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할머니들에게 영광, 딸들에게 희망을

  • 입력 2020.09.06 18:00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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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긴 장마, 태풍, 폭염, 그리고 코로나19… 9월엔 좀 괜찮아지려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달라질까?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본다. 올해는 2021년도부터 시작되는 5차 여성농업인 육성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해이다.

20년 가까이 여성농업인육성을 위해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정책들이 깨알처럼 많았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여성농민의 삶이 있다. 내년엔 좀 더 괜찮아지려나? 말꼬리를 잡게 되는 이유다. ‘할머니에게 영광을, 딸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5차 기본계획에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할머니들은 나이는 먹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함께 하려니 힘이 들고 안 아픈 곳이 없고, 밥은 해먹기도 귀찮고, 게다가 농사일은 힘에 부친다고 하고, 좀 젊은 여성농민들도 농사일이 힘들어서 농촌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호미 잡고 일을 할지언정 밥해 먹기 싫은 여성농업인들과 농촌을 떠나고 싶은 젊은 여성농업인들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사는 마을은 농번기 공동급식을 하고 있다.

마을공동급식사업은 농번기 여성농업인의 가사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나아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마을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석삼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마을은 부녀회장님이 주축이 돼 부녀회원들이 당번을 정해 공동급식을 한다. 장날 돌아오듯 돌아오는 당번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이 있지 않은가. “맛있다, 맛있다” 하시면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그런데 아쉬운 건 여성들이 당연하게 밥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이를 또 당연하게 부녀회에서 받아서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하기도 싫은 일을 마을에 나와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한두 번은 하지만 계속하려고 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농번기공동급식은 모든 농촌마을에서 시행돼야 하는 사업이다. 누가 밥을 하든 밥을 하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는 있어야 한다, 또 마을주민들이 먹는 밥인데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병폐는 없애야 할 일이다. 지역농산물이 지역 내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통 보조사업으로 진행하는 사업들의 경우 영수 처리를 위해 카드결제가 원칙인 것으로 알지만 농림보조사업의 경우, 특히 식재료를 구입해야 하는 경우는 지역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야 한다. 농산물을 팔아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수입 가공농산물을 구입해서 반찬을 하는 것은 문제다. 좋은 정책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바로 잡아줘야 한다. 농번기 공동급식이 마을주민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됐으면 한다.

강원도에선 올해 아주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했다. 강원도 여성농업인 200여명을 대상으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은 받고 있지만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또 농번기엔 일하느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겨울이면 병원 가는 일이 큰 일이 되다보니 도시여성에 비해 여성농업인들의 의료비 부담이 훨씬 높다는 실태결과도 있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정말 여성농업인을 위해 만든 정책임을 알 수 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자조적 평가를 하는 여성농업인도 많은데, 근골계질환, 호흡기질환 등 농업에 종사하면서 생긴 질병에 대해 검진하고 2년여에 걸쳐 집중관리를 함으로써 여성농업인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이제 나라가 나서서 여성농업인들의 건강도 챙겨주는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이 생겼는데 내년도 예산에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사업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뉴스를 접했다. 방향을 잘 잡고 가는 사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보완해야 할 지점에 대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모자랄 판에 싹을 죽이는 건 뭔지 모르겠다. ‘나이 드신 여성농업인들에게 영광을, 젊은 여성농업인에게 희망을’이 되려면 제일 먼저 ‘밥’, ‘건강’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 5차 여성농업인 육성기본계획엔 여성농업인들의 삶의 질과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 담기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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