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연임안, 국회 농해수위서 벌어진 ‘막장 드라마’

논리·이성 내던진 막무가내 의사 진행 … 의원 간 비방 난무

의결 결과 중앙회장 기득권은 ‘강화’, 조합장 기득권은 ‘보호’

농민·노동단체 거센 반발 … “법사위서 저지해야” 의사 표출

  • 입력 2023.05.18 19:02
  • 수정 2023.05.19 11:4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가능케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가운데 법 시행까지는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법사위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열린 ‘고금리 고물가에 고통받는 농민 외면하는 농협중앙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농협 본관 정문이 철문까지 내린 채 굳게 닫혀 있다. 한승호 기자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가능케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가운데 법 시행까지는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법사위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열린 ‘고금리 고물가에 고통받는 농민 외면하는 농협중앙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농협 본관 정문이 철문까지 내린 채 굳게 닫혀 있다. 한승호 기자

국회에서의 법률 개정은 개정안 발의 이후 ①상임위 법안심사소위원회 ②상임위 전체회의 ③국회 법제사법위원회 ④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이뤄진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제를 담은「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김승남·윤재갑·김선교·이만희 의원 대표발의)은 지난해 12월 8일 농해수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뒤 여론에 부딪혀 줄곧 계류 상태에 있었으나, 지난 11일 전격적으로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소위 당시에도 이 개정안은 등장 자체가 의문투성이였고 의결을 강행하는 김승남 법안소위원장 면전에서 윤준병 의원이 ‘농협중앙회 인사청탁 로비 의혹’까지 거론하는 등 ‘막장’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이 막장 행태는 지난 11일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또다시 번갯불에 콩 볶다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을 다루기 5시간여 전인 5월 11일 오전 10시, 농해수위 법안소위가 회의를 열어 농협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은 이미 법안소위를 지나간 안건이고 이날의 안건은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안’이었다. 현행 농협법상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비상임조합장의 연임 가능 횟수를 상임조합장과 똑같이 2회(3선)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조합장 장기집권과 이로 인한 폐단을 해소할 중요한 개혁법안이지만 문제는 적용 기준이었다. 다수의 의원들은 연임 제한을 2027년 조합장 선거 이후부터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즉 2027년 선거 당선자를 모두 초선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3선 제한을 적용하면 현 3선 조합장은 6선(24년), 7선 조합장은 10선(40년) 등 기존과 다를 바 없는 초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론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당장의 폐단은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법안 발의자 중 하나인 신정훈 의원이 △3선 제한에 현재의 연임 횟수를 포함시키고 △조합장 외 이·감사에게도 적용해야 개혁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기관에 의뢰해 좀더 검토해 보자”, “조합장 임기가 많이 남아 시간이 충분하지 않나”라는 신 의원의 호소를 무시한 채 김승남 법안소위원장은 의결을 강행했고, 신 의원은 위원장석 옆까지 가 연신 “추잡스럽다”며 김 위원장을 비난했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안 의결을 강행하던 김 위원장에게 윤준병 의원이 연신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해댔던 지난해 12월 8일 법안소위가 겹쳐 보이는 장면이다.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안은 왜 이렇게 급하게 처리됐을까. 의원들이 지역구 조합장들의 ‘눈치’를 봤을 수도 있고 김 위원장의 항변처럼 순수하게 “지금 아니면 처리 못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수도 있지만, 국회 안팎에선 이를 농협중앙회장 연임안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회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이후 여론의 비판에 부담을 느낀 소병훈 농해수위원장은 김승남 법안소위원장에게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안을 ‘선결 과제’로 부여했다. 소 위원장 역시 농협중앙회로부터 적잖은 압박을 받고 있었던 만큼, 모종의 개혁법안이 올라오면 중앙회장 연임안을 같이 묶어 전체회의에 상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월 31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전 감사위원장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0년 1월 31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전 감사위원장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기어이’ 농해수위 통과
불법 로비 의혹은 여전

5월 11일 오후 3시 30분,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예상대로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을 포함한 농협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이후의 일은 앞서 보도된 바와 같다. 이미 여야 간사 간(소병훈 위원장, 김승남 간사, 이달곤 간사) 법안 의결에 대한 합의가 끝난 듯, 법안소위 때만큼 치열한 싸움은 전개되지 않았다.

한결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신정훈·안병길·윤미향 등 중앙회장 연임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엄중한 농업현실에서 이게 그렇게 급한 법안이냐”라며 법안의 부당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짚었다. 특히 안병길 의원은 △현직 소급적용은 특혜의 소지가 매우 크다 △과거 연임제의 폐해를 답습한다 △연임보다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장기 경영안정’이라는 연임제의 목적은 기만적이다 △‘연임제 찬성’ 여론조사가 조작됐다는 등 법안이 가지는 다섯 가지 중대한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냈다. 반대 의원들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문제제기를 간사들과 다른 의원들은 그저 멀뚱히 ‘청취’만 했다.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반론이나 토론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소병훈 위원장은 의결을 진행했고 법안은 그대로 가결됐다. 하다못해 ‘현직 소급적용’ 조항이라도 삭제했다면 이성희 회장과 의원들 사이의 특혜·로비 의혹이라도 벗어낼 수 있었겠지만 이에 대한 논의 역시 전무했다.

추상적으로 퍼지던 로비 의혹은 윤준병 의원을 중심으로 실체화되고 있다. 윤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에 맹렬히 반대하며 지난해 12월 법안소위에서부터 로비 의혹을 공식적으로 끄집어낸 인물이다. 이날 지역 일정으로 전체회의에 불참한 윤 의원은 법안이 의결된 후 개인 SNS를 통해 “현 (이성희) 회장이 ‘셀프연임’을 위해 농해수위 위원들을 포함해 정치권 로비를 해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동안에도 농협중앙회의 주요 기관장 인사를 가지고 현 회장이 정치권과 거래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셀프연임’을 위한 로비 흔적이 곳곳에 있다는 투서가 나에게도 전달됐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농협중앙회의 로비 시도가 있었다”며 비판을 던졌다.

비민주·비합리·비이성적인 모습으로 점철된 농해수위의 농협중앙회장 연임안 의결은 윤미향 의원의 우려처럼 그 자체로 “농해수위 역사의 오점”이 되고 있는 중이며,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한다면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엔 이번에 떠오른 로비 의혹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반대 및 농협법 개정안 야합 처리 반대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농민조합원 직선제도 없이 연임을 가능케 하려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2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반대 및 농협법 개정안 야합 처리 반대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농민조합원 직선제도 없이 연임을 가능케 하려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문제의 중앙회장 연임제,
비판 여론 들썩들썩

농해수위는 농협중앙회장 연임안을 포함해 총 20건(내용중복 포함)의 농협법 개정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묶어 국회 법사위에 회부했다. 결과적으로 △중앙회장 연임제는 현직에 소급적용하는 반면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은 기존 연임 횟수를 배제함으로써 ‘기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양상이 됐다. △농업지원사업비(중앙회 계열사 명칭사용료) 부과율 상향 △도시농협 도농상생사업비 의무납부 △중앙회 회원조합지원금 공정성 확보 등 농업발전 및 농협개혁 측면에서 의미 있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연임제 논란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이 대안은 국회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와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개정 농협법에 반영된다. 단, 법사위 단계에 암묵적 ‘만장일치’의 관행이 있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는 의원이 있을 경우 법안이 저지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농업계 진보성향 농민·노동단체들은 이성적인 법사위원들이 이 길목을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부결시키기 아까운 개혁 조항들이 섞여 있지만 중앙회장 연임제가 갖는 문제와 비교하면 그리 중요하거나 시급한 것들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11일 농해수위 전체회의 이후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문제에 공감하는 단체들이 다시 결집하고 있다. 농해수위의 법안 처리에 상당한 분노와 불신이 공유되는 중이며 일부는 거친 단어들로 표출되고 있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은 16일자 성명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지난 3년 행보에 대해 “농업과 협동조합, 농민 조합원과 농·축협 노동자의 기본권을 짓밟는 데만 힘을 쏟는다”며 이 회장의 정체성을 ‘(농업인이 아닌) 금융인’이라 비판했다. 또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반드시 ‘금융인 이성희의 연임 욕망실현의 꿈’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것”이라고 선언하고 “무지·무능·무책임의 상징 ‘금융인 이성희’씨는 추찹한 연임 욕망을 접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집에 돌아갈 채비나 하라”고 쏘아붙였다.

연대단체들은 우선 오는 24일 국회 법사위와 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23일 국회소통관에서 반대 의원들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시간상 당장 24일 법사위에서 이 법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에 대비함과 동시에 반대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이후엔 단체별로 역할을 분배해 전방위적인 법안 저지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