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고독한 러너가 되지 않으려면

  • 입력 2020.09.13 18:00
  • 기자명 권혁주(충남 부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혁주(충남 부여)
권혁주(충남 부여)

어마무시한 태풍이 10여일 만에 3번이나 반도를 몰아쳤다. 7월말 첫 번째 폭우에 침수된 우리집 비닐하우스에는 탐스런 열매만 매달고 말라버린 멜론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물관리도 못해 이름값조차 무색해진 수자원공사의 잘못으로 드러난 아랫녘 섬진강 근처의 인재(人災)는 우리집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과 아련함의 깊이는 나조차도 알 길이 없다.

긴 장마와 태풍으로 경험한 기상이변은 농민들의 일상을 넘어선지 오래고 어쩌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습격은 민초들의 좌표를 충격과 공포로 뿌리째 흔들어 놓아버렸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익숙해지기보다는 불안과 공포의 일상화 어디쯤 와버린 듯하다.

덕분에 모임과 회의는 확연히 줄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늘다보니 제법 내 삶과 주변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해진 것 같다. 몸이 덜 부대끼니 생각이 많아진 셈이다. 진취적이고 그럴 듯한 생각만 하는 건 아니지만 쓸 만한 궁리도 가끔 하게 된다.

요사이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보니 덜컥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어쩌다보니 나도 40대 후반이 됐고 불룩하게 나온 배는 누가 봐도 민망할 정도다. 농촌에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지만 건강을 찾기 위해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만보기를 손목에 차고 저녁시간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걷고 뛰며 뛰고 걷는다.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고독한 러너(Runner)가 되기로 굳세게 마음을 다잡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근차근 운동시간과 강도를 높여가려 하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혹사당한 내 몸에 대한 미안함을 운동으로 포장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그만둘 날을 손꼽기도 한다. 몸에 좋지 않다는 술, 담배, 커피 3종 세트를 30년 가까이 온몸으로 섭렵했으며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내 몸을 지배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습관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외로움 또한 걷고 뛰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다. 아무리 비대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고독한 러너가 되는 건 쉽지 않다. 여럿이 모여 공놀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운동보다 뒤풀이라는 잿밥이 목적 달성을 방해할까봐 일찌감치 포기했다. 가족과 함께 하기에는 서로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그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벌여놓은 일을 그만둬야 하는 마땅한 이유를 아직까지 찾기 어려우니 일단 가능한 만큼 뛰고 걷기를 반복하려 한다.

코로나19와 기상이변으로 인해 먹거리와 식량주권이 강조되는 세상이 됐다. 농업문제는 농민 생존권 문제뿐만 아니라 먹거리, 식량주권, 교육, 생태, 환경, 통일문제라고 먼저 나선 것은 농민들이었다. 힘들다고 여기서 멈춰서도 안 되고 과감한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계획은 구체적이고 입체적이어야 하며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이 방법임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고독한 러너가 되기보다는 함께 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지금부터 같이 뛰며 손잡고 걸어갈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무슨 일이든 함께해야 의미 있고 또한 가능한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