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최원병, 그리고 윤석열-이성희 … 그 묘한 데자뷰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연재기획③]
정치 농협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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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4년 단임인 농협중앙회장에 연임을 허용하자는「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일사천리의 진행 상황과는 반대로, 현직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을 위한 특혜 논란과 이를 둘러싼 각종 추문으로 이미 심각하게 얼룩져 있으며 그 내용 역시 모순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본지는 법안에 연루돼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매주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농협중앙회는 전국 1,111개 지역 농·축협의 이익을 대변하고 200만 농민들의 삶을 지지해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출범 3년째 ‘이성희 농협’은 농민보다 정치권을 들여다보는 데 공력을 쏟고 있으며, 그 궁극적 목적 역시 농민과 거리가 멀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 1월, 농협금융지주 대표이사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박근혜정부)이 취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캠프에 ‘1호’로 영입하고 당선인 시절 특별고문을 맡겼을 정도로 현 정권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이 대표는 당시 농협 내부 승진자로 원만한 경영실적을 보이던 손병환 대표를 밀어내고 들어오면서 노골적인 ‘정권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엔 최상목 농협대학교 총장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선임됐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래 재야에 있던 인물이 농협에 둥지를 틀었다가 정권에 발탁된 것이다. 일각에선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추진의 배후로까지 의심할 만큼 대통령실 내부의 확실한 농협 연줄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대통령실과 이성희 회장을 좀더 직접적으로 이어줄 수 있는 인맥이다. 임 교육감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캠프 총괄상황본부장과 당선인 시절 특별고문을 맡은 인물이며, 이성희 회장과는 동향(경기 성남) 출신이다. 이 회장의 모친이 산파로서 임 교육감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으며 성남 낙생농협 조합장직을 임 교육감의 부친(2대)과 이 회장(10~12대)이 공통으로 역임했다. 지역에선 오히려 앞의 두 인물보다도 임 교육감을 정권-농협 연결고리의 핵심으로 꼽을 만큼 관계가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다.

농협으로서는 흔치 않다고 할 정도로 정권과의 관계가 단단하게 이어진 상황이지만, 이성희 회장은 이를 농정 현안 타개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쌀값 폭락 사태, 수입개방, 물가안정 등의 이슈에서 보여줬듯 농협이 정부의 반농민적 기조에 충실히 복무하는 모양새다. 정권과의 관계 구축에 의도성이 있다면 그 목적은 농민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있다는 뜻이며 지금까지 표면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회장 연임’이다.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채 이권 관련 문제로 잡음을 빚고 있는 ‘이성희 농협’의 모습이 과거 ‘최원병 농협’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각각의 재임 기간에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왼쪽)과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 한승호 기자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채 이권 관련 문제로 잡음을 빚고 있는 ‘이성희 농협’의 모습이 과거 ‘최원병 농협’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각각의 재임 기간에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왼쪽)과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 한승호 기자

과거의 사례에 비춰보면 회장 연임은 문제의 출발일 뿐이다. 만약 우려대로 농협중앙회장 연임에 정권의 도움이 작용하고 있다면, 정권 역시 농협에 기대하는 게 있다는 뜻이다. 제21~22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고 후배로서 정권과 지금 못지않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최 회장 초선 임기 중 중앙회장 선거제가 직선·중임제에서 간선·단임제로 바뀌었지만 묘하게도 최 회장은 다음 선거에서 ‘간선·중임제’를 적용받았다. 최 회장은 오히려 더욱 수월하게 연임에 성공했고, 이에 대해 줄곧 정권의 비호 의혹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잘 알려졌다시피 농협중앙회의 비상식적인 특혜대출, 석연찮은 전산대란 등의 사건들이 대두됐다.

공교롭게도 지금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 모두가 ‘이명박-최원병’ 시절의 주역들이기도 하다. 이석준 농협금융 대표는 이명박정부 당시 이미 기재부의 실세였으며 최상목 경제수석은 박근혜정부가 주 활약무대였지만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 참여하면서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태희 교육감은 당시 대통령실장(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이성희 회장은 ‘최원병 농협’의 감사위원장으로, 그 난잡했던 농협중앙회의 비리·의혹들을 내부에서 전혀 다뤄내지 못했다. 정권-농협 유착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지내온 멤버들이 재등장한 것이며, 항간에 떠들썩한 소위 ‘MB 부활’의 한 양태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상식적인 데다 개인 특혜성이 다분하고, 여당에 유리한 입지까지 제공하는 이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에 몇몇 야당 의원들은 왜 동조하고 있을까. 여기엔 농협중앙회의 전사적 로비 역량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지난해 12월 8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에서 나온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고발이 그 구조를 잘 설명해준다.

당시 김승남 법안소위원장의 제지를 뚫고 윤 의원이 낭독한 제보문은 다음과 같다. “이성희 회장은 농협법 셀프 연임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 국회 전문위원, 농식품부 등에 조직의 인력 및 비용을 들여 조직을 나락으로 몰고 가면서 로비를 하고 있습니다. 입법 로비를 위해 중앙회 기획실을 통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특히 국회의원 등에게 농협 지역본부장을 시켜 로비자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때로는 회장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을 비밀스럽게 만나서 비자금을 직접 전달하고 있고 이러한 로비 대상의원 명단은 중앙회 기획실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연임 법안 통과를 대가로 특정 농협 직원에 대해 농협회장에게 인사청탁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과 인사청탁 국회의원 리스트가 농협중앙회 인사총무부 인사비밀방에 수기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비밀스럽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으나 이미 농협 내부에서는 많은 직원들이 알고 있으며 관련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까봐 쉬쉬하고 있습니다.”

연임 법안이 진행되는 부자연스러운 양상을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 내용이며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이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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