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 2년, 회장 연임제밖에 남은 게 없다

  • 입력 2022.12.18 18:00
  • 수정 2022.12.19 11: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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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0년 1월 31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전 감사위원장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왼쪽). 지난 10월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한 조합원이 농협중앙회장 연임 반대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4년 단임인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현직 회장부터’ 연임제로 전환하는 「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반복되는 중앙회장 비리를 근절하고자 단임제를 도입했지만, 겨우 한 명의 회장만이 단임제를 적용받고서 곧바로 연임제 복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약속이라도 한 듯 중복발의된 똑같은 법안들. 굳이 현직 회장부터 적용되게끔 만든 그 내용. 농협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여론몰이와 일부 의원들의 집요한 법안 처리 의지. 농협중앙회 스스로 공인하진 않지만, 농협 조직의 역량이 총동원된 흔적은 곳곳에서 숨길 수 없이 삐져나오고 있다.

시종일관 부자연스러운 데다 곳곳이 의혹으로 얼룩진 이 법안은 빗발치는 비판을 뚫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농해수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국회 본회의가 남아있지만 가장 큰 벽인 법안소위를 넘은 의미는 크다. 농협중앙회가 가진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만약 농협중앙회가 이 강력한 힘을 농업계 초미의 관심사인「양곡관리법」이나「농민기본법」, 혹은 여타 중요한 개혁 의제를 담은「농업협동조합법」개정에 사용했다면 이성희 회장은 농협의 역사에 영웅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껏 힘을 쓴다는 곳이 실익은 모호하고 우려는 산적한, 게다가 회장 개인의 이권이 크게 걸린 ‘연임제’였다는 사실은 보는 이에게 허탈을 넘어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성희 회장 집권 2년. 농협중앙회는 점점 농민들과 멀어지고 있다. 쌀값이 기록적인 낙차로 폭락할 때도, 농산물 개방의 마지막 물결이 몰려올 때도, 농자재와 인건비가 폭등하고 농자금 대출금리가 치솟을 때도 중앙회장은 농민을 등졌다.

디지털 혁신, 가공공장 통합, 도시-농촌농협 공동 경제사업 등 주요 성과로 내세운 것들이 있었지만 당장 보여주기에 좋은 것들일 뿐, 확실한 효과는 내지 못한 채 여전히 갈 길이 구만리다. 그 와중에 이번 연임제 통과가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함으로써, 이성희 회장 2년의 상징적 업적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연임제’가 차지하게 됐다.

법안 자체는 단지 연임을 ‘허용’하는 것뿐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성희 회장의 연임을 확신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조합원이 아닌 조합장이 뽑는다. 조합원들의 눈총이야 어찌됐든 전국 1,114명 조합장 중 400~500명만 포섭하면 당선이 가능하다. 게다가 현직 중앙회장은 조합장들에 대한 중앙회 내 인사권과 자금줄을 틀어쥐고 있어 1,114명 안에서도 기득권 형성 및 수호에 유리하다. 과거 연임제 시절에도 연임을 시도해서 실패한 중앙회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이 있어 후속 절차에서 법안이 부결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통과의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연임을 가정해 이성희 회장의 남은 임기가 6년이라 치면, 농민조합원들은 앞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행보로 미뤄 판단하자면 그 6년은 농민조합원들에겐 썩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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