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워도, 연임을 위해서라면

  • 입력 2023.05.18 18:58
  • 수정 2023.05.19 08:5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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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현직 농협중앙회장부터 연임을 소급 적용하는 농협법 개정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현직'에 있는 이다. 이게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것인지 농업계는 되묻고 있다. 2020년 1월 31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전 감사위원장이 당선 소감을 전한 뒤 대의원조합장 및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현직 농협중앙회장부터 연임을 소급 적용하는 농협법 개정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현직'에 있는 이다. 이게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것인지 농업계는 되묻고 있다. 2020년 1월 31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전 감사위원장이 당선 소감을 전한 뒤 대의원조합장 및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동안 뜸했던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이슈가 다시 부상했다. 지난 11일 농협중앙회장 연임제를 담은「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지난해 12월 농해수위 법안소위 통과 이후 여론의 강력한 반발로 동력이 한풀 꺾였나 싶었지만, 농협과 몇몇 의원들이 물밑에서 집요하게 준비작업을 해온 것이다.

그동안 이미 수도 없이 지적됐듯 법안의 내용은 낯뜨겁기 짝이 없다. 끊이지 않는 농협중앙회장 부정부패의 역사 끝에 어렵사리 임기를 단임제로 정비했는데 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연임제 회귀안이 고개를 든 것이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기엔 농협의 기득권·야합 구조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이 법안은 연임제를 구태여 ‘현직 회장부터’ 소급적용하려 하고 있다. 지금의 비민주적 농협 구조, 그리고 농협중앙회장 선거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현직 회장은 일단 재선에 출마만 하면 낙선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현직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8년 임기와 수십억원의 이권을 보장하는 개인 특혜성 법안의 성격이 다분하다. 기를 쓰고 법안을 추진하는 건 농협중앙회와 의원들이요, 부끄러움은 농업계 전체의 몫이다.

국회에서도 국민적 주목도에 비해 이례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농해수위 간사 및 법안소위 위원장)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노골적인 밀어붙이기에 법안소위 때부터 신정훈·윤준병(더불어민주당)·윤미향(무소속) 의원 등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번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선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도 비판에 가세했다. 말이 논쟁이지 건전한 토론과는 거리가 멀어서, 반대 의원들의 논리적 질타를 찬성 의원들이 무시하고 강행하는 양상이다. 농협중앙회의 농도 짙은 대국회 로비가 얽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수상한 법안이 농해수위를 떠나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라는 두 개의 문턱만 넘으면, 내년 선거에서 뽑힐 차기 농협중앙회장은 매우 높은 확률로 이성희 현 회장이 된다. 농업계 단체들은 이미 국회 법사위에까지 농협중앙회의 로비력이 미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농해수위가 모처럼 불도저같이 밀어붙인 법안이 겨우 농협중앙회장 연임제라는 사실은 농민들에게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기고 있다. 의정은 유권자인 국민들을 위해 행해야 하고, 약자를 바라볼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농민들의 이익은 고사하고 농협개혁의 역사를 퇴보시키며, ‘이성희 회장’이라는 기득권의 정점에 선 인물에게 압도적인 이익을 안겨주는 법안이다. 더욱이 이성희 회장은 취임 이후 농업에 불어닥친 수많은 위기 상황에서 한결같이 농민들로부터 고개를 돌려 지탄을 받아온 인물이다. 국회는 과연 어디를 바라보며 의정을 펼치고 있는지, 이번 농협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200만 농민들의 ‘눈’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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