가 힘든 처지였기 때문에 단임제를 깨끗하게 적용받았다 보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24대 이성희 회장이 다시 연임제 부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듯, 단임제가 도입된 지 시간상으론 14년이 흘렀지만 실질적으로는 지금 막 도입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단임제를 통해 부정부패 근절이나 중앙회 경영에 어떤 효과가 나타났는지 점검하고 평가할 대상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회는 충분한 토론과 논거 없이 선대 국회의 판단을 뒤엎으려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현직 특혜 논란과 불법로비 의혹으로 얼룩진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반대 기자회견’에서 연임제에 반대하는 의원들과 관련 단체장들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현직 특혜 논란과 불법로비 의혹으로 얼룩진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반대 기자회견’에서 연임제에 반대하는 의원들과 관련 단체장들이 발언하고 있다.

14년이 흘렀어도 과거의 문제요소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농협중앙회는 회장을 구심점으로 한 직장 내 ‘라인 타기’ 문화가 유별나게 발달한 조직이다. 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중앙회 곳곳의 요직에 특정 지역 출신들이 중용되고, 이들이 각 출신 지역 조합장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농협 조직 안에 일단의 기득권이 형성된다. 직원과 임원, 지주회사와 그 자회사 인사에까지 중앙회장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건 여전히 농협 조직 내부에서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고, 중앙회가 회원조합에 분배하는 ‘조합상호지원자금’ 역시 중앙회장이 조합장들을 관리하는 유효한 수단이다. 이것이 과거부터 현직 회장들이 연임에 실패한 적 없었던 이유며,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리’ 문화가 만연하다면 임기가 길어질수록 중대한 비리의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연임법안은 노골적으로 농협과 이성희 회장 개인의 이권에 복역하고 있다. 단임제를 도입할 땐 현직 최원병 회장에 적용을 배제하더니 연임제를 꺼내들 땐 현직 이성희 회장에게 ‘반드시’ 소급적용해야 한다는 게 농해수위 소속 다수 의원들의 입장이다. 왜 꼭 현직에 소급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지금까지의 수많은 논의 가운데 단 한 번도 ‘이유’가 등장한 적이 없으며, ‘차기 회장부터’ 연임을 허용하자는 윤준병 의원의 후속 발의안은 아예 무시당했다.

연임제와 관련된 다른 법안들을 보면 더욱 명료해진다. 2021년 도입한 농협중앙회장 직선제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연임제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당시 293명 체육관 선거였던 중앙회장 선거를 전국 1,100여 조합장 직선제로 바꾼 건 의미가 있었지만, 부가의결권(몇몇 조합에 한해 두 표 행사)을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앙회장의 ‘수월한 표 관리’를 도왔다.

최근 연임제 논의 국면에선 비상임조합장 임기제한(무제한→3선)이라는 개혁법안을 함께 다루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이 역시 무제한이었던 임기를 제한한 건 의미가 있지만, 2027년 취임하는 조합장들을 모두 ‘초선’으로 간주키로 한 탓에 2039년까지는 기득권·장기집권의 폐해를 묵인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앙회장 연임제를 통과시키는 ‘대가’로 직선제와 비상임조합장 임기 등 이런저런 농협 개혁안을 병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성희 회장과 범농협 조직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부담을 거의 감수하지 않은 채 이득만 챙기고 있다.

농협중앙회장 연임법안은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와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상태다. 몇몇 의원들이 합리적 문제제기를 쏟아냈지만 다수 의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의결을 진행했으며, 토론이라 할 만한 과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수사나 판결을 두고 ‘사법정의’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최근 국회의 농협법 개정 과정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은 ‘입법정의’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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