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공해재앙 이후 환경보호 운동은 늘 있었지만 전 세계적인 불황과 긴장상태가 지나고 나서 2000년대 초반, 국내에 본격적으로 ‘웰빙’ 바람이 서구권 유행 따라 불던 그때부터 한국에도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수식어가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친환경농업의 중요성이 반영된 친환경농업육성법은 1997년도에 제정됐고, 신고제로 운영되던 인증이 2001년에 소비자들의 본격적인 요구가 반영된 인증제로 전환됐다. 내 기억에도 예전엔 ‘무공해 숯불갈비’처럼 상호나 제품명에 무공해, 웰빙을 많이 사용했고, 아직도 어르신들은 “이거 무공해
지난 8년 동안 우리 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공립형 지역아동센터를 제안해서 얼마 전 완공이 됐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내년부터는 주민들이 지역 아이들을 공립형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볼 것이다. 실로 감개무량하다. 더욱이 코로나로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주민들이 주도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지금 아이들은 맘껏 놀 수 있는 놀이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 뭔가 연구하고 탐색할 수 있는 학습장이 생기자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2020년 코로나로 시작해서 긴 장마와 태풍을 넘기고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왔다.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보니 어려운 시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단단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달력은 계절에 맞춰 빠르게 지나가고, 집집이 한해 먹거리 농사인 김장으로 바쁜 계절이 왔다. 농사의 끝마무리로 처마 밑에 시래기들이 달리고, 뽀얗게 썰어 말린 무말랭이들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단맛이 들고 있다.콩을 털고, 깨를 털고, 씨앗을 거두고 집마당 야생화 꽃씨까지 야물게 거둬 내년을 기약
밤사이 서리가 하얗게 내렸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논의 벼 등걸들과 결구도 되지 못해 밭두렁에 남아 있는 섭치배추들도 밤새 덮어씌어진 서리 아래서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는 할 일도 없으면서 습관적으로 밭두렁으로 나선 내 어깨도 따라서 오그라드는 아침입니다.두 달이 넘는 장마와 뒤이어 몰아친 태풍, 이로 인한 불가항력의 병충해는 일년농사를 쭉정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국에서 최고 수매가를 자랑하는 여주의 ‘진상벼’ 품종은 RPC 통계로만 33%의 감량에 평균 제현율 72%를 기록했습니다. 수매를 포기한 농가와 민
2019년 1월 29일 무안의 서남부채소농협에서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첫 준비모임을 시작할 때 나는 오늘의 내가 있는 이 자리(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를 알고 있었나? 전혀 아니다.2019년 4월 15일 (사)전국양파생산자협회 창립총회를 개최한 함평을 가면서 양파의무자조금단체를 만들 계획을 했던가? 전혀 아니다. 그때 나는 의무자조금사업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2019년 6월 28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단법인 등록허가증을 받을 때 수입농산물 문제로 대책위를 만들고 김치자급률 법제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던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니 농사일 말고도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그건 농민들의 무감각과 무력감의 일상화이다. 최근 환경부가 수자원관리법을 개정하고 통합 물관리 계획이란 것을 마련해 수세부활, 용수사용 허가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농업·농민·농촌의 처지가 마치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뚜껑이 닫힌 채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개구리 신세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저수지의 물이 말라가고 있다.그동안 언제부터 물이 새고 있었는지, 물은 어떤 이유로 말라가고 있었는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수지 바닥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맘이 바쁘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더 늦으면 안 된다며 언니네텃밭 공동체 언니들이 공동 경작하는 밭에 마늘이랑 시금치, 월동배추, 양파를 심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함께 일을 했다. 춥기도 했지만 고된 일을 하고 나니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난다.돌아보니 다들 똑같이 끙끙거리신다. 평생 농업노동, 가사노동으로 몸이 닳고 닳은 언니들이 안 아프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지원으로 여성농업인 영농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이 다가온다.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도 롯데제과의 과자 하나만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을까?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무덤덤하게 지나고 있을까?농민과 처지가 비슷한 노동자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다 아는 것처럼 노동자의 날은 5월 1일이다. 정부는 근로자의 날로 정하고 있고 노동자는 노동절이라 한다. 1889년 5월 1일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한 미국 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메이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 하면 무조건 ‘시골’을 떠올린다. 늙은 조부모, 부모께서 꼬부랑 허리로 농사짓는 그곳. 하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조금 어린, 즉 2030세대는 고향이 대도시, 중소도시인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인 경우 대부분 “할머니도 서울에서 사세요!” 한다.언젠가 농업 관련 행사에 갔을 때 귀농·귀촌이나 농사에 관심 있는 나이 지긋한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60~70대 노인 분들께서 “시골에서 났지만 제대로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어서 몰라. 친구들도 서울사람 된 지 오래야. 어르
제가 살고 있는 영동군에서는 요즘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 분위기가 쌀쌀합니다.3선까지 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받아온 박덕흠 국회의원에 대해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 때는 붙어 있던 플래카드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없어졌고, 분노한 주민들은 급기야 1인 시위까지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저녁에 혼자 서 있더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점점 참여하는 주민들이 많아지는 분위기입니다.지난 8년 동안 우리 영동 군민들은 박덕흠 의원을 좋아했습니다. 생일이 되면 전화를 해서 축하한다는 말까지 해주는 모습에 젊은 사람들도
농민칼럼을 쓸 때마다 ‘내가 사는 농촌에서 희망을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올해 장마는 너무 길었고, 태풍의 힘은 강해서 많은 농지와 애써 키운 농작물들이 피해를 보고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뉴스에는 야채값이 폭등하고 김장철 고추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생산할 야채와 고추가 부족하니 실제 지역농민들의 경제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올해 봄 경북도의 냉해피해 조사에서 봉화지역 과수 냉해피해 조사가 누락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지역과 비교해도 100배 정도의 차이가 나니 농민들
참으로 긴 장마였습니다. 그리고 또 두 차례의 태풍. 웃자람과 잎도열병, 목도열병.가을걷이가 시작된 들판에는 제대로 여문 것도,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마르지 않은 논에서는 쓰러진 벼를 베는 콤바인마저 힘겨워 보이고, 억지로 털어간 수매장에선 등외도 못 받고 개인 건조기로 향하는 농부의 트럭이 처량합니다. 조합장도, 담당직원도, 농부도. 뭐라 할 말이 없는.2020년 착잡한 가을입니다.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 여주농민회는 연례행사처럼 수매가 투쟁을 합니다. 통합RPC가 출범한 뒤 10년 동안 이어온 투쟁입니다. 쌀값동
작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회 교육에서 강광석 전(前) 정책위원장이 쌀 배급제를 이야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배급제란 단어에서 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고 생각했고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배급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허무맹랑하다는 핀잔을 듣겠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식량의 중요성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진 강광석 전 정책위원장의 앞선 생각에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올해부터 전농과 함께 농산물 가격 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다
어마무시한 태풍이 10여일 만에 3번이나 반도를 몰아쳤다. 7월말 첫 번째 폭우에 침수된 우리집 비닐하우스에는 탐스런 열매만 매달고 말라버린 멜론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물관리도 못해 이름값조차 무색해진 수자원공사의 잘못으로 드러난 아랫녘 섬진강 근처의 인재(人災)는 우리집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과 아련함의 깊이는 나조차도 알 길이 없다.긴 장마와 태풍으로 경험한 기상이변은 농민들의 일상을 넘어선지 오래고 어쩌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습격은 민초들의 좌표를
긴 장마, 태풍, 폭염, 그리고 코로나19… 9월엔 좀 괜찮아지려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달라질까?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본다. 올해는 2021년도부터 시작되는 5차 여성농업인 육성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해이다.20년 가까이 여성농업인육성을 위해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정책들이 깨알처럼 많았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여성농민의 삶이 있다. 내년엔 좀 더 괜찮아지려나? 말꼬리를 잡게 되는 이유다. ‘할머니에게 영광을, 딸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8월 중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발신지는 정부 기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장흥군사무소다. 공익직불제 신청 농지의 준수사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필지와 농가를 현장 조사하겠다는 사전 통지이다. 이 문자메시지는 전국의 농민들이 받았다.농민들이 느닷없이 조사를 받게 됐다. 그것도 조사 받을 내용이 17개 항목이다. 영농일지도 검사할 뿐 아니라 온갖 농업활동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준수하지 않으면 벌칙도 엄격하다. 조사해서 준수 미이행으로 판정되면 기본직불금 총액의 10%에서 최대 100%까지 감액한다.공익직불금이란 이름으
이젠 빙하가 녹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당장 하루아침에 탄소배출량이 0이 된다고 하더라도 북극의 빙하는 2030년에 모두 녹아 인류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암담한 예언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홍수, 태풍, 전염병 등 모든 재앙은 예견된 일이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결과이며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어떻게 해야 하냐는 겁먹은 질문에 전문가들도 이젠 솔루션이 없다고 대답할 지경이 됐다. 인류가 멸망해가는 영화 같은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눈앞에 닥친 가까운 미래에. 사실 환경오염과
내가 사는 영동군에서는 얼마전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나왔다. 큰딸이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지역의 맘카페에서 난리가 났다면서 전화가 왔다.“엄마 당분간 엄마네 집 못갈 것 같아요. 영동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대. 그것도 우리 면 바로 옆에서요.” 딸의 다급한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었다.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엄마 솔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엄마 중에 간호사가 있는데 그 병원에도 (확진자가) 왔다 갔대.”모든 활동이 중지됐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군 전체 사람들은 2주간 꿈쩍을 하지 않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태풍전야처럼 고요했
8월초 유례없이 봉화에 폭우가 내렸다. 보통 6월 장마는 있어도 7월말 8월초에 이렇게 지루한 장마가 오기는 드문 일이다. 해마다 날씨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피해들이 속출하고 있다. 곡식과 과일, 채소들이 지리한 장마 탓에 제대로 익지도 못하고 있는 터에 폭우까지 쏟아져 비상사태가 벌어졌다.가뭄엔 먹을 게 있지만 긴 장마엔 먹을 것 없다는 어르신들 말씀이 실감이 난다. 이제 기후 위기라는 말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가지고 온 인재(人災),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걸
이른봄에 심었던 쥬키니를 뽑은 자리에는 다시 가지를 심었습니다. 호박 따며 모내기 하던 전쟁 같은 5월에 비하면 7월은 조금 수월한 편입니다. 하지만 5월의 긴장에 맞춰진 몸뚱어리는 자꾸만 논두렁으로 밭두렁으로 향합니다.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좀 쉬어도 될 텐데 말입니다. 놀고먹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입니다.그러던 사이 시작된 장마는 강제휴가를 제공합니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에 모처럼 눈을 뜨고도 일어나지 않는 호사를 부려 봅니다. 자리에 누워서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획이 서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