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한국농업 팬데믹, K-방역이 필요하다

  • 입력 2020.11.29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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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밤사이 서리가 하얗게 내렸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논의 벼 등걸들과 결구도 되지 못해 밭두렁에 남아 있는 섭치배추들도 밤새 덮어씌어진 서리 아래서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는 할 일도 없으면서 습관적으로 밭두렁으로 나선 내 어깨도 따라서 오그라드는 아침입니다.

두 달이 넘는 장마와 뒤이어 몰아친 태풍, 이로 인한 불가항력의 병충해는 일년농사를 쭉정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국에서 최고 수매가를 자랑하는 여주의 ‘진상벼’ 품종은 RPC 통계로만 33%의 감량에 평균 제현율 72%를 기록했습니다. 수매를 포기한 농가와 민간 정미소로 간 물량을 합치면 40%에 가까운 소출감소가 된 셈입니다. 1만5,000평 논의 전부를 임차해 농사를 짓고 있는 나 같은 임차농들은 임대료 주고, 비료에 농약에 경작비를 제하고 나면 그야말로 빈털터리 겨울입니다. 정미소에 방아를 찧으러 갔다가 임대료 줄 쌀을 계산하고 나니 양식거리가 부족해서 오히려 방앗간 쌀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가슴 한쪽이 뻥 뚫린 심정으로 11월 내내 농특위에서 진행하는 농지이용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4년째 마을이장을 보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지어 온 마을 선배님들 세 명과 함께 일주일을 돌아봐도 지주와 실경작자, 임대료 문제와 직불금 문제를 사실적으로 조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도시에 거주하면서도 300평 이상의 농지에 8년 이상 자경을 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도시의 자경농들을 확인할 때마다 느끼는 현실의 절망감은 조사의 어려움보다 깊었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일수록 상황은 심각한 듯합니다. 아무래도 인구가 밀집되고 이동이 왕성할수록 바이러스의 감염이 쉽기 때문이겠죠.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방역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소위 K-방역의 성과라고들 합니다. 정부의 신뢰도 있는 정책과 헌신적인 의료인, 여기에 불편하더라도 함께하는 국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또 한 번의 역사가 될 듯합니다.

우리 한국농업은 코로나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오래입니다. 속수무책의 자연재해, 반복되는 가격폭락, 늘어나는 수입농산물, 종자의 독점, 무너진 경자유전, 의료와 교육. 문화에서의 배제로 인한 농촌의 고령화와 공동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들어선 지 오래입니다. 여기에 분단과 외세의 문제, 농협의 부패와 농정의 무능 등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더하면 우리농업은 중병 중의 중병인 상태입니다.

농업에도 K-방역(?)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격리만 시킬 것이 아니라 농업의 근본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마스크와 치료제와 백신이 절실합니다.

이번 농특위의 농지조사가 농업과 농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시작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병든 한국농업을 치료하는 출발점은 결국 농지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리가 하얗게 내린 빈 논만 쳐다보고 있으면 무슨 답이 나올까요? 얼른 일어나서 여주시의 대책을 촉구하는 현수막 주문하고, 농협 대의원총회 준비하려면 대의원들 만나러 또 달려가 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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