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도 국민이다

  • 입력 2020.09.27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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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참으로 긴 장마였습니다. 그리고 또 두 차례의 태풍. 웃자람과 잎도열병, 목도열병.

가을걷이가 시작된 들판에는 제대로 여문 것도,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마르지 않은 논에서는 쓰러진 벼를 베는 콤바인마저 힘겨워 보이고, 억지로 털어간 수매장에선 등외도 못 받고 개인 건조기로 향하는 농부의 트럭이 처량합니다. 조합장도, 담당직원도, 농부도. 뭐라 할 말이 없는.

2020년 착잡한 가을입니다.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 여주농민회는 연례행사처럼 수매가 투쟁을 합니다. 통합RPC가 출범한 뒤 10년 동안 이어온 투쟁입니다. 쌀값동향을 분석하고, 정부정책을 점검하고 농민들이 받아야 할 수매가를 산출해서 농민들에게 교육하고 조합장들에게 요구합니다. ‘쌀값을 농민 손으로’, ‘팔기 전에 볏값 먼저’의 구호는 10년째 이어온 원칙입니다. 원료곡의 가격을 정하지 않고 햅쌀의 소비자 가격이 정해져서 유통된다는 것은 참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올해는 40kg 조곡의 수매가격을 작년보다 5,000원 인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전국 최고의 가격이라고 농협이나 농민이나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이번 가을은 그런 가을이 아닙니다. 병충해에 죽은 쭉정이에 일찍 넘어져서 덜 여문 알갱이까지… 수분으로 까이고 제현율로 까이고 나면 5,000원 수매가 인상은 작년 가격 동결에나 미칠까 싶습니다.

코로나로 나라 전체가 고통을 겪는 중입니다. 그 훨씬 전부터 사회적으로 배제 받은 농민들 입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 합니다. 노래방, PC방 사장님들 아우성은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오고, 어려운 골목식당 등 자영업자들에게는 긴급대책도 나오는데, 국가적 재난으로 편성된다는 추경이나 대책에는 또다시 농민 거리두기가 유지됩니다. 코로나에, 자연재해에 겹치기로 무너지는 농민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곱절입니다. 배추 등 야채값이 올라 추석 차례상 물가가 걱정이라고 호들갑만 떨지 말고, 배추값이 그만큼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논밭에서 울게 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농촌은 지금 최악의 재난입니다.

쓰러진 벼를 베러 가다가 넘어진 옆집 논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못났지요. 없는 사람들의 자기위로가 서글픕니다. 그런 자기위로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희망을 주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쓰러진 벼처럼 무너지는 농민들에게 ‘농민도 국민이다’라는 희망을 줄 대책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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