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밀어붙이기, 이렇게 무모했다

논리도, 염치도, 신의도 없는 법안 밀어붙이기 … 보는 이가 ‘화끈’

농협은 노골적인 여론몰이 … 국회에선 동료 의원 ‘뒤통수 치기’도

  • 입력 2022.12.18 18:00
  • 수정 2022.12.18 21:5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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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반대 및 농협법 개정안 야합 처리 반대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농민조합원 직선제도 없이 연임을 가능케 하려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반대 및 농협법 개정안 야합 처리 반대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농민조합원 직선제도 없이 연임을 가능케 하려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시작과 과정이 무수한 의혹으로 점철됐던 만큼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법안’은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농협과 일부 국회의원들의 필사적인 모습은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봐도 몹시 부자연스러우며, 그 무모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논리가 없다

법안소위를 통과하기 직전까지 이 법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격렬하게 충돌했다지만, 대등하게 부딪힌 건 ‘목소리의 크기’일 뿐, 침착하게 ‘내용’을 들여다보면 찬성 측의 열세를 확인할 수 있다. 찬성 의견에 대한 반대 측의 반론이 조목조목 이뤄진 데 반해 찬성 측의 재반론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굵직한 논리들을 예로 들어보면, 찬성 측은 ‘단임제를 강제하는 건 조합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관제조직과 국책사업 수행조직으로서 농협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실질적으로 하향지배가 이뤄지는 조직구조를 들어 농협 내에서 민주주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사조직(신협·수협 등)은 연임을 허용하고 있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찬성 측 주장 역시 타 조직 대비 농협의 압도적인 사업·자본규모, 조직 내 첨예한 이해관계 등을 근거로 반대 측의 반론이 펼쳐졌다. 이후 8일 법안소위 직전까지 이어진 찬성 측의 의견들은 이들 반론에 대한 재반론이라기보다 기존 주장의 재확인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찬성 입장에 선 건 대부분이 농협 조직 및 농협과 관련된 기관들, 농협중앙회 이사로 빈번히 참여하는 농민단체들이다. 그들 스스로가 농협중앙회장의 통제권 아래 있거나 중앙회장과 이권이 얽힌 이들이기 때문에 중립성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법안소위는 고작 2주 동안 5~6차례의 여론수렴을 거쳐 ‘찬반이 분분하다’는 외향만을 받아들였고, ‘분분한 찬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염치가 없다

부자연스러운 법안의 내용(현직부터 적용)과 발의 과정(느닷없는 중복발의)부터가 이미 농협중앙회의 국회 로비를 의심케 하지만, 이후의 찬반 논쟁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는 매우 노골적으로 찬성 여론을 조장했다.

전국 조합장을 대상으로 한 농협중앙회의 찬반 설문조사는 ‘반대자 색출’이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법안’을 볼모삼아 찬성을 유도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의 ‘낙하산’ 임원 인선과 지난해 말 전국 조합장에게 뿌린 20억원어치의 최신 스마트폰 역시 연임제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수렴을 위한 전국 순회 설명회장엔 지역 조합장들을 조직적으로 배정했으며, 이 조합장들은 토론은 고사하고 반대 측의 ‘기조발표’까지 가로막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있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태도도 지탄의 대상이다. 농협중앙회장이 연임을 노린다면 적어도 조합원들이 그 필요성을 공감할 만큼 농업·농민에 대한 헌신을 보였어야 하지만, 이 회장은 당장 전임 김병원 회장과 비교해봐도 이 부문에 혹평을 받는 인물이다. ‘농민을 뒤로한 채 개인의 영달만 좇는다’는 비난은 반대 진영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신의가 없다

국회에선 이 연임 법안을 두고 같은 당(더불어민주당)끼리 꼴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과 손잡고 법안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인 김승남 의원(법안소위원장)과 이에 강력히 반발한 신정훈 의원의 갈등이다.

법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신정훈·윤준병·윤미향 의원은 지난 1일 오후 1시 20분 국회 소통관에서 법안 반대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이 사전 고지도 없이 당일 현장에서 2시 20분으로 연기됐다. 이날 동료 의원들의 중재로 김승남·신정훈 등 민주당 농해수위 의원들이 오찬을 가졌고 이 자리가 예정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오후 2시경, 결국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신정훈 의원실은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는 데 의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취소 사유를 전했다.

그러나 기류 변화에 낙관하던 반대 진영의 기대와 달리, 지난 8일 법안소위에서 법안은 전격 통과됐다. 반대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승남 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 간에 원색적인 비난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일 있었던 의원 간 오찬은 반대 의원들의 기자회견을 막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법안에 논리 자체가 부실한 상황에서, 농협은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노골적인 밑작업을 했고, 국회는 신의를 저버리면서까지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설령 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다 해도 이 무모했던 과정들은 농협 개혁 논의가 등장할 때마다 두고두고 구설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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