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쌀과 김치 국가배급제를 상상하라

  • 입력 2020.09.20 18:00
  • 기자명 강선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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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경남 합천)
강선희(경남 합천)

 

작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회 교육에서 강광석 전(前) 정책위원장이 쌀 배급제를 이야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배급제란 단어에서 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고 생각했고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배급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허무맹랑하다는 핀잔을 듣겠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식량의 중요성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진 강광석 전 정책위원장의 앞선 생각에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

올해부터 전농과 함께 농산물 가격 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농산물 가격보장 정책을 공부하던 중 녀름연구소 이수미 연구원이 미국사례를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보이는 정책이 국민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이었다. 2018년 개정된 미국 농업법에서 5년(2019~2023년)간 계획된 의무지출액 중 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이 포함된 국민영양 관련 예산의 비중이 76.5%, 작물보험 9.0%, 품목별 농가지원 7.1%, 농업환경보전 6.9%, 그 밖의 무역, 원예, 연구 및 에너지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0.5%라는 자료를 보았다. 국가가 국내농산물 의무지출액 중 76.5%를 저소득 계층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지역 채소와 과일 등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이나 카드로 지불한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재난기본소득처럼 미국은 자국 농산물 소비를 위해 국가 재정으로 지역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하는데, 미국 농업법은 70% 이상의 의무지출액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국민영양보충지원 프로그램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식량배급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자국농산물을 정부예산으로 구매해 보급하는 사업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국내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농민의 요구에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이라고 답했는가? WTO 규정위반이라는 답이 가장 먼저 나왔다. 그래서 최소한 자라는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국내산 농산물을 먹이기 위해 학교급식에 국내농산물을 사용하자는 농민들의 요구도 WTO 규정위반일 수 있으니 지자체나 교육청 자체 예산을 가지고 해야 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WTO를 주도하던 미국은 자국농산물을 수출할 때는 미국농산물 수입국에 WTO 규정을 들이밀어 미국농산물 수출을 용이하게 하고, 외국농산물을 수입할 때는 엄격한 잣대로 자국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과 제도, 규제를 만들어 공고한 장벽을 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 또한 미국과 비슷하다. 식량주권, 국민건강,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수십년간 해오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국 식량보호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국민건강의 중요성, 그리고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빠르게 정책으로 내와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농업·농촌·농민의 중요성을 정리하고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농업계를 넘어 각계각층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뉴딜 사업 어디에서도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유일한 농업관련 정책이 농어촌 마을 2,000군데에 인터넷망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농어촌에 인터넷망만 구축하면 식량자급률이 올라가고 국민건강권이 지켜지냐고 묻고 싶다. 화려한 수식의 농업정책보다 국민의 건강권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국민이 꼭 먹어야 하는 쌀과 김치를 국가가 배급하는 주요농산물 국가배급제를 정책으로 내놓는다면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가 농업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쌀과 김치 국가배급제를 실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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